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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발자취(8)--황포군관학교 유적지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1.07.08일 12:54
(권립 교수) 《제1차국내혁명전쟁시기는 1924년 1월부터 1927년 7월까지입니다. 제1차국내혁명전쟁시기는 북양군벌을 때려엎기 위한 혁명전쟁을 가리키는데 이 시기 중국혁명의 중심지는 광주였고 우리 민족 혁명자들의 활동중심지도 광주였습니다. 민족지사들은 황포군관학교, 중산대학 등 학교에서 민족해방의 기량을 닦았고 북벌전쟁에서 몸바쳐 싸웠습니다.》

20세기 20년대 중반에 들어와서 중국의 주요모순은 제국주의를 등에 업고 국권을 팔아가며 자기 세력 확충에만 여념이 없던 크고작은 봉건군벌과 반제반봉건 사명을 짊어진 모든 진보세력간의 대결이였다.

새로 창건된 중국공산당은 반제반봉건의 력사적사명을 짊어지고 손중산이 이끄는 중국국민당과 손잡고 피 어린 항쟁을 진행하였다. 이때로부터 중국력사는 제1차국내혁명전쟁시기에 들어서게 된다. 1924년에 개최된 국민당 제1차전국대표대회는 국공합작을 실현함으로써 제1차국내혁명전쟁시기의 시작을 의미한다.

광주시 로신기념관, 원 광동고등사범학당 강당.

광주시 문명로(文明路) 215번지에 위치한 지금의 로신(鲁迅)기념관이 바도 국민당 제1차전국대표대회가 소집되였던 곳이다. 2층 건물가운데 종루가 탑처럼 높이 솟아있는 이 건물은 80여년의 력사를 가지고있다. 건물은 원래 광동고등사범학당(广东高等师范学堂) 강당이였는데 후에 이곳에 국립광동대학이 설립되였다. 국립광동대학은 손중산이 서거한후 중산대학으로 개칭하였다. 1927년 중국의 대문호인 로신선생이 중산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이곳에서 혁명활동을 하였기때문에 건물 한 부분을 로신기념관으로 만들었던것이다. 현재 중산대학은 광주시남부로 이사해갔다.

1924년 1월 20일부터 30일까지 이 강당에서 국민당 제1차전국대표대회가 소집된다. 대회장은 종루밑층의 강당이였다. 국민당 총리신분으로 대회주석을 맡은 손중산은 대회에서 국민당을 재조직하고 삼민주의(三民主义)를 다시 해석함으로써 《쏘련과 련합하고 공산당과 련합하며 농민과 로동자를 부조한다》는 3대 정책을 내놓았다.

공산당원인 리대소, 모태동, 림백거(林伯渠), 구추백(瞿秋白) 등도 대회지도사업에 참여해 대회에서 중국국민당 제1기중앙집행위원과 후보 중앙집행위원으로 당선되였다. 대회는 원만히 페막되였고 국민당은 중국 각 계급련맹의 정당으로 개조되였다. 대회에서 국공합작이 이루어졌고 두 당은 반제반봉건 통일전선을 형성하여 전국의 새로운 혁명고조를 일으키기 시작하였다. 

로신기념관 및 중국국민당 1차대회 소집지.

중국국민당 1차대회 강당

로신기념관정원은 1만 7000여평방메터에 달했는데 후에는 중산대학의 운동장으로 사용하였다. 강당과 정원은 대회와 집회를 가지기 적합했기때문에 공산당과 국민당 지도자들은 늘 이곳에서 회의를 소집했고 또한 군중집회를 가졌다. 그리하여 이곳은 제1차국내혁명전쟁시기 혁명의 대본영으로 되였고 지금은 전국 중점문화재로 되였다.

300여평방메터에 달하는 종루밑 강당은 1, 2층을 통털어 만든 공간이 퍼그나 컸을뿐만 아니라 광선이 충족하였다. 강당에는 주석대와 관중석이 당시 모양대로 복원되여있었다. 주석대 정면벽에는 손중산선생의 초상화가 걸려있고 량옆에 국민당 당기와 중화민국 국기가 걸려있었다. 관중석은 흰천으로 두른 탁상과 긴 나무걸상들로 정연히 배렬되여있었고 대회에 출석한 대표들의 명함이 걸상 등받이뒤에 적혀있었다.

