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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민족의 긍정적에너지 전하는 조선족 농민 황금숙 씨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15.01.06일 09:34

(흑룡강신문=하얼빈) 황금숙(72세)할머니는 훈춘시 근해가 태양촌에 사는 평범한 조선족농민이다. 평소에 단돈 1원도 아껴쓰는 그녀는 문천지진, 옥수지진, 연변수재로부터 현재의 아안지진까지 모두 루계 4.2만원 헌금했다.

  인민페 4.2만원, 이는 한 평범한 농촌가정에 대해 말하면 7, 8년의 생활비로 충족하다. 황금숙씨가 매번 “거액”의 돈을 기부할때마다 촌민들을 경악케하고 사람들의 호기심과 경의를 불러일으켰다.

  절약정신을 발양해 한평생 검소한 생활을 해온 그녀지만 다른 사람이 어려움에 부딪치면 아낌없이 주머니를 털어 남을 돕고 널리 은혜를 베풀어 뭇사람을 구제하는데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그녀는 별딩.호화주택이 없고 비옥한 땅도 없는 보통농민이지만 가슴속엔 리타주의와 애심으로 가득차 있다.

  소박-절약, 선심 선행

  기자는 황금숙씨를 취재하기전에 먼저 훈춘시 적십자회 회장 동해순을 찾았는데 그는 다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4월 23일, 아들이 걷기 어려운 황금숙씨를 부축하여 훈춘시적십자회를 찾아 왔다.

  황금숙씨는 “아안지진 피해지역에 1만원 헌금하려 한다”고 말했다.

  사업일군들은 두사람의 옷차림을 보고 생활형편을 료해한후 너무 많이 헌금하지 말고 돈을 남겨 생활비에 보태쓰라고 했다. 하지만 황금숙씨는 꼭 인민페 1만원을 지진피해지역에 기부하겠다고 고집했다. 헌금할때 사업일군이 황금숙씨를 촬영하려 하자 그녀는 거절, 여러번 설득해서야 마지못해 동의했다.

  헌금 당시 황금숙씨는 근심, 걱정에 쌓인 표정으로 “텔레비죤과 방송국을 통해 사천 아안 피해지역 상황을 알았는데 지진이 일어난 곳은 이번에도 사천이다. 한개 성에서 5년간에 2번 중대 지진이 일어나 백성들이 이를 어찌 감당해낼수 있겠는가? 이재민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내 맘도 아프다. 그들에게 얼마라도 보태주면 내 맘도 좀 안정될것 같다. 나의 성의를 받아주어 피해지역 인민들에게 실제문제 해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램”이라고 했다.

  동해순씨는 “황금숙씨같이 타인을 관심, 사랑하는 이런 정신을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선전하고 언론을 통해 그의 사심없는 헌금행위를 세인들에게 홍보하기 바란다”고 했다.

  헌금 당시 기자는 취재하려 했지만 황금숙씨는 뭐라해도 동의하지 않았다.

  그녀는 “나는 평범한 농민일뿐이다. 지진피해 지역의 동포들을 힘껏 도와줄따름이지 이런 일로 이름을 날리려는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기자가 근해가두 판사처를 찾아 황금숙씨 주소를 물어볼때 사업일군은 “황금숙씨의 사적은 이 가두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한평범한 농민이 뭇사람들을 놀래울 정도로 일을 해낼수 있어 정말 맘속으로 탄복한다”고 했다.

  가두의 한 사업일군은 “한달 월급이 2000여원인 나에게 300원에서 500원 정도를 기부해라 해도 많이 고려할것인데 보통농민으로써 한번에 1만원을 헌금하다니 정말 아낌없고 사심없는 지원이다. 그녀는 우리 훈춘인들의 자랑이자 본보기”라고 감격해 말했다.

  근해가두에서도 언론을 통해 황금숙씨의 자선행위를 사회의 많은 사람들에게 선전해주기를 희망했다.

  은혜 - 빈곤할 때 도움 받아

  태양촌 서기 김춘봉씨의 동반하에 기자는 촌길을 따라 황금숙씨의 마당에 도착해보니 정말 놀랐다. 그녀의 집은 형편없이 낡아벽체가 기울어졌고 지붕도 온전하지 못했으며 창문은 비닐천으로 막은채였다. 마당의 녹이 쓴 뜨락또르는 황금숙씨 가정에서 가장 값진 물건으로 보였다. 집안은 대대손손 전해온 낡은 궤짝이 있었고 전기기구라곤 흑백텔레비죤 한대와 허술한 작은 방송기기 한대뿐이였다. 이러한 모습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지진피해 지역에 애심을 전달한 “헌금스타” 황금숙씨 집으로 믿기가 어려웠다.

  기자가 몇번이고 취재를 요구해서야 그녀의 허락을 받았다. 그녀는 아들 한수동과 함께 구들에 올라앉으라면서 열정적으로 접대했다. 인사말을 주고받은후 올해 이미 마흔이 넘은 아들 한수동은 가정의 상황을 소개했다. 올해 황금숙씨는 72세, 2008년 남편이 세상뜬후 장남 한수동과 황금숙씨는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왔고 한수동의 누나는 한국에서 돈벌이를 하고 있었다. 황금숙씨는 남매 4명인데 현재 큰 오빠는 훈춘에서 생활하고 둘째 오빠와 셋째 오빠는 항미원조 전쟁에 참가했다가 불행히 희생됐다. 그녀는 학교를 다니지 못했지만 어릴적부터 량호한 혁명교육(红色教育)과 부모 및 오빠들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넘겨받아 언제나 모주석이 말한 “물을 마시면서 우물을 판 사람을 잊지 않는다(吃水不忘挖井人)”는 말을 명기했기에 어려움에 봉착한 다른 사람들을 도울 생각을 하게 되였다.

