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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동이장’으로 돌아온 전 국가대표 최강희 감독,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기타] | 발행시간: 2013.07.01일 12:26

최강희 감독이 '봉동이장'으로 돌아가기 전 대표팀과 관련된 소회를 인터뷰를 통해 풀어냈다.(사진=일요신문 임준선 기자)

최강희 감독이 ‘봉동 이장’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30일 전주월드컵경기장서 열린 K리그 클래식 15라운드 경남 FC와 홈경기서 최강희 감독이 이끄는 전북 현대가 4-0으로 승리를 거뒀다. 최 감독 복귀전까지만 해도 2연패를 내달리던 전북은 경남 FC전 대승을 계기로 승점 24를 기록하며 리그 8위서 5위로 올라섰다.

‘자리가 사람을 말해준다’는 말이 있다. 초록색 넥타이를 매고 ‘전주성’에 나타난 최강희 감독의 ‘자리’는 바로 전북 현대 벤치였다.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팀의 재건을 위해 예정보다 빠르게 팀에 합류한 최 감독을 ‘봉동 이장’으로 복귀하기 전날인 27일, 서울에서 만났다.

대표팀 감독이라는 무게를 내려놓은 최 감독은 어느 때보다 홀가분한 표정이었지만, 대표팀과 관련한 질문들에는 평상시와는 달리 어투에 신경을 쓰며 조심스러운 태도로 답변을 이어갔다.

-1년 6개월 만에 봉동으로 복귀한다. 소감이 남다를 것 같다.

“주위에선 휴식을 취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걱정하는데, 지금 전북현대가 처한 상황을 보면 내가 쉴 수가 없다. 아무리 관심을 끄고 쉬려고 해도 무너진 팀 전력을 보니까 한숨만 나와 못 본 척 하기가 어려웠다. 수원 삼성에 4-5를 지는 걸 현장에서 지켜보며 그 날 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지난 1년 6개월간 대표팀에서 진한 희로애락을 맛봤다. 아픔도 있었지만 그걸 경험으로 삼고, 이젠 K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다. 솔직히 걱정보다는 기분 좋은 설렘이 더 크다.”

-대표팀에서 보낸 시간들을 정리해보자. 1년 6개월이 최 감독한테는 어떤 사연으로 남게 되나.

“한 마디로 압축하면 그동안 K리그에서 7년간 쌓은 명성을 1년 6개월 동안에 다 까먹었다고 할 수 있다. 참담했고, 내 자신한테 창피했다. 반성도 많이 했다. 아픔이 큰 시간들이었지만 지도자로서 내자신을 돌아본 계기가 됐다.”



이란전을 지켜보고 있는 최강희 감독. 최 감독은 1년 6개월 동안 얻은 것에 대해 '지도자 경험'을, 잃은 것으로는 '지난 7년간 쌓은 명성을 잃어버린 부분'이라고 말했다.(사진=연합뉴스)

-무엇보다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였던 이란전에 0-1로 패한 데 대해 국민들의 실망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다시 말하지만 나 같은 불행한 감독은 더 이상 나오지 말아야 한다. 시한부 감독의 한계였다. 대표팀 감독 부임 후 첫 경기였던 쿠웨이트전에서 벼랑 끝 승부(2-0 승)를 펼치다 카타르, 레바논전에서 2연승을 내달리며 내 자신이 잠시 방심했던 것 같다. 어찌 보면 애절함이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다보니 선수들에게 모든 걸 맡기게 되었다. 전북 현대에서 하던 스타일대로 믿고 맡기는 축구를 하려 했다. 하지만 결과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대표팀에서는 그런 여유가 통하지 않았다. 레바논 원정 경기에서 이겨야만 했던 경기를 지독한 골대 불운을 겪으며 비기고 돌아오면서 서서히 조급해지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짧은 시간에 전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선수들과 잦은 미팅을 하고, 칠판에 그림을 그리게 되고, 잔소리를 하게 되었고…. 최강희 답지 않은 모습을 보이면서 대표팀이 무너졌다. 그래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를 짓지 못했다. 그게 가장 아쉽고 또 아쉽다.”

-혹시 쿠웨이트전에 이어 카타르, 레바논전에서 연승 행진을 내달릴 때 최강희 감독 체제로 본선까지 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나.

“나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월드컵 본선 진출 확정 후에는 소속팀으로 돌아갈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당시 대표팀 성적이 좋으니까 여론은 물론 팬들까지 내가 브라질에 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심지어 어떤 기자는 ‘국민들이 원한다면? 전북 팬들이 감독님 브라질 갔다 오시라고 부탁한다면?’이라고 물으면서 압력을 가했다. 난 그래도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아니 돌아가고 싶었다. 국대 감독 자리는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니었다. 결코 편하지 않았다.”

