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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이야기20]환자의 신음소리 곧《신호》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5.09.06일 11:47
—연변대학 부속병원 신경외과 간호장 김금화의 이야기



김금화간호장

사람들은 늘 간호원이라면 그저 의사의 분부대로 링게르를 놔주고 상처나 처치해주는 사람으로 여기군 한다. 그러나 실제 간호원사업은 그것뿐만이 아닌 고달프면서도 전업성이 강한 직업이다.

2013년 3월의 어느 하루, 연변대학 부속병원 신경외과 간호장 김금화(53세)가 사우나에 갔을 때였다. 때밀이를 하는 한 일군이 말말간에 자기가 40일동안 머리가 너무 아파 여러 병원을 돌아다녔지만 아직 진단을 내리지 못했다는것이였다. 곁에서 이 말을 듣고있던 김금화는 그 일군의 병증상을 상세히 문의하고나서 연변병원에 가서 CT를 한번 해보라 건의했다. 그 일군은 의아한 눈길로 김금화를 쳐다보며 믿지 않았다.

김금화는 전화번호를 알려주면서 자기가 돈을 대줄테니 오늘내로 꼭 CT를 해보라고 사정하다싶이 했다. 검사결과 만성경막하혈종(慢性硬膜下血肿)이라는 병진단이 내렸다. 당장 수술을 해야 했다. 외상으로 생긴 이 병은 자칫하다간 언어장애가 오거나 생명위험도 초래할수 있었다.

병세에 따른 관찰은 간호원의 가치승화



간호원들과 함께 환자의 병세를 살펴보고있는 김금화(중).

《간호원은 환자들에 대한 세밀한 관찰을 통해 정확한 병적변화를 의사에게 제공하여 치료방안을 짜도록 해야 한다. 이는 간호원의 능력표현이고 자기가치의 승화이다. 간호수준을 높이려면 풍부한 경험과 지식루적이 필요하다.》이는 15년동안 간호장으로 활약하고있는 김금화의 경험담이다.

지난 6월 4일, 기자는 김금화가 근무하고있는 연변대학 부속병원 신경외과 입원부를 찾았다.

7시 30분경, 4층 입원부에 들어서는데 간호원 몇명이 402번 병실로 달려들어가고있었다. 당장 수술을 받을 고씨성 환자가 갑자기 경련을 일으킨것이였다.

《너무 긴장해서 경련이 일어난거지요. 혀를 깨물어 피까지 났어요. 집에서도 세번 일어난적 있었대요. 자기절로 심리상태를 조절해야지요. 그래야 수술을 시작할수 있거든요.》김금화는 날랜 솜씨로 환자의 입을 닦아주면서 류의할점들에 대해 일일이 지적하였다.

그러고는 그는 환자의 경련발작의 빈도와 시간 그리고 국부인지 아니면 몸 전체인지를 잘 관찰할것을 고씨 환자를 맡은 간호원에게 거듭 강조했다.

연후에 종종걸음으로 3일 새벽에 입원한 426실 51번 환자를 찾아갔다. 한밤중에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머리를 다친 환자이다. 그런데 그 환자는 머리타박상때문에 자꾸 무의식적으로 산소호흡관을 떼여놓아 간호원들을 애먹이고있었다. 김금화는 환자에게 산소호흡관을 꼭 끼우도록 담당간호원들에게 신신당부하였다.

신경외과는 외상으로 인한 뇌, 척추 등 신경계통질병 환자들이 대부분이여서 가끔 간호원들이나 환자가족들이 잠깐 자리를 비우거나 잠든 순간에 병실을 빠져나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8년전의 일이다.

머리를 다친 한 환자가 새벽 1시에 링게르를 맞아야 했다. 1시 35분까지 링게르를 다 맞았는데 1시 40분에 환자가 병실에서 깜쪽같이 사라졌다. 당직 간호원의 전화를 받고 김금화는 즉시 병원으로 향했다. 감시제어기기를 통해 문밖으로 나가지 않은것으로 보아 환자는 분명 병원안에 있었다. 그런데 병원의 구석구석을 다 훑었지만 좀체로 찾을수 없었다. 그러다 장식중에 있는 감염과 쓰레기무더기에서 잠자고있는 환자를 발견했다. 그때는 아침 5시 58분이였다. 환자가 병원밖을 나가지 않았기에 다행이였다. 김금화는 안도의 숨을 후 내쉬였다.

언젠가는 한 환자가 병원밖을 빠져나가 청년호(지금의 청년광장)에서 환자를 발견한적도 있었다.

생과 사의 앞에서

환자의 병세에 따라 하나하나 체크하는것이 간호원의 직책이다. 중증환자에 대해서는 혈압, 심률, 배농(引流) 등 수치변화를 파악하고 지어 환자의 대소변도 받아내야 했다. 환자의 정신상태, 표정 하나에도 신경써야 하는 사람이 간호원이다.

8시 20분즈음은 낮밤근무교대반회가 열리는 시간이다.

그런데 이날 근무교대반회는 402실 고씨 환자가 갑자기 경련을 일으켜 구급하는 바람에 뒤로 미루어져 9시에 열렸다.

9시 35분, 등록책을 들고 컴퓨터앞에 앉은 김금화간호장.

그는 전날밤 52명환자들에 대한 병세기록을 검사하고 약투입상황을 체크했다. 총 57개 침대에 52명 환자가 입원했다. 이중 22명은 1시간에 한번씩 관찰해야 하는 1급 간호환자이고 24명은 2시간에 한번씩 지켜봐야 하는 2급 간호환자이며 6명은 3급 간호환자이다. 그는 부동한 색상으로 간호대상을 분별해놓았다.