  한수동은 기자에게 “어머니가 사심없이 공헌정신을 갖게 된것은 어릴적부터 많은 도움과 관심을 받아왔기때문이다. 30여년전 내가 십여살때 가정형편이 극도로 궁핍했고 하루 세끼도 보장할수 없었으며 몸에는 늘 더덕더덕 기운 옷을 입고 다녔다. 부모의 몸도 줄곧 좋지 않아 병난이 끊기질 않았고 다른 사람들은 ‘병골집(病鬼家)’이라고 할 정도였다. 매번 병이 중해져도 돈이 없어 병을 보지 못했고 너무 심하면 대대에 찾아가 소개신을 뗀후 외상으로 병을 보았으며 마을 사람들도 물품을 보태주었고 도와주기도 했다. 이때 어머니는 맘속으로 감화되어 결심을 내리고 향후 꼭 고향사람들의 은정에 보답하려 했고 관심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기 시작했다”고 했다.

  한수동은 어머니 황금숙씨의 자선행위는 자주 보고 들어서 이젠 익숙하고 습관이 되였고 어머니의 언행을 매우 지지해 나섰다.

  한수동은 “국가의 공민이라면 국가를 도와 곤난을 분담할 의무가 있다. 현재 국가의 정책이 좋아 우리 농민들의 농사일에도 보조금이 있어 먹고 입는 등 생활에는 부담이 없다. 자연적으로 도움이 필요되는 사람들을 도울 생각이 난다”며 “어떤 사람들은 어머니가 기부한 자금이 많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자기 능력이 되는데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와 피해지역 인민들이 곤경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고 인정한다”고 했다.

  한수동은 “중국엔 56개 민족이 있고 56개 민족은 한형제와 같다. 어떤 민족 형제든지 어려움이 있으면 기타 민족은 자기 힘이 닿는대로 도와줘야 하며 이웃집에 곤난이 있을때처럼 우리도 꼭 도와나설것이다. 게다가 대지진 피해지역의 동포형제들은 더욱 방조해야 한다”고 인정했다.

  자강 - 최저생활보장과 아파트 제공 거절

  기자가 “이렇게 많은 돈을 기부했는데 생활에 영향이 없는가?”고 묻자 황금숙씨는 “지진피해 지역에 돈을 기부했지만 생활에는 별로 영향이 없다. 집에는 땅이 있고 매년 수확으로도 생활할수 있다”고 했다.

  2008년, 문천지진후 촌민위원회에서는 회의를 열고 황금숙씨의 관련 사실을 연구, 촌민위원회 성원들은 일치하게 생활이 곤난한 그녀에게 농촌최저생활보장을 신청해줘야 한다고 했다. 김춘봉씨가 최저생활보장 신청 관련 사실을 황금숙씨에게 알렸지만 그녀는 단호히 거절했다.

  그녀는 “난 나이가 많고 생활이 곤난하지만 나보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많고도 많다. 뿐더러 아직 아들이 보살펴주기에 최저생활보장은 신청할 필요가 없다. 대신 더욱 생활이 구차한 사람들에게 주고 그들을 도와야 한다”고 했다.

  김춘봉씨가 황금숙씨의 최저생활보장금 거절 사연을 회억할때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눈에는 눈물이 글썽해 있었다.

  김춘봉씨는 “황금숙씨는 다년간 마을에 부담을 더해주지 않았고 아무런 요구도 제출하지 않았다. 마을에서 주택개조를 진행할때도 최대한으로 지지했을뿐 귀찮게 한 일은 없다”고 했다.

  황금숙씨는 “나는 현재 생활에 매우 만족하고 집이 있어 입고먹는 념려가 없다. 2007년 우리 집 땅이 징용당했고 동시에 징발보상비를 받았다. 하지만 이 돈은 나에 대해 말하면 쓸모가 없다. 또한 아들이 효도하면서 옆에서 보살펴주니 다른건 필요가 없고 매우 자족한다”고 했다.

  김춘봉씨는 “지난해 마을에서 집체 이사할때 훈춘시에서 황금숙씨에게 아파트 한채를 주기로 했지만 그녀는 거절했다. 그들은 여태껏 생활해온 이 땅을 아꼈고 농촌생활에 습관돼 떠나기 싫다고 했다. 그들은 현유의 집 옆에 방 한칸을 내올 준비를 하는데 하나는, 주택조건을 개선하는것이고 다른 하나는, 황금숙씨가 미혼인 아들에게 안해맞이를 위한것”이라고 했다.

  황금숙씨는 “새로 집을 짓게 되면 집안에 일부 새로운 가구, 이불과 전기기구를 추가 구입할것이며 우리는 또한 이런 능력이 있어 더욱 잘 살것”이라면서 금후의 행복한 생활을 꿈꾸었다.

  기자는 떠나기전에 황금숙씨와 악수로 작별인사를 하면서 보니 손에는 굳은 살이 많이 박혔지만 눈에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행복감과 만족감을 전해주는 빛이 발산하고 있었다. 그녀의 이러한 사심없는 애심과 고상한 품격속에는 애국의 정, 민족단결의 정이 넘쳐 흐르고 있었으며 더욱은 중화민족의 긍정적 에너지가 전달되여 사람들의 중국 꿈을 실현하는데 보다 큰 신심을 가져다 주었다.

출처: 두만강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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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 의견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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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대단함다..
답글 (0)
할머니 정신 차리시오.
돈 있으므 자신의 생활에 신경쓰시오.
답글 (0)
조선족이 중화민족인가????정신 차리오,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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