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전남도민일보]김수화 기자= 백제시대 축조된 것으로 알려지며 문헌 속 기록으로만 남아있던 전남 장성의 ‘천년고성’ 진원성의 실체가 처음으로 확인됐다.
남쪽 성문 터인 남문지(南門址)와 성벽의 발굴을 통해 진원성은 백제시대 처음 축조(초축)돼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까지 3차례 수·개축이 이뤄졌으며 당시 진원현의 행정 사무를 맡아보는 치소(治所·행정 중심지) 역할을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고고학적으로 여러 의미가 있는 만큼 유물 등에 대한 추가 발굴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남문화재연구원은 13일 오전 전남 장성군 진원면 진원리 진원성 옛터에서 ‘진원성 발굴조사 현장 학술 자문회의’를 열었다.
자문회의에는 김경칠 전남문화재연구원 조사단장과 전남도·장성군 관계자 등이 참석했으며, 자문위원으로는 심정보 한밭대학교 명예교수와 최인선 순천대 사학과 교수가 참여했다.
이번 조사에서 발굴된 부분은 진원성의 남문지 440㎡와 서벽 30㎡, 북벽 30㎡다.
조사단은 원래 모습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알려진 것과 달리 성벽이 모두 남아 있었으며 남문지를 비롯한 동·서·북문지 등 성문 4개의 위치를 추정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3개의 골짜기를 끼고 있으며 ‘서고-동저’형의 석축산성인 진원성은 성 내외벽이 모두 2~3단으로 축조돼 있다. 조사단은 초축 이후 내외벽 모두 한 겹의 석축이 덧대어져 축조된 점을 진원성의 특징으로 꼽았다.
성벽의 축조방식은 지형에 따라 달랐는데 비교적 경사가 급하고 지형이 가파른 남문지와 서벽 구간은 외벽을 2차례에 걸쳐 축조했다. 경사가 없이 비교적 편평한 북벽과 동벽 구간은 외벽을 1차례 축조한 것으로 조사됐다.
성벽의 너비는 남문지 7.3m, 북벽 5.7m, 서벽 5.6m, 동벽 6.9m 정도로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문지에 가까울수록 너비가 넓었다. 특히 이번 발굴로 확인된 남문지의 경우 백제를 거쳐 통일신라, 고려에 이르기까지 3차례 정도 수·개축이 이뤄졌다.
김경칠 조사단장은 “일반적으로 앞 시대에 쌓은 성곽이 무너지거나 파손될 경우 이를 보수하거나 보강해 사용하는데 진원성은 1차 벽 앞에 성곽(2차 벽)을 새로 지었다”며 “이는 매우 드문 형태이며 전남지역에서는 처음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심정보 한밭대 명예교수는 “진원성은 백제시대 처음 축조돼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까지 이어진 산성인 것 같다”며 “시대적인 변천과정을 살펴 볼 수 있는 중요하고도 재밌는 유적이다. 유물의 추가 발굴을 통해 2차 외벽이 만들어진 시기가 정확히 언제인지를 확인하는 것은 숙제”라고 말했다.
기자이름 김수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