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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16)-사랑은 삶의 원동력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2.01.14일 10:36

평생을 가난과 질병속에서 살아온 부모님들을 모시고.


뒤돌아보면 그때 나는 심신이 너무 고통스러웠지만 그래도 매우 행운스러웠던것 같다. 왜냐 하면 내가 가장 어렵고 힘들 때면 항상 누군가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기때문이다.

어느 한번 기차에 앉아 남편 면회하러 부대로 가다가 차칸에서 갑자기 까무러쳤다. 20여분이 지난후 내가 깨여났을 때 군인차림을 한 사람이 내옆에서 나를 지켜주고있었다. 워낙 이 군인은 내가 까무러친것을 보고 렬차승무원을 불러 나를 구급했고 내가 깨여나자 안도의 숨을 쉬는것이였다. 내 생명을 구해준 은인에 대해 나는 마음속으로부터 감격해마지 않았으며 항상 어떻게 하면 은혜에 보답하겠는가 생각하군 했다.


그 군인이 연길사람이라는것을 알고난후 나는 경상적으로 그의 집에 찾아가서 돈이며 물건들을 내놓군 하였는데 벌써 10여년 세월을 한결같이 견지했다. 후에 그 군인은 당뇨병종합증이 발작하여 뇨독증을 앓게 되자 나는 16만원을 내놓아 그더러 병치료를 받도록 했으며 달마다 정기적으로 그에게 생활비를 보내주군 하였다.


또 어느 한번 나는 북경에 가 병치료를 받게 되였다. 경락독소배출로 병치료를 할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한 안마물리치료점을 찾아갔는데 안마가 끝난후 나는 또 갑자기 까무러쳤다. 이튿날 새벽 2시가 되여서야 다시 깨여나 눈을 뜨고보니 한 녀자애가 내곁에 붙어있었다.

그 녀자애는 《류흔》이라고 부르는데 안마점 대청경리였다. 그는 나의 신상이 걱정되여 줄곧 내곁을 떠나지 않고 지켰으며 내가 일어나 안마점을 나서려고 하자 나를 문밖까지 배웅해주었다.나는 이 선량한 녀자애에게 몹시 감동받았다. 나는 그 녀자애를 도와 그의 친인들에게 알맞는 일자리를 구해주었을뿐만아니라 그 녀자애를 양딸로 삼고 친인처럼 가깝게 보내고있다.


은혜를 입었으면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것이 나의 인생원칙이다. 나는 나와 우리 가족이 힘들고 어려웠을 때 도움을 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격하며 그들의 은혜에 대해 성의를 다해 보답해드리려고 노력하고있다. 특히 우리 가정이 어려웠던 시절 설중송탄처럼 따뜻한 관심과 도움을 보내주었던 순박한 사람들을 잊지 않고 연길에 모셔다 가까이 지냈으며 그들에게 집을 사주고 일자리도 마련해주면서 다년간 극진히 보살펴드렸다. 그들이 사망된후에는 후사까지 정성껏 치러드렸다.

나는 그때 내주위의 친인들이 각별히 그리워졌고 아들에게 온갖 관심을 쏟아붓게 되였다. 하는 일이 아무리 분망할지라도 주말만 되면 시간을 짜내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님 뵈러 찾아가군 하였다. 시어머님이 병으로 입원하게 되자 매일같이 병원으로 가 시중들면서 로인을 위로해드렸고 눈을 감으실 때까지 끝까지 그이의 신변을 지켜드렸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친정아버지마저 또 당뇨병종합증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였다. 아버지생각만 하면 불쌍하기 그지 없었다. 페결핵이라는 그 몹쓸 고질병때문에 반평생을 병마에 시달리는것도 모자라 년세가 들면서 또 그 악착스런 당뇨병에 걸렸으니 나는 마음이 무겁기로 말이 아니였다.

내 머리속은 온통 평생 고생만 한 부모님들 생각으로 착잡했고 마음은 무겁기만 하였다. 아버지를 잘 돌봐드리기 위해 나는 하루에 꼭꼭 한두시간씩 시간을 내여 아버지를 동무해드리고 맛갈스런 음식도 사다드리면서 효성을 다하였다. 한달이 지날무렵 의사선생님은 아버지께서 위험기를 이미 넘기였으니 집에 돌아가 휴양을 해도 괜찮겠다고 미소를 지어보이는것이였다.

그런데 어머니가 반대해나설줄이야. 어머니는 병원에 입원해있으니 딸도 매일 볼수 있어 좋고 매일 좋은 음식까지 챙겨주니 집으로 안 돌아가시겠다는것이였다. 집에 가면 딸의 얼굴을 한번 본다는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에 아예 병원에 눌러있으면서 《복을 누리겠다》는것이였다.

나는 또 북경으로 아들 보러 자주 다녀와야 했다. 아들이야말로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큰 리유이며 또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 나는 내가 살아있는동안 단 몇번만이라도 아들을 더 보아두고싶었다. 그 어느날인가 내가 문뜩 이세상을 훌쩍 떠난다면 아들도 엄마를 멀리 떠나보낸 아픔때문에 가슴 치며 통탄해하고 애통해하지는 말아야 할것이 아닌가.

역시 그때로부터 나는 또 사회의 외로운 로인들을 부양하고 가난한 집 애들의 학업을 도와주고싶었다. 그리하여 가장 많을 때는 100여명도 되는 로인과 학생들을 지원해나섰다. 나는 내가 살아있는동안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보다 도움이 필요한이들에게 사랑을 나눠주고싶어졌던것이다.

이런 내 선행이 하늘을 감동시켰는가. 의사선생님으로부터 6개월밖에 살수 없다는 사형선고를 받은 나는 인생의 험난한 로정을 15년동안이나 휘청거리며 잘도 버텨왔던것이다. 15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 15년 세월동안 나는 건강한 정상인들과 마찬가지로 사업하고 생활해왔다. 아무에게도 내 몸과 마음의 고통을 이야기한적 없다. 나는 친인들이 나의 병때문에 걱정하면서 수심에 빠져 우울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것이 싫었던것이다.

/ 연변국제무역그룹 회장 최정금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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