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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무니없이 평범한…그래서 비범한 ‘그냥 형돈이’

[기타] | 발행시간: 2014.05.25일 10:45

방송인 정형돈.

[한겨레]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벌써 2년 동안 이걸 계속 하셨다고요? 대체 왜…?” 엠비시(MBC) 에브리원 채널의 토크쇼 <주간 아이돌>에 출연한 가수 지나는, 왜 2년 만에 출연할 정도로 활동이 뜸했느냐는 질문에 경악을 하며 이렇게 되물었다. 방학 특수를 노린 8주짜리 아이템으로 시작한 프로그램이 졸지에 채널의 대표 프로그램이 되어 3주년을 코앞에 두고 있으니, 그렇게 되물을 만도 하다. 아무 장식도 없이 온통 흰색 천지인 벽면과 바닥인 세트는 3년이 되도록 나아진 게 없고, 비싼 몸값의 아이돌들을 모셔놓고는 짓궂은 질문과 까칠한 태도로 요리하는 엠시 정형돈과 데프콘도 여전한데 말이다. 그런데 어쩌면 그게 주간 아이돌이 오래갈 수 있는 비결 중 하나였는지도 모른다. 초라한 세트를 누비는, 일없이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삼촌들 같은 엠시들, 개중에서도 정형돈의 평범함 말이다.

방학용 8주 기획 ‘주간 아이돌’을

3년 이어온 비결은 그의 평범함

한심한 삼촌 같은 캐릭터로

주눅들지 않는 뻔뻔함이

특출나지 않아 부끄럽던

장삼이사에 미묘한 통쾌함 선사

흔히 아이돌 산업은 환상을 파는 사업이라고들 말한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아이돌은 화장실도 안 갈 거라 믿던 순진한 팬들의 시대는 90년대와 함께 지나갔다. 그 시절 아이돌 팬질을 하던 이들은 세월이 흐르며 자신이 지지하던 아이돌 멤버들이 결혼을 해 애를 낳거나, 소속사와의 분쟁으로 법적 갈등을 겪거나, 팀 내 불화로 과거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어 서로를 욕하는 꼴까지 보아야 했다. 마약이나 도박, 성추문 따위에 휩쓸리지 않으면 다행인 마당에, 뻔한 환상을 사고파는 건 이제 아이돌 산업의 핵심이 아니게 되어버린 것이다. 아이돌조차 달콤한 환상은 잠깐이고 나머지 시간은 화식하는 인간으로 땅에 발을 딛고 살아야 한단 사실을 모두가 깨달아버렸으니 말이다.



새 시대의 아이돌 팬덤 중 적잖은 수는 이처럼 아이돌 산업의 명과 암을 모두 목격한 누나팬·삼촌팬들이고, 이제 이들은 막연한 환상에 위안을 받는 게 아니라, ‘내 지갑 열어 키운 내 새끼들 평소엔 어떻게 지내나 보자’라는 구체적인 욕망을 충족시키며 위안을 받는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제 일상을 중계하는 아이돌들은 더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받고, 팬들과의 유대감 또한 더욱 강해진다. 아이돌들이 무대 위의 멋진 모습이 아니라 그런 무방비하고 내밀한 모습을 공유하면, 팬들은 그들과 사적으로도 연결되어 있는 것만 같은 환상을 소비하는 것이다. 과거 신비주의와 카리스마를 사고팔던 아이돌 산업은, 점점 소소하지만 구체적이고 동시에 관음증적인 욕망을 거래하는 산업이 되었다.

그래서 아이돌을 게스트로 모시는 <주간 아이돌>과 같은 토크쇼엔 뻔뻔스레 짓궂고 깨알 같은 질문들을 던질 수 있는 엠시가 필요한데, 정형돈(과 데프콘)이야말로 그에 가장 적합한 캐릭터인 것이다. 정형돈은 아이돌을 무조건 찬양하거나 띄워주는 대신, 솔직하고 직설적인 농담들로 게스트들을 쥐고 흔든다. 평소 방송인이라기보단 동네 한심한 삼촌 같은 캐릭터를 꾸준히 밀어온 정형돈은, “신곡의 안무가 굉장히 격렬한데, 점점 나이를 먹고 있는 팀 내 맏이의 뻣뻣한 관절은 괜찮은가”처럼 평범하지만 노골적인 누나팬·삼촌팬의 호기심을 밉거나 어색하지 않게 대리충족시켜 줄 수 있다. 출연한 남성 아이돌그룹 멤버 중 누구의 엉덩이가 가장 탄력이 좋은지 알려달라는 시청자의 리퀘스트에, “내가 직접 만져보고 판단할 테니까, 대신 너희들도 내 엉덩이 만져도 돼”라는 정신 나간 해법을 제시하며 자신의 엉덩이를 내미는 동네 삼촌 같은 모습은 보는 이들의 심리적 거리감을 줄여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정형돈이 이렇게 평범함을 뻔뻔스레 무기로 내미는 사람은 아니었다. 한국방송(KBS) <개그콘서트>로 데뷔할 때만 해도 그는 절대 평범하진 않은 캐릭터였으니 말이다. 그때만 해도 그는 지금보다 훨씬 더 큰 체구와 우악스러운 태도로 마초적인 개그를 선보이던 코미디언이었다. ‘유치 개그’나 ‘봉숭아학당’과 같은 코너에서 보여줬던 특유의 기름지고 선 굵은 개그와 억센 경상도 사투리, 고도비만의 체형과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던 청순한 단발머리까지. 정형돈은 한번 보면 잊기 어려운 캐릭터를 힘주어 밀어붙이던 ‘센 캐릭터’였다. 오죽했으면 처음 문화방송 <강력추천 토요일>의 한 꼭지였던 ‘무모한 도전’(현 <무한도전>의 전신)에 출연할 때만 해도 캐릭터가 ‘건방진 뚱보’였겠는가.