간호사업은 매일 생과 사를 마주하고있다. 육체적압력은 그래도 견딜수 있지만 정신적압력은 책임감과 사랑이 없이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김금화가 30살 되는 해인 1992년 섣달 그믐날 밤의 일이다. 그는 그날 신경외과로 자리를 옮긴후의 첫 그믐날 당직을 섰다.

그날, 가정싸움으로 머리에 부상입은 한 환자가 병원에 호송되였고 두피를 이식해야 했다. 두피이식을 하려면 머리를 깎아버려야 했다. 이 일이 김금화한테 맡겨졌다. 처음 닥친 일이라 무서워서 손이 떨렸다. (내가 하지 않으면 어차피 다른 사람이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는 속으로 이렇게 되뇌이면서 한쪼각한쪼각 깎고 또 깎았다. 1시간 반의 신고끝에 김금화는 드디여 머리를 다 깎아냈다.

간호를 하다나면 끔찍하게 무서운 일이나 온 몸에 피가 묻고 가래를 뒤집어 쓰는 더러운 일에 봉착하기란 례상사였다. 그러나 김금화는 오직 사람을 살리려는 굳은 용기와 착한 마음을 지녔기에 용케도 그 모든 난관을 극복할수 있었던것이다.

《어느날 저녁에는 급진환자 5명이 병원에 호송된적이 있었는데 그중 4명이 수술을 받고 1명이 숨진 일도 있었어요. 그날은 참 끔찍했지요.》하면서 김금화는 그때의 고달픔을 회억하면서 눈굽에 손가락을 찍는다.

의사는 신선이 아니다. 돈을 팔고도 병이 낫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때면 환자와 환자가족들의 불평이 간호원들한테 쏟아진다. 약값이 비싸도 간호원들한테 분풀이를 하고 링게르주사를 한번에 못찌른다고 다짜고짜 욕하고 귀썀을 치는 환자가족도 있다. 이럴 때면 병원측에서는 무조건 잘못을 빌어야 한다.

그러나 인정이 있는 환자와 환자가족이 더 많다고 김금화는 말한다. 기자의 취재를 받는 동안 김금화는 환자가족들로부터 오는 감사의 전화를 여러차례 받았다.

40대 아들을 잃은 한 농촌할머니는 비록 아들은 돌아갔지만 아들이 생전에 간호원들의 보살핌을 많이 받았다며 방울도마도 몇근을 사들고 와서 김금화더러 간호원들에게 전해주라고 해서 간호원들을 감동시켰다.



환자가족의 물음에 투약상황을 상세하게 설명해주는 김금화.

간호지식을 알수록 부족함 느낀다

오전 10시 15분경, 김금화는 손전지를 들고 환자들의 구강, 상처 등을 비춰보며 채 돌지 못한 병실을 마저 돌아본다. 돌면서 그는 환자들의 신음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김금화는 매일 오전에 한번, 오후에 한번씩 이렇게 병실을 돌아본다. 병실을 도는데만 매일 평균 2만여보씩 걷는다. 그래서 그의 신은 1년에 세컬레씩 닳아떨어진다.

그날 오후에도 김금화는 간호기술학교 학생들에게 간호기술특강을 했다. 매일 7시 30전에 출근해서 근 10시간 동안 병원에서, 게다가 급한 환자가 있으면 한밤중이라도 달려간다. 그래서인지 저녁엔 지칠대로 지쳐 사맥이 해나른해진다고 한다.

《의사가 시키는 일을 하는것은 피동적이지만 관찰은 주동적인 행위이다. 간호수준의 높고낮음은 관찰을 했는가, 어떻게 했는가, 할줄 아는가에서 나타난다.》이렇게 말하는 김금화는 《간호지식을 장악할수록, 경험을 쌓을수록 걱정이 더 많아지고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더 공부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김금화는 1986년 7월에 연변위생학교를 졸업하고 연변병원 보통외과에서 5년동안 근무하다가 1991년에 신경외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섣달그믐날 밤당직만 24년간 섰다.

그 사이 그는 상해복단대학 의학원 신경외과의 연수를 마쳤고 1996년에는 전국 100명 의무일군중의 한명으로 뽑혀 일본류학을 한적이 있었다.

기자가 거의 30년간 고통속에서 헤매는 환자들을 마주하면서 지겹다는 생각을 한적이 없었는가고 물었다. 김금화는 아버지 김철구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인지 환자를 집식구들처럼 생각하는 마음으로 일을 하는 기분이다고 했다. 김금화의 아버지는 연변의학원 2학년을 다닐 때 척추결핵으로 대학생활을 접고 4년동안 집에서 병치료를 했다. 5년만에 다시 시험에 합격되여 의학원에 입학한 그의 아버지는 농촌에서, 도시에서 뭇사람들의 존중을 받는 의사로 되였다.

그래서 자기도 의학전업을 선택했단다. 어릴 때부터 늘 아버지를 따라 다닌 김금화는환자들의 신음소리가 곧 자기를 부르는 《신호》로 들린다면서 평생 환자들의 아픔을 덜어주는것을 자기의 천직으로 삼으련다고 말한다.



즐거움과 괴로움을 같이 감수하고있는 신경외과 부분 간호원들과 함께 있는 김금화(앞줄 우측에서 세번째).

편집/기자: [ 홍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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