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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미원조전쟁터에서 입당하던 그날을 회억하여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1.06.15일 17:26

1952년 10월 대덕산에서

올해는 당창건 90돐이 되는 해이다. 80세가 넘는 나는 포화속에서 입당하던 격동의 그 시각을 잊을수 없어 이 글을 씀으로써 후대들에게 오늘의 행복이 어떻게 왔는가를 알려주려 한다.

1950년 10월 19일 나는 20세때에 지금의 유수시에서 중국인민지원군에 참가하여 40군 118사 정치부에 배치받았다.

1952년 5월 4일, 우리 군은 제1선인 대덕산수비전임무를 맡았다. 우리는 거대한 《지하장성》을 쌓고 적군의 여러 차례의 진공을 무너뜨렸다. 한편 소부대를 출동시켜 적군의 약점을 리용하여 주동적으로 진공하여 한개 패, 한개 련씩 소멸했다. 결과 아군은 450만평방메터 되는 면적을 점령하게 되였다.

1952년 7월 17일, 전날에 있은 사정치사업자 회의토론을 하고저 각 퇀과 소속 부대에서는 남쪽과 북쪽 비탈에 모였다. 회의를 시작하려는데 적군의 비행기가 돌연 남쪽으로부터 북쪽 비탈에 날아오더니 폭탄을 던지고 중기관총으로 소사했다. 나는 즉시 방공호를 빠져나와 둘러봤는데 개천에서 리비서가 누워서 소리질렀다. 나는 소사를 무릅쓰고 리비서한테로 달려갔다. 폭탄편이 리비서 넙적다리를 적중했던것이다. 나는 즉시 리비서를 업고 강옆의 홰나무아래에 갔다. 위생원 쇼묘가 따라와 부상부위를 동여매는것을 보고 나는 또 남산비탈에 달려갔다. 사직속부대의 정수증과장을 비롯한 형제부대 6명 퇀급간부 등 20여명 장병들이 모두 희생되였다. 그때 그 장면을 무엇이라 형용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또 우리 과의 동지들이 있는 북산비탈에 달려갔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자 방공호로 돌아왔다. 과의 7명 동지들이 방공호에 있었고 나는 방금 본 상황을 장주임한테 알려주었다.

그날 저녁 방공호에 1메터도 넘게 물이 들어와 방공호에서 자지 못하게 되여 우리는 나의 연줄로 한 민가에서 묵게 되였다. 야반에 이르러 하늘에서 우뢰소리와 함께 비행기소리가 들려왔다. 《적군이 온다. 빨리 일어나시오》나는 소리치며 전우들을 깨우고 길안내를 하여 한명한명 방공호에 들어섰다. 우리가 들었던 민가는 폭탄에 의해 폴싹 가라앉았고 외양간의 소도 폭탄에 맞아 죽었다. 백정방간사는 《아짜아짜한 판이였네, 쇼백이 8명 목숨을 살렸네!》라고 칭찬했다.

1주일이 지났을 무렵에 조률원인 제문선동지가 나를 찾아와 《이번의 표현에 근거하여 상급에서는 쇼백에게 3등공을 수여하고 조선인민정부 군훈장을 수여한다》며 《입당하고 싶냐?》고 물었다. 《당연 입당하고 싶죠, 입당은 나의 꿈이나 입당조건에 구비되지 않았습니다》라고 내가 말하자 그는 《이번에 쇼백이 1명 부상병을 구하고 8명 목숨(영급 간부 4명, 련급 간사 3명)을 구했는데 완전히 공산당원조건에 구비된다》고 하면서 나의 입당소개인이 되겠다고 했다.

10월 12일 저녁, 정치부 주둔지에서 당지부대회가 있었다. 이날따라 하늘의 별이 특별히 반짝반짝 빛났는데 꼭 마치 나를 축하해주는것 같았다. 나는 제문선조률원을 따라 오른손을 들고 맹세했다.

《나는 자원으로 중국공산당에 가입한다. 당의 강령을 인정하고…공산주의실현을 위해 일생동안 분투하련다. 선서인 백락금》


회의가 끝나서 내가 눈물을 머금고 뒤를 돌아 보는데 제2의 입당 소개인인 손혜빈동지가 내앞에 다가서며 앞으로는 어떻게 하면 진정한 공상당원이 되겠는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일깨워 주었다.

《당조직에서 시름을 놓으십시오. 나는 실제행동으로 당을 위해 일하겠습니다》. 이날 저녁 나는 손전지를 빌어 일기를 썼다. 《위대한 당이여, 나는 착실하게 일하는것으로 합격된 공산당원이 되렵니다. 피땀을 흘리면서 당을 위해 모든것을 바치겠습니다 》.


나의 맹세는 헛되지 않았다. 나는 1953년의 서해안 반등륙전에서 특수공헌을 하여 3등공을 세우고 또 한번 조선인민정부의 군훈장을 받았다. 1953년 7월에 귀국한 나는 심양군구 사령부 산하의 특수근무부대에서 지도자로 있었고 1981년에 지방에 제대하고 1994년 4월에 퇴직했다.

/ 장춘 백락금

1953년 청룡산에서 전우들과 함께

편집/기자: [ 홍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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