-대표팀 감독으로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무엇이었나.

“경기 내용이나 전술적인 모양새는 등한시하고 오로지 결과만 놓고 평가하는 게 힘들었다. 그런 환경을 어쩌지 못하고 받아들였고, 나 또한 한 골 승부나 결과에 집착하게 되면서 내가 원하는 축구를 하지 못했고, 그동안 해왔던 것조차 다 잃어 버렸다. 난 원래 선수들에게 잔소리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선수들을 믿고 기다릴 줄 아는 지도자였다. 그런데 대표팀에서의 최강희는 결과에 조급해 하고, 그 결과를 내기 위해 선수들을 닦달하는 형편없는 지도자였다. 내가 갖고 있는 축구에 대한 자존심과 철학이 무너졌다. 이란전 때는 정말 참담했다.”

-이란전을 전후로 상대팀 감독이었던 케이로스 감독의 비신사적인 도발이 화제를 모았다.

“만약 내가 젊은 나이였다면 그 감독과 제대로 맞장을 떴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난 그 감독이 불쌍해 보였다. 레알마드리드, 맨체스터유나이티드, 포르투갈, 남아공 대표팀 등 세계적인 팀에서 코치와 감독을 역임했던 지도자가 왜 저렇게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변했을까. 혹시 그 사람은 내가 갖지 못했던 간절함, 애절함이 있었던 게 아닐까 싶었다.”

-이란전 때 벤치에 서 있는 최 감독의 모습이 외로워 보였던 건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어느 경기 때보다도 불편한 표정을 보여줬다.

“그 경기는 내가 원하는 시나리오랑 완전 반대되는 상황으로 진행됐다. 난 롱볼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다. 사이드에서 찬스 만들어서 경합할 수 있는 크로스를 올리라고 주문하지만, 선수들도 급한 마음에 자꾸 뻥 축구를 보여줬다. 경기 내용보다 더 안타깝고 속상했던 것은 8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의 현장에서 초상집 분위기를 연출한 부분이다. 기분 좋게 승리한 이후에는 출정식을 통해 그동안 고생한 선수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고, 선수들을 한 명씩 안아주고 싶었다. 못난 감독 만나서 마음 고생 많이 시켰으니, 떠나기 전에 그들을 어떠한 형태로든 위로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무승부로 끝나면서 모든 게 뒤죽박죽이 됐고, 출정식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정말 마음이 쓰라렸다.”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 마지막 3경기를 앞두고 기성용과 구자철을 제외한 최강희 감독. 최 감독은 소속 구단에 통보를 해야 할 시기에 두 선수가 부상 중이었기 때문에 뽑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사진=연합뉴스)

-기성용, 구자철을 발탁하지 않은 데 대해 말들이 많았다.

“레바논전을 앞두고 엔트리를 정할 때 기성용과 구자철은 팀에서 부상으로 4주 이상 경기를 뛰지 못했다. 보통 대회 보름 전에 공문을 보내야 하는데 부상 중인 선수를 어떻게 뽑을 수 있겠나. 우즈벡전이 끝나고 이란전을 앞두고서 그 선수들을 부르지 않은 이유 또한 휴가를 맞아 잘 쉬고 있는 선수에게 일주일 만에 몸 만들어서 대표팀에 들어오라는 얘기가 말이 되는 소리인가. 두 선수를 뽑지 않은 게 아니라 뽑지 못했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분명히 말하고 싶다. 감독이 선수 선발할 때 개인적인 감정을 앞세워 엔트리를 정하나? 성용이와 자철이를 상대로 감정을 가질 일은 또 무엇인가. 선수 선발은 감독 혼자 결정하는 게 아니다. 코칭스태프의 의견과 코칭스태프에서 뽑은 선수들을 토대로 의견 조율을 거친 끝에 감독이 결정하는 것이다.”

-레바논전 이후부터 대표팀과 관련해서 다양한 소문들이 나돌았다. 이미 듣고 있었을 텐데….

“이 얘기는 꼭 하고 싶다. 만약 누군가가 나한테 차기 감독으로 누굴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난 축구전문가라고 하시는 ○○○ 씨를 추천했을 것이다. 그 분은 축구의 전술가이고 이론가이다. 그 사람만은 그라운드에서 ‘게임처럼’ 축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사람의 말대로 선수들이 움직여준다면 말이다. 언론은 그렇다 쳐도 소위 축구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관전평을 쓸 수 있는지 모르겠다. 선수들 몸 상태, 분위기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누구를 뽑아야 하느니, 누구를 뽑지 말아야 하느니, 전술은 이랬어야 하느니, 훈련과정이 어땠느니 하면서 글을 쓰더라. 만약 나를 직접 보게 된다면 내 앞에서 직접 물어봐줬으면 좋겠다. 그러면 나도 대답할 것이다. 이론과 현실의 실감나는 차이에 대해서.”

