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투애니원을 아십니까? 멋진 노래를 참 맛깔나게 소화하는 팀이지요.
올해로 데뷔 3년차인 이들의 원래 이름은 ‘투애니원’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들어보면 생소하겠지만 애초에는 ‘투웬티원’으로 불렀지요. 표기도 지금의 ‘2NE1’ 이 아닌 ‘21’이 었습니다.
이름이 갑자기 바뀐 것은 한 무명 가수의 항의 때문이었습니다.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가 ‘투웬티원’(21)이라는 새 걸그룹이 데뷔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대외로 발송하자, ‘투웬티원’이라는 이름을 쓰는 솔로 가수가 불쑥 나타나 불평을 토로했습니다. 자신의 예명이 힘 있는 회사 앞에 사라지게 됐다는 게 요지였죠. 소속사는 정중한 사과를 택했습니다. “미처 알지 못해 미안하다”며 애초의 계획을 전면 수정합니다. 걸그룹 ‘투웬티원’은 그래서 투애니원이 됩니다.
일명 ‘네이밍’(이름짓기·작명)은 가요계에서 여러가지 충돌을 낳곤 했습니다.
남성 그룹 파란과 남성 그룹 비스트간의 힘겨루기가 대표적입니다. 파란의 멤버 ‘AJ’가 있는 와중에, 비스트의 멤버인 이기광이 ‘AJ’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한 게 화근이었죠. 파란과 비스트 팬끼리 다툼을 벌이다가 급기야 소속사간의 감정 싸움으로 비화됩니다. 지금의 이기광은 ‘AJ’라는 표현을 거의 사용치 않고 있습니다.
남성그룹 ‘제국의 아이들’도 이름을 둘러싸고 한차례 소동을 벌여야 했던 팀입니다. 팬들과 미디어가 ‘제국의 아이들’을 줄여 ‘제아’라 부르니, 이번에는 걸그룹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소속사 측이 발끈합니다. “우리 팀에 여성 멤버 ‘제아’가 있는데 왜 그런 이름으로 줄여 부르느냐”며 반발했죠. 요즘도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소속사는 ‘제국의 아이들’을 ‘제아’라 줄여 부르는 매체들에게 항의 메일을 넣곤 한답니다. 제국의 아이들은 공식 자료에서는 일절 ‘제아’라는 표현을 쓰지 않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다소 사소한 문제일 듯하지만 당사자들은 꽤 심각하게 받아들일 때가 많습니다. 미국의 언더 밴드 ‘더 레인’은 가수 비가 ‘레인’이라는 영문 이름을 사용해 공연을 연다고 하자 곧바로 소송을 걸어버리기도 했습니다.
가수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자주 지켜보는데, 제작자들이 특히 힘들어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네이밍’인 것같습니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마땅한 이름이 나오지 않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 있습니다. 멋져야하고, 쉽게 기억되어야하고, 느낌까지 좋아야하고…. 도저히 안되면 전 직원에게 ‘이름 정하기’ 공모를 벌이기도 합니다. SM엔터테인먼트가 ‘소녀시대’라는 이름을 짓기 전 떠올렸던 후보 이름은 100여개를 훌쩍 넘어갑니다. 실력이 출중하다 하여 내부에서 ‘드림팀’이라 불리던 ‘동방신기’도 온 직원이 다 달라붙어 그와 같은 남다른 이름을 상기하게 되었지요.
작명법이 참으로 심플했던 회사도 있었습니다. JYP엔터테인먼트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줄줄이 자연의 이름을 가수의 예명으로 채택한 적이 있었지요. 가수 ‘비’가 있었고, 그 다음이 여가수 ‘별’이었지요. 별양은 곧 하하와 결혼을 한다지요? 그 회사에서 나온 남성그룹에는 ‘노을’이라는 팀도 있었습니다. 비와 별, 그리고 노을, 여러 터무니 없는 영문식 이름보다는 훨씬 아름답다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21세기 인터넷 시대에 있어서는 비와 별, 노을과 같은 이름은 검색에서 상당히 불리한 점을 안고 있었지요. 기상청이 아침에 예보를 발표하고 나면 가수 비와 관련된 기사는 어느 새 파묻혀 버립니다. ‘길고 예쁜 소녀’들이라는 뜻의 여성그룹 LPG도 매일 공시되기 시작한 LPG 가격 때문에 기사 찾기가 영 힘든 팀으로 구분됐죠. 가수 비며, LPG며 그런 단점을 극복해냈으니, 얼마나 불철주야 움직였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국내 가요계를 이끄는 3대 기획사 하면 SM, YG, JYP를 들 수가 있을 텐데, 묘하게도 모든 이름에는 사주의 이니셜이 들어가 있습니다. SM은 ‘이수만’ 프로듀서의 ‘S’ ‘M’에서 비롯됐고, YG는 양현석 대표를 당시 ‘양군’이라 부르는 지인들이 많아 그게 굳어져 ‘양군기획’을 거쳐 지금의 ‘YG’가 되었지요. ‘JYP’는 ‘진영박’의 줄임말입니다. 지금은 대단한 한류 브랜드가 되었지만, 일본 음악 종사자들은 애초 ‘SM엔터테인먼트’를 성인영화 제작사 정도로 착각했다는 우스갯소리 또한 있었지요.
사주의 이름을 내세우는 곳은 개입 사업 영역의 업종에서 다수 발견됩니다. 우리네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개인사업의 영역에서 벗어나 기업화의 길로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흔적이 SM, YG, JYP 이 이름에서도 남아있다 할 것입니다.
<강수진 기자 kant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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