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그라처럼 신약의 특허가 만료되면 복제약이 줄줄이 출시된다. 복제약은 같은 효능에 값은 훨씬 싸다. 환자로선 당연히 복제약을 선택할 것 같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이전에 복용하던 약과 색깔이 다르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미국 하버드대 산하 브리검 여성병원의 애런 케셀하임 교수는 간질 환자들의 복제약 복용 형태를 조사했다. 시판 중인 간질 약의 색깔은 37가지였다. 연구진은 열흘 동안 복제약 처방을 받지 않은 1만1472명의 환자와 처방을 제때 받은 환자 5만50명을 비교·분석했다. 그 결과 기존에 먹던 약과 다른 색의 복제약을 처방받은 환자는 50%가 같은 병원에서 다시 처방을 받지 않았다. 약을 먹지 않으면 위험에 빠질 수 있는데도 색깔이 다르다는 이유로 복제약을 믿지 않은 것이다.
약 색깔의 효과는 1997년 스위스 바젤대가 처음으로 밝혀냈다. 당시 조사에서 녹색 약이 가장 폭넓은 호감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분홍색 약은 심장박동수를 완화하는 효과가, 빨간색 약은 흥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약사들은 이를 근거로 약에 맞는 색을 개발해왔다. 대표적인 예가 남성을 상징하는 파란색을 쓴 화이자의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다.
보건당국은 복제약이 신약과 효능이 같아야 한다고 규정하지만, 겉모습은 고려하지 않는다. 신약 제조사들은 이를 이용해 약 자체 특허가 끝나도 디자인 특허는 계속 유지해 복제약의 진출을 막는다. 비아그라 복제약 '팔팔정'을 출시한 한미약품이 화이자와 법정 다툼을 벌이는 것도 비아그라와 같은 파란색을 썼기 때문이다. 케셀하임 박사는 "환자들은 왜 같은 효능의 약이 겉모습이 다른지 이해하지 못한다"며 "정책 결정자들이 앞으로는 약의 색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결과는 '미국의학협회 저널 내과학'지(誌)에 실렸다.
조선일보 이영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