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있는 검찰청에서 수배를 내린 수배자가 제주도에서 잡히잖아요. 그러면 제주 경찰이 수배자를 데리고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에 내려서 다시 차를 타고 서울에 있는 검사실까지 데려가야 합니다.”경찰청 수사구조개혁단 김수환 과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김 과장은 “제주 경찰이 제주지검까지만 데려다주면 검찰이 그때부터는 피의자 신병을 알아서 처리해달라는 것이 경찰의 요구”라고 설명했다.
◈ 경찰, "각자 잡은 범인은 각자 처리합시다"
검찰과 경찰이 이번에는 피의자의 호송․인치 업무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고 있다.
피의자의 호송․인치란 피의자를 수사기관까지 데려가고 데려오는 일, 그리고 유치장에 입감시키고 빼내는 업무를 말한다.
현재 피의자의 호송․인치 업무는 모두 경찰이 맡고 있다.
그러다보니 밤중에 검사실에서 피의자 조사가 끝났다고 전화가 오면 형사들은 자기가 조사하던 피의자와 피해자를 놔두고 검사실에 있는 피의자를 데려와 유치장에 입감해야 한다.
경찰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검찰 피의자까지 호송하다보니 정작 경찰 수사가 제동이 걸리기도 하고, 일선 형사들 사이에서는 ‘우리는 검찰의 피의자 셔틀’이라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오고 있다.
경찰은 지난해 형사소송법 개정과 대통령령 개정으로 수사주체성을 인정받은 만큼, 이번에야 말로 검찰이 직접 수사하는 피의자는 검찰에게 처분을 넘기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 검찰, "법적 근거도 없는 주장"
물론 검찰 측에서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호송․인치도 넓게 보면 수사에 속한다고 보는 것이 대법원 판례이므로 당연히 검사의 수사지휘를 받아야한다”며 “영장에 피의자의 구금장소 등이 명시돼 있고, 영장은 사법경찰관이 집행하도록 형사소송법에 명기돼 있다”고 반박했다.
또 검찰에 호송․인치 업무를 할 수 있는 차량과 인력이 없는 점, 검찰 수사관이 피의자 호송을 위한 무장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는 점을 들어 검찰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일단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예산과 인력이 확보돼야 논의할 수 있는 사안인데, 경찰이 무작정 업무를 떠넘기려 한다는 것이다.
검-경은 지난해 말부터 호송․인치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어오다, 총리실의 권고로 30일까지 호송․인치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로 하고 모두 8차례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그러나 협상은 번번히 엇나갔고, 결국 협상 시한인 이날까지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검-경 양측은 일단 협상 시한을 잠정 연기해, 다음달 4일에 만나 다시 이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다.
경찰은 현행 호송․인치 제도를 ‘잘못된 관행’이라고 규정하고, 개선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검찰 피의자에 대한 호송․인치 업무를 중단하겠다는 입장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로 양측이 합의를 못하고 경찰이 호송․인치 지원을 중단할 경우, 검찰의 수사기능은 큰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게 된다. 호송․인치를 둘러싼 검-경 갈등을 놓고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 노컷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