-만약 시한부 감독이 아닌 처음부터 월드컵 본선까지 임기가 정해졌다면 대표팀 운영에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이라고 보나.

“엄청나게 달라졌을 것이다. 선수 선발부터 평가전 모두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갔을 것이다. 그리고 기성용 구자철도 이번 예선전 때 뽑았을 것이다. 설령 부상으로 뛰지 못한다고 해도 안고 갔을 것이다. 왜냐하면 본선에 대비해야 하니까. 난 철저히 시한부 감독이었고 대표팀을 본선에 진출시켜야 하는 숙제가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 그 숙제를 완성해내야 했기에 이런저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였다.”

-마지막에 김남일을 발탁했지만, 부상으로 쓸 수 없는 카드가 돼버렸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우즈벡전이 벼랑 끝 승부였기 때문에 김남일의 노련함이 필요했다. 만약 김남일의 몸상태가 정상이었다면 포항 이명주는 출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월드컵 본선 진출을 가르는 중요한 경기에 이제 막 A매치에 데뷔하는 신인선수를 내보낼 수 있는 감독이 몇 명이나 될까. 그러나 김남일은 부상을 당했고, 고심 끝에 이명주를 베스트11에 뽑았던 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이명주는 파주 트레이닝센터에 있는 목욕탕에서 자주 본 선수이다. 목욕탕에서 만날 때마다 경기에 들어가면 포항에서 하던 것처럼 힘을 빼고 자신있는 플레이를 펼치라고 주문했더니 그걸 우즈벡전에서 보여줬다. 그러나 이란전에서는 자신한테 쏠리는 관심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이전 경기와는 확연히 차이가 난 플레이를 펼쳤다. 이게 어쩔 수 없는 사람의 본성인 것이다. 우즈벡전에서 MVP로 뽑히며 이명주가 급부상하자 언론이 환호성을 보냈고, 이명주는 자신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그 부분이 이란전에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30일 전주성에서 다시 재회한 최강희 감독과 이동국. 대표팀을 벗어난 스승과 제자는 맞춤옷을 입은 것 마냥 편하게 경기에 녹아내렸다.(사진=연합뉴스)

-끊임없이 제기된 ‘이동국 논란’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없나.

“아무래도 이동국이 전생에 내 아들이었나 보다(웃음). 얼마전 목동 집 앞에서 차를 타려고 하는데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 두 명이 나한테 이렇게 소리치더라. ‘감독님, 이동국은 그만 쓰시고, 손흥민 좀 써주세요!’라고. 오죽했으면 감독인 나한테 그렇게 소리를 쳤겠나. 하지만 그것은 경기장 밖에서 보는 사람들의 시각이다. 경기장, 훈련장 안에서 본 두 선수의 장단점은 극명하다. 그리고 그걸 보는 사람은 감독이다. 내가 동국이만 예뻐해서 흥민이를 안 쓰겠나. 최강희가 그 정도의 사람 밖에 안 된다고 보나. 직접 해보지 않고서는 말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마지막 대표팀 소집 때 박주영을 제외했다. 그로 인해 또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지도자 생활하면서 마음 속 신념처럼 갖고 있는 생각이 있다. 선수들에게 상처주지 말자, 싫은 소리하지 말자, 욕하지 말자, 심지어 폭력까지도…. 어느 순간부터 이동국과 박주영은 뽑아도 문제, 안 뽑아도 문제였다. 대표팀 감독의 숙명이었다고 생각했다.”

-매 경기마다 새로운 선수들을 투입시키면서 팀의 변화를 꾀했는지는 몰라도 조직력 면에선 심각한 위기 상황을 초래했다는 지적도 있다.

“내가 K리그 감독일 때 전임 대표팀 감독이 선수를 소개시켜달라면서 ‘뽑을 만한 선수가 없다’고 걱정하는 얘기에 동조하지 못했다. 해외파 선수들도 많고, K리그 16팀 선수들 중에서 왜 뽑을 만한 선수가 없다고 말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내가 대표팀을 맡고 보니 그분이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이해가 되더라. 그분은 ‘박지성’ ‘이영표’만한 선수가 없다는 얘기였다. 스트라이커, 게임메이커, 그리고 양쪽 사이드를 맡는 주전 붙박이가 존재한다면 나머지 자리에는 상대팀 전력을 보며 선수를 선발하면 편하다. 그런데 대표팀에는 주전 붙박이로 뛸 만한 선수가 몇 명 안 됐다. 그래서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이 선수, 저 선수 뽑다보니 수비 조직이 무너졌다.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다 내 탓이다. 누구 탓 하고 싶지 않다.”

