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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이장희의 스케치 여행]영덕 축산항

[기타] | 발행시간: 2012.03.31일 03:06

해 질 녘 등대에 올라 수평선 너머 고래를 꿈꾸다

[동아일보]

우리에게 4월 1일은 서로에게 가벼운 거짓말을 하며 웃고 즐기는 만우절로 잘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이날에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또 하나의 이름이 있으니 바로 ‘어업인의 날’이다.

나는 어부 하면 ‘노인과 바다’의 노인, 산티아고를 먼저 떠올린다. 드넓은 바다의 수평선을 바라보며 커다란 물고기와 사투를 벌이던 노인. 그는 망망대해에 뜬 조각배 위에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부가 되어 보지 않는 이상 결코 느낄 수 없을 기분. 아마도 산티아고 노인은 물고기가 아닌 자기 자신과 고독한 싸움을 한 것이리라.

○ 어부는 세상에서 두 번째로 위험한 직업

내가 문학 속에서 바다와 어로에 대해 느꼈던 것들은 경북 영덕군의 축산항에서 어망을 정리하던 한 어부를 만나면서 현실로 다가왔다. 그가 말하는 고기잡이의 어려움은 소설 속 산티아고 노인이 대서양에서 겪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더 생생했다. 결국 모든 바다 위의 어부는 진정 고독한 것일까. 어업은 일이 험할 뿐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하다. 미국 작가 윌리엄 히트문은 “어부는 세상에서 두 번째로 위험한 직업”이라고 못 박기도 했다. 그가 어부보다 더 위험한 직업으로 꼽은 것은 폭격부대원이었다.

어업은 농업과 더불어 오랜 세월 우리나라의 주요 1차 산업 중 하나였다. 선사시대 때도 어패류는 언제라도 획득이 가능한 식품이었다. 당연히 농업보다도 먼저 인류의 역사 속에 자리 잡았다. 패총을 비롯한 여러 유적은 사람들이 하천이나 해안에서 어패류를 잡아 식용했음을 단적으로 말해 준다. 특히 한반도에서는 3면이 바다라는 천혜의 환경 속에 어업이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다.

하지만 최근 사정은 그리 녹록지만은 않아 보인다. 어획량은 줄고, 값싼 외국산 물고기가 넘쳐난다. 어선은 이미 낡았고, 어부도 대부분 고령이다. 어업 인프라가 통째로 흔들리는 셈이다. 사실 어업의 중요성은 오래전부터 대두돼 왔다. 어업인의 날은 올해로 1회이지만 사실 1969년에 이미 같은 날을 ‘어민의 날’로 지정한 바 있다. 이것이 1973년 ‘권농의 날’과 통합됐다가 39년 만에 부활한 것이다.

어업인의 날이 국가기념일로 다시 지정돼 새 출발을 한다는 것은 어업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제 이 기념일이 발전해 4월 1일이 만우절뿐만 아니라 바다에 나가 땀 흘리는 많은 어민을 다시 한 번 떠올릴 수 있는, 의미 있는 날로 자리 잡기를 기대해 본다.

○ 누구에겐 낭만이 누구에겐 현실이다

어느 책에서 한 어부가 “지금까지 항해를 하며 가장 신기했던 경험은 고래가 숨 쉬는 모습을 본 것”이라고 했던 게 기억났다. 고래가 소리를 내거나 물을 내뿜을 때는 마치 또 다른 세계의 입구가 열리는 것 같다나. 그래서 축산항에서 만난 그에게도 물었다.

“고래를 본 적도 있나요?”

“고래요? 돌고래는 무척 많아요. 그런데 큰 고래는 1년에 바다가 잔잔한 요즘 같은 때나 멀리서 겨우 볼 수 있죠.”

나는 흥미로운 눈빛으로 다시 물었다.

“고래를 직접 보는 기분은 어떠셨어요?”

“뭘 어때요?! 그저 내가 친 그물에 한 녀석 걸리면 좋겠다. 그 생각뿐이죠, 뭐!”

그리고 그는 크게 웃었다. 비록 허탈함이 담겨 있었지만 처음으로 그의 웃음을 보았다. 우리는 바닷가에 서서 함께 웃어댔다. 부디 ‘바다의 로또’라는 고래가 아니더라도 매일매일 만선의 행복한 웃음이 그와 함께하기를 바라며 인사를 나눴다.

그와 헤어지고 항구를 스케치북에 담은 후 그림을 그리는 내내 뭐가 있나 궁금했던, 죽도산 위에 있는 등대전망대에 올랐다. 높은 곳에 올라 바라본 저녁 빛 물드는 바다는 더 넓고 더 광활해 보였다. 내가 바라본 바다는 오로지 낭만뿐이었다. 바다가 삶의 터전인 어민과는 근본부터 차이가 있다. 그래서 저 잔잔한 수평선을 보며 떠올리는 거대한 포유류의 깊은 숨결이 그들에게는 생존을 위한 가뿐 한숨처럼 보일지 모를 일이다. 멀리 불을 반짝이며 배 한 척이 지나가는 게 보였다. 배의 불빛은 공기층으로 인해 꺼질 듯 가물거리며 멀어져 갔다. 나는 불빛이 사라질 때까지 줄곧 눈길을 떼지 않고 바라봤다. 어느 순간 빛이 사라졌다. 배는 사방이 수평선으로 둘러싸인 바다라는 우주로 들어선 것이다. 문득 무인등대에 불이 들어왔다. 밤은 더욱 짙어졌고, 바다는 그보다 더 어둡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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