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한지숙 기자] ‘강한 일본’을 외쳐온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이슬람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의 일본인 인질 살해 위협으로 인해 딜레마에 빠져 있다. IS 요구대로 ‘72시간 내 2억달러(2176억원)’를 지불하고 자국민의 소중한 목숨을 구할 것이냐 아니면 테러리스트의 협박에 굴하지 않는 강경한자세를 취할 것이냐, 선택에 기로에 놓여 있다.
중동 방문 중에 이번 소식을 접한 아베 총리는 20일 일단 서둘러 귀국길에 올랐다. 아베 정부는 당장 국제사회에 협력의 손길을 구했다.
NHK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일본시각 20일 밤부터 21일 새벽까지 요르단, 터키, 이집트 정상과 잇달아 전화통화를 했다. 아베 총리는 요르단 국왕인 압둘라 2세와의 통화에서 “인질 조기 석방을 위한 협력을 얻고 싶다”고 말했고, 압둘라 국왕은 정보 수집 등 면에서 최대한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 등과도 통화해 협력을 요청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요르단강 서안 라말라에서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의 공동기자회견 도중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 =게티이미지]
공교롭게도 아베 총리 집권 시절에 중동에 있는 자국민에 대한 테러 위협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3년 1월 중동 사태로 알제리에서 일본 국민 10명이 이슬람 무장세력에 의해 사망한 적이 있다. 당시 일본은 구출작전을 시도할 수 없었다. 알제리에서 생존자를 호위하고 희생자 시신을 고국으로 가져올 군대 조차 보낼 수 없었다. 아베 총리가 제96대 총리에 취임한 지 한달여 지난 시점에서 발생한 이사건으로 아베 총리는 방위 정책에 있어 보다 더 적극적이고 강경한 노선을 취했다.
실제 아베 총리 집권 이전 10년간 감소세이던 일본 국방비는 아베 정권 하에서내리 3년째 증가했다. 올해도 지난해 보다 2% 늘어난 2조엔(약 45조 80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가 ‘강한 일본’을 외칠 수록, 재외 일본 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잡은 테러리스트의 위협이 증가하고 있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도쿄 소피아대학의 정치학자 나카노 코이치 교수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협박 동영상으로 인해 아베 총리는 “다소 까다로운 균형잡기”를 시도해야한다고 진단했다.
코이치 교수는 “아베 총리는 테러리스트의 위협에 강경한 대응을 보이면서도 인질이 처한 곤경에도 깊에 걱정하는 모습을 동시에 보여야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만일 아베 총리가 이런 압박을 처리할 수 없고 물러 보인다면, 지지기반을 잃을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일본인 인질의 목숨에 무관심해 보인다면 국민의 신임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아베 총리의 ‘딜레마’를 지적했다.
아베 총리는 협박 동영상을 최초로 접한 뒤 IS를 회유하는 듯한 자세도 취했다. 아베 총리는 협박 동영상에서 중동의 IS 격퇴와 관련해 일본의 2억 달러 지원 약속을 언급한 대목을 의식한 듯 20일 “일본의 지원은 난민 지원을 비롯한 비(非) 군사 분야에 대한 공헌”이라고 설명했다.
타임은 “이번 위기는 국민 여론을 둘로 나눠 놓을 수 있다”며 아베 총리가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을 기화로 펼치고 있는 ‘적극적 평화주의’에 대한 찬반 논란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했다.
아사히신문의 최근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에 대한 지지율이 25%로 전달 조사 보다 7% 포인트나 감소한 것도, 아베 총리로선 부담이다. 가뜩이나 국내 지지기반이 약화됐는데, 국외에서 예상치 못한 리스크가 발생한 셈이기 때문이다.
이미 작년 여름 이후에 붙잡힌 일본인 인질들에 대한 아베 정권이 몸값을 지불할까. 아베 총리가 가진 선택지는 별로 없고, 시간은 점차 72시간 내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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