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청일전쟁(갑오전쟁) 발발 120주년을 맞는 25일 중국에서는 별도의 정부 차원 행사는 없었다. 하지만 언론과 민간 학술계를 중심으로 뼈아픈 굴욕의 역사를 반성하자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진행됐다.
청일전쟁은 1894년 7월 25일 일본군이 선전포고 없이 조선 아산만 풍도 앞바다에서 청나라 함선을 침몰시키면서 시작됐다. 이듬해 4월 17일 시모노세키조약이 체결되면서 마무리됐다. 청일전쟁의 승패로 일본은 한반도를 차지하고 대륙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지만 중국은 ‘망국’의 길로 들어섰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전쟁과 평화의 변증법을 가슴깊이 새겨 넣자’라는 기사에서 청일전쟁 패전의 결과로 겪어야 했던 ‘굴욕’을 나열하며 “갑오년을 떠올리며 길고 긴 경종을 울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다른 기사에서는 “왜 중국은 국토나 인구에서 상대가 안 되는 국가에 패했는가”라고 자문한 뒤 “국운상실, 전쟁패배, 민족 위난의 배후에는 모두 청 말기의 부패가 있었다”고 자답했다.
앞서 24일 베이징 국가도서관에서는 120여명의 사회 각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갑오전쟁 120주년 토론회’가 열렸다. 장하이펑 중국 사학회 회장은 “중국은 항상 전쟁 대비를 생각하고 갑오전쟁 참패의 교훈을 잊지 말고 스스로 ‘불패’의 자리에 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군 기관지 해방군보는 연초부터 청일전쟁 당시 중국과 일본의 모습을 비교하는 시리즈를 내보내고 있다. 포털 사이트 신랑망도 ‘갑오전쟁 120주년’이란 특별코너에서 청나라의 패배 원인과 동북아 정세 변화 등에 대한 분석 기사들을 모아 놨다. 랴오닝성 당안관(기록보관소)에서는 ‘갑오전쟁을 잊지 말자’는 주제로 문서와 사진 등 희귀자료 12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랴오닝성 단둥의 조선소에서는 청일전쟁 당시 황해해전에서 격침된 청나라 순양함 ‘즈위안(致遠)함’의 복원 작업이 한창이다. 침몰 당일(9월 17일) 전 완성을 목표로 민간 기금 3700위안(약 61억원)이 투입됐다.
일본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도 높았다. 신경보는 사설을 통해 청일전쟁 이후 일본 군국주의가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지만 결국 패망의 길로 들어섰음을 상기시키며 “갑오전쟁은 일본 군국주의 기초였지만 부지불식간에 일본 군국주의의 묘를 매장하기 위한 첫 삽이었다”고 강조했다.
이번 갑오전쟁 120주년은 지난 7일 중일전쟁의 발단이 된 ‘7·7사변(노구교(盧溝橋) 사건)’ 77주년 기념식이 성대하게 치러진 것과 비교되며 의아스럽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한 중국 언론인은 “7·7사변은 7월 7일에 발생하고 올해 77주년이라는 숫자상의 특수성이 있었지만 갑오전쟁은 특정 시점에 발발했다고 보기 힘든 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청일전쟁 발발일은 7월 25일 외에도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한 ‘7월 23일 설’과 두 나라의 공식 선전포고가 있었던 ‘8월 1일 설’ 등이 있다.
베이징=맹경환 특파원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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