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비비시 방송 “상대 감정 상태 연구해 협상 활용”
스탈린
국가 정상들의 해외 방문 때 상대국 정보당국이 정상의 건강상태를 염탐하기 위해 분변까지 수거한다는 항간의 소문이 새빨간 거짓말은 아니었던 듯하다. 적어도 스탈린 시절 소련은 이같은 ‘비밀 채변 작전’을 펼쳤다는 주장이 나왔다.
1940년대 소련 스탈린의 비밀경찰이 마오쩌둥 등 외국 지도자들의 배설물을 채취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영국 <비비시>(BBC) 방송이 러시아 언론을 인용해 27일 보도했다. 방송은 전직 소련 스파이였던 이고르 아타마넨코가 러시아 첩보기관 자료를 연구하던 중 이같은 사실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아타마넨코는 소련 정보당국이 1949년 12월 마오쩌둥의 모스크바 방문 당시 ‘비밀 화장실’을 설치해, 마오의 배설물이 하수구로 흘러내려가지 않고 ‘비밀 상자’로 수집됐다고 주장했다. 방문 기간 동안 마오의 분변은 꾸준히 모니터됐으며, 스탈린은 이를 당시 진행된 협상에서 주요 자료로 참고했다는 것이다.
당시 소련 쪽이 배설물에서 얻어낸 자료는 마오의 감정 상태에 대한 것이었다는 게 아타마넨코의 설명이다. 그는 “예컨대 배설물에서 트립토판 수치가 높으면, 소련 쪽은 그가 침착해서 다가설 수 있는 상태라고 판단했다. 반면, 칼륨이 부족하면 긴장해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을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소련엔 지금 정보당국들이 쓰는 도청 도구들이 없었다. 그래서 전문가들이 어떤 인물에 대한 정보를 빼내기 위해 과도한 노력을 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당시 마오쩌둥은 국-공 내전을 마무리짓고 앞서 10월 중화인민공화국 성립을 선포한 뒤 의기양양하게 모스크바 방문길에 올랐지만, 스탈린으로부터 크게 얻어간 것이 없었다는 게 중론이다. 오히려 모욕적인 대접을 받았다. 마오가 도착한 역에선 제대로 된 환영행사도 없었고, 환영 리셉션도 크레믈이 아닌 시내 호텔에서 열렸다. 스탈린이 만나줄 때까지 며칠 동안 소련 쪽 인사들은 얼씬도 하지 않았다. 마오는 ‘평등한 관계’를 요구했지만, 스탈린의 철저한 ‘길들이기’가 이어졌다.
소련 쪽이 숙소를 도청하고 있다고 확신한 마오는 벽에 대고, “나는 먹고 싸는 것만 하러 온 게 아니오!”라고 외치기도 했다. 하지만 마오가 ‘싼’ 배설물도 결국 스탈린의 ‘길들이기’ 과정 가운데 하나였던 셈이다.
아타마넨코는 이같은 ‘비밀 채변’ 작전이 당시 스탈린의 심복으로 내무인민위원회의 수장이었던 라브렌티 베리야의 지휘 아래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러시아 언론들은 스탈린 사망 뒤 집권한 흐루시초프가 이를 폐기했다고 보도했다. <비비시> 방송은 러시아 정보당국을 접촉했으나 “코멘트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전했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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