그러나 <무한도전>이 점차 상황 위주의 예능에서 캐릭터 중심의 쇼로 자리를 잡으며 정형돈은 점점 캐릭터를 잃어갔다. 건방진 면모는 하하가, 뚱뚱함과 식탐은 정준하가, 안하무인의 독한 캐릭터는 박명수가 가져가면서 자신만의 캐릭터가 희석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형돈이 상황정리를 유재석보다 잘하는 것도 아니고, 발음이나 멘트가 노홍철보다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캐릭터가 사라진 정형돈은 점점 위축됐고, <무한도전>은 그에게 ‘웃기는 것만 빼곤 다 잘하는, 못 웃기는 개그맨’이라는 캐릭터를 안겨주었다. 물론 그때의 정형돈에게도 ‘진상’이라는 캐릭터가 있었고, 은근히 뛰어난 운동신경도 있었지만, ‘못 웃기는 코미디언’이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받아야 할지, 그 프레임 안에서 자신의 장점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미처 몰랐던 정형돈은 아주 긴 슬럼프를 겪어야 했다.

정형돈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 것은 평범하다 못해 시대착오적인 촌스러움을 무기로 삼은 ‘그냥 형돈이’ 캐릭터를 선보이면서였다. 통 넓은 정장바지에 후줄근한 여름 반팔 셔츠, 큼지막한 은테 안경과 고수머리의 ‘그냥 형돈이’ 캐릭터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평범했다. 빅뱅의 ‘하루하루’를 패러디했던 <무한도전>의 ‘하루하루’ 뮤직비디오에 다른 멤버들은 모두 빅뱅처럼 꾸민 모습으로 등장했지만, 그중 누구도 ‘그냥 형돈이’ 캐릭터로 출연한 정형돈만큼의 파괴력을 보여주진 못했다. 평범한 것이 죄악시되는 시대, 메뚜기, 탈모인, 식신, 키 작은 꼬마, 돌아이 등 화려한 캐릭터들이 난무하는 <무한도전> 안에서 그저 평범한 것이 특징이라고 내세운 ‘그냥 형돈이’ 캐릭터는 너무 평범한 탓에 오히려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 평범함에 팬들의 호응으로 얻은 자신감이 더해지면서, 역설적으로 ‘비범하리만치 평범한 남자’라는 정형돈 특유의 캐릭터가 구축되기 시작했다. 촌스러운 은갈치색 슈트에 꺾어 신은 신발, 오래되어 버클이 녹이 슬 지경인 가방을 멘 ‘형돈이 패션’을 선보이며 뻔뻔스레 “보고 있나 지드래곤?”이라고 말하며 패션의 아이콘 지드래곤을 도발한다거나, 엄청난 가창력이 필요한 조관우의 ‘늪’을 형편없이 불러 참극을 빚어내고도 당당하기 짝이 없는 그의 태도는 특출나지 않은 걸 부끄러워하던 모든 평범한 장삼이사들에게 미묘한 통쾌함을 주었다. 평범한 걸 비범한 것이라 뻔뻔스레 들이미는 그 자신감으로 정형돈은 스스로를 구원했고, 친구인 데프콘을 예능의 기대주로 성장시켰으며, 8주짜리 아이템 <주간 아이돌>을 해당 채널의 간판 프로그램으로 성장시키며 <무한도전> 멤버들 중 유일하게 유재석 없이도 메인 엠시로 자리를 잡는 데 성공했다. 한국방송 <우리동네 예체능>에서, 동네 조기축구 수준의 실력을 지닌 정형돈이 이영표에게 축구를 가르치겠다고 나서는 모습이 밉지 않은 웃음을 줄 수 있었던 것은, 평범함을 이유로 위축되지 않는 특유의 뻔뻔스러움 덕분이었다.

그래서 그가 최근 방영된 <무한도전> ‘선택 2014’ 후보자 토론회 마무리 발언에서 “이 사회의 절대다수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한 사람의 카리스마, 한 사람의 현란한 말솜씨가 아닌 절대다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을 때 그 울림은 결코 작지 않다. 평범한 것이 결코 주눅 들 이유가 될 수 없다는 당당함과 뻔뻔함이야말로 그 스스로를 구원했음을 우리는 알고 있으니까. 물론 우리가 그의 말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만드는 변화를 볼 가능성은 희박할지 모른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정형돈의 지지율은 최하위이고, 설령 그가 ‘<무한도전> 차세대 리더’로 당선된다 해도 그 변화는 <무한도전> 안에 국한된 변화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정형돈처럼 평범한 이들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 늘어난다면 어떨까. 정형돈이 악몽 같던 슬럼프에서 스스로를 구원한 것처럼, 어쩌면 평범한 우리도 이 시궁창 같은 현실에서 우리 스스로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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