명함들을 살펴보니 공산당대표로 참석했던 모택동의 이름도 있었지만 방청석은 밝혀지지 않아 조선대표로 참가한 의렬단 성원 권준(权竣)의 이름은 찾을길 없었다. 안내일군들과 문의해보니 분명 방청자들이 있었지만 아직까지 대회에 출석한 외국인이거나 방청자들에 대한 연구가 없다는것이였다. 

국민당 제1차전국대표대회가 있은후 손중산은 국제공산당과 중국공산당의 건의에 따라 혁명군사학교 설립사업을 다그쳤다. 그는 황포장주도(黄埔长洲岛)에 학교터를 정하고 각지에서 학생모집사업을 전개할것을 포치하였다. 모택동을 비롯한 공산당인사들도 학생모집사업을 적극 도왔다.

1924년 3월 27일 황포군관학교 입시시험이 광주에서 진행되였다. 엄격한 시험을 거쳐 1,200여명 수험생들가운데서 350명 정식 입교생(入校生)과 120명 예비입교생을 선발하였다. 정식 입교생들은 1대, 2대, 3대로 나누어 편입하고 예비생은 제4분대에 편입하였는데 이들을 학생총대(学生总队)라고 하였다. 

6월 16일, 학교 개교식이 성황리에 진행되였다. 학교 전칭은 《중국국민당륙군군관학교(中国国民党陆军军官学校)》였지만 광주시 황포에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황포군관학교라고 한다. 손중산은 이날 개교식에서 《군관학교의 취지는 혁명군을 건립하여 위기속의 중국을 구출하는것》이라고 강조하였다.

황포장주도는 광주시동쪽 교외에 위치했기때문에 그곳을 답사하려면 반나절 시간이 수요되였다. 답사팀은 황포군관학교를 찾아 떠 났다.

황포군관학교 옛터로 가는 안내표시

차는 신항동로(新港东路)를 따라 곧추 동남부로 달렸다. 번화한 광주시구역을 벗어나 한시간쯤 가노라니 시교에 도착하였다. 길도 많이 좁았고 집들도 낮은 건물들이였다. 광주시 황포구(黄埔区)에 속하는 장주도(长洲岛)는 주강(珠江)하류의 큰 섬이다. 시 구역을 벗어나 달리노라니 황포조선소(黄埔造船所)가 보였고 그옆으로 황포군관학교 옛터를 가르키는 도로표식이 있었다. 조선소 부근에 장주도로 가는 작은 나루터가 있었다.

답사팀이 도착했을 때 나룻터에는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모여있었다. 나룻배는 20분에 한번씩 온다고 했다. 오토바이, 승용차, 빵차, 트럭까지 대기하고있었다. 강폭은 천여메터 되여보였는데 강기슭에는 낡은 고기잡이 배 몇척과 수백톤급 륜선 두척이 정박하고있었다.

20여분 기다리니 바른편으로부터 배 한척이 건너왔다. 거대한 철선(铁船)이였는데 배에는 역시 오토바이, 승용차, 트럭들을 가득 싣고있었다. 배가 부두에 닿자 푸른 등을 기다렸다는듯이 배의 행인과 차들이 일제히 쏟아져내렸다. 그리고는 이편의 차들이 배에 올랐다. 나룻배는 도보로 가는 행인의 료금은 받지 않았지만 기동차는 료금을 받았다. 

황포군관학교 옛터가 있는 장주도로 가는 나루터

섬에는 주둔군과 주민들이 함께 어울려 살고있었다. 황포군관학교 옛터는 장주도의 하장(下庄)에 있었다. 오불꼬불한 산길을 따라 하장에 이르니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황포군관학교 옛터를 안내하는 간판이 길옆에 있었기 때문에 쉽게 찾아 갈수 있었다.

흰담으로 둘러싸인 황포군관학교 정문에는 <륙군군관학교(陆军军官学校)>라는 검은 글이 새겨져있었다. 청나라말기 륙군학당(陆军学堂) 건물을 수선해 만든 학교 주건물은 전형적인 중국식 사진삼로(四进三路)의 2층 건물이였다. 4줄로 배렬된 2층 건물은 회랑(回廊) 3개로 이어졌는데 회랑과 건물이 한데 붙어 일체를 이루고있었다. 100여평방메터 되는 큰 방과 2,30평방메터 되는 작은 방이 수십개 있었는데 각기 학교사무실, 교실, 학생 기숙사, 회의실로 사용했던것이다. 회랑과 2층건물사이에 정방형의 작은 마당이 6개가 있었다. 거기에는 나무통에 물이 담겨져있었고 또 화분들이 곱게 배렬되여있었다.