-차기 감독에 대해 외국인 감독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유가 무엇인가.

“한국의 축구 환경상 국내 감독은 소신대로 밀고 나가는 데에 한계가 있다. 하지만 외국인 감독은 고집이 있고, 자기가 데려온 코치들 말만 믿고 자기 길을 가는 편이다. 여론과 협회로부터 보호받는 부분도 크다. 그래서 외국인 감독을 거론한 것이다.”



최강희 감독은 홍명보 감독이 소신껏 대표팀을 끌고 나가길 바랐다. 그러려면 협회, 언론, 팬들도 도와줘야 하고, 자신도 도울 일이 있으면 적극 돕겠다고 말한다.(사진=연합뉴스)

-하지만 홍명보 감독이 월드컵 대표팀을 이끌고 브라질로 가게 됐다. 전임 감독으로 홍 감독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1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팀을 재정비하는 게 쉽지 않겠지만 홍 감독이라면 무리 없이 잘 이끌어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난 홍 감독이 누구한테도 휘둘리지 않고, 자기 중심대로 밀고 나가기를 바란다. 그리고 축구협회도, 언론도, 팬들도 홍 감독이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게 월드컵 본선에서 좋은 성적 내기를 바라는 열망에 대한 배려이다. 대표팀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선수들이 올림픽대표팀 세대들이니 홍 감독과 좋은 화합을 이루며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낼 것이라고 믿는다. 나도 도울 일이 있다면 적극 돕겠다.”

지난 19일, 이란전이 끝난 다음날 고양원더스 김성근 감독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김 감독은 이란전을 끝까지 지켜봤고, 다음날 신문을 봤는데, 어떻게 최강희 감독에게 ‘수고했다’는 기사는 하나도 없고 죄다 비난 일색이라며 화를 내셨다. 과정이 어떻든 본선 진출을 이루고 떠나는 감독에게 최소한 ‘수고했다’는 말 한 마디는 해줘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었다. 김 감독은 2년 전 인터뷰를 통해 최 감독을 만나게 되었고, 그 후 최 감독이 고양원더스 훈련장을 방문하면서 종종 인연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에 대해 최 감독은 “그렇지 않아도 김 감독님이 전화를 하셨더라. 정말 고생 많았다면서. 감독 마음은 감독만 아는 것 같다. 설령 종목이 축구와 야구라고 해도 말이다”라며 김성근 감독에게 고마운 마음을 나타냈다.

최강희 감독은 서울을 떠나면서 대표팀과 관련된 희로애락은 축구 인생의 한 페이지로 묻어두겠다고 말한다. 이제는 ‘봉동 이장’으로 다시 시작하는 일만 남은 것이다. 지난 1년 6개월 동안 K리그를, 전북현대를 응원하는 팬들이 정말 그리웠다는 그는 이런 말로 K리그 팬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한국에서는 K리그 팬 하기도 힘들다. A매치와 챔피언스리그를 보며 축구 안목을 키우는 팬들도 중요하지만,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에 어떤 팀이 있고, 그 팀의 선수들은 어떠한지, 그리고 그 팀이 어떤 축구를 하는지 직접 경기장으로 보러 와야 한다. 그래야 축구 경기 결과를 놓고 비난의 댓글을 달 수 있는 자격이 있다. 봉동을 떠나 파주에 있으면서 K리그 팬들의 소중함, 고마움을 알았다. 그래서 더 잘하고 싶다. 이제는 행복하게, 전북의 후반전을 준비할 것이다.”

최강희 감독과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팬을 자처한 남성이 다가와 최 감독에게 인사를 하면서 이런 말을 전한다. “감독님, 그동안 대표팀 이끄시느라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감독님 팬입니다”라고. 그 남성과 악수를 나눈 최 감독이 기자에게 이런 농담을 던진다.

“밖에서는 내 팬이 많아. 여론만 날 죽이려고 들지, 일반 팬들은 날 좋아한다니까(웃음).”



'봉동이장'으로의 복귀전에서 대승을 거둔 최강희 감독. 이제는 그의 말대로 행복하게 전북의 후반전을 즐기길 바란다.(사진=일요신문 임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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