황포군관학교 옛터에 복원한 옛 학교모습

제국주의와 봉건주의의 이중압박에 시달리던 수많은 열혈청년들이 바로 이곳에서 혁명의 기량을 닦으면서 새로운 투쟁을 준비했던것이다.

국민당과 공산당은 국공합작의 산물인 황포군관학교에 모두 주요한 간부들을 파견하였다. 중국공산당에서 파견한 주은래(周恩来)가 정치부 주임을 맡았고 섭영진(聂荣臻)과 엽검영(叶剑英)이 교수부 비서, 부주임을 맡았으며 등연달(邓演达), 운대영(恽代英) 등이 정치교관으로 있었다. 더욱 주목할것은 조선혁명가이며 공산당원인 삐스디(毕士悌)도 황포군관학교 군사교관으로 있었다. 삐스디가 바로 유명한 조선족혁명가 양림이다.

국제공산당에서도 많은 기술일군들을 황포에 파견하였다. 손중산은 혁명군 창건에서 쏘련홍군의 건군리념을 받아들였기때문에 학교 설립시 여러차례 대표단을 쏘련에 보냈고 또 쏘련의 많은 기술일군들을 고문으로 초빙했다. 그리하여 황포군관학교에는 보로딘(鲍罗廷)을 비롯한 많은 로씨야인들이 정치, 군사, 보병, 포병, 공병 고문으로 임명되였다. 이와 함께 일찍부터 로씨야에서 활동하던 조선인 혁명가들이 통역신분으로 혹은 입교생으로 황포군관학교에 오게 된다.

이시기 중국내에 활동하던 의렬단도 광주에 모여 단장 김원봉의 주선으로 황포군관학교에 입교하게 되고 광주에 있던 기타 조선인 열혈청년들도 만강의 희망을 안고 황포군관학교에 입교하였다.

(권립 교수) 《국민당 1차대회는 국공합작을 의미하고 중국혁명의 진보를 의미합니다. 이에 고무된 우리 민족 의렬단의 거두인 김원봉선생과 상해, 무한, 북경의 의렬단 성원들이 광주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은 주로 테로적인 수단으로 반일투쟁을 진행해오다가 로씨야와 련합하고 공산당과 련합하며 농민, 로동자를 부축해야 한다는 손중산의 삼대정책에 흡인되고 손중산의 신삼민주의에 흡인되여 국공합작의 길에서 민족해방투쟁의 기량을 닦으려 했습니다. 마침 1924년 6월에 황포군관학교가 개학하고 11월에는 광동대학이 섰습니다. 1925년 10월에는 광동대학을 중산대학으로 고쳤습니다. 이리하여 적지 않은 우리 민족 혁명지사들이 이 두 학교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의렬단 단장 김원봉이 광주에 도착한것은 1924년 4월중순으로 추측된다. 그는 광주에서 쏘련대표를 기다리는 한편 국민당 원로들인 료중개(廖仲恺)와 담평산(谭平山)을 방문하였다. 료중개는 손중산의 유력한 조수였고 국민당좌파의 지도자로서 국공합작의 전 과정을 주도하였다. 그리고 쏘련과의 교섭을 맡았을뿐만 아니라 정부 재정부장에 광동 성장을 겸하고있는 실력자였다.

중국공산당 당원이면서 국민당에 입당한 담평산은 중앙조직부장을 맡고있었다. 이들을 만난 김원봉은 조선혁명투쟁을 지원할것을 요구했다. 그리하여 의렬단 단원들의 국민당군 배속이거나 황포군관학교 입교가 가능해졌다. 그후 1925년 8월경에 의렬단 간부진과 19명 단원은 광주로 오게 되고 따라서 의렬단 본부도 광주에 옮겨오게 된다. 그리고 김원봉을 포함한 의렬단원들이 황포군관학교에 입학한다.

제국주의세력과 유착한 군벌정권을 타도하고 국민정부의 힘으로 중국통일을 실현해낼수 있다고 조선혁명가들은 믿었다. 그들은 중국이 통일되면 국민정부의 지원아래 대일무장투쟁을 전개함으로써 독립과 자유를 찾을수 있다고 생각하였던것이다.

/ 김성룡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중앙인민방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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