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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 저쪽으로부터 비껴오는 희광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15.01.22일 10:40
작성자: 홍천룡

  -흑룡강성 조선족농촌 순회탐방 소감

  (흑룡강신문=하얼빈) 흑룡강성에 들어서면서부터 눈앞이 탁 트이여 온다. 차창밖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대지, 정말 광활한 천지구나 하는 감탄이 저절로 나간다. 시꺼먼 땅과 시퍼런 하늘이 맞붙은 저 끝머리는 어디일고?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려도 렬차는 그 물음에 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땅이 나날이 귀해지는 이 세월에 누군들 이 넓은 땅을 보고 욕망이 부풀지 않으랴! 그래서 제국의 정상들도 군침을 삼키며 합작의 의향을 내비치기도 했단다. 그런데 그런 땅이 그제날 많은 사람들의 가난의 때조차 시원히 벗겨주질 못했었다. 땅은 일체 재부의 원천이라고 2백여년전에 벌써 자본리론가들이 명언을 내던졌었다. 그런데 왜 이 살찌고 넓은 땅이 오랜 세월 사람들의 욕구를 만족시켜줄수가 없었을가? 신비스럽게만 느껴지는 땅이다.

  그런 땅을 차지하고 다루는 임자들, 지금 나는 그 임자들을 찾아간다. 돈이 돈을 낳고 자본이 자본을 쌓는 오늘날 땅이 점차 소외되고 고향이 점차 소외되고 농업이 점차 소외되여가는 현실앞에서 끈질게도 그 땅을 끌어안고 고향을 지켜내며 농업을 고집하고있는 조선족농부들이 있다고 해서 찾아간다. 목단강지구에서, 밀산에서, 오상에서, 아성에서, 상지에서, 가목사에서 조선족이 모여서 살고있는 여러 마을들을 돌아보았다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들이 존재했고 마음에 걸리는 정경들도 눈에 찔리게 안겨들기도 했다. 그래서 어느 한 조선족시인이 이렇게 개탄한 바가 있다.

  “왜서 지금도 우리가 농촌에 미련을 두어야 한단 말이오? 선진국가와 개방도시들이 우리의 활무대가 되여주고있는 오늘날 우리의 희망이 구경 어디에 있겠소?”

  진작 현실에 립각해보니 그 시인의 말이 독선적인 개탄이 아님을 실감하게 되였다. 고작 20여년이란 짧은 세월의 변천사가 그래 우리의 땅을 희망없는 땅으로 만들었고 우리의 마을을 희망없는 마을로 만들었고 우리의 농업을 희망없는 산업으로 만들었단 말인가? 그 땅을 걸구고 그 마을들을 꾸리고 그 벼재배업을 산업화시키는데는 백여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우리의 선조들이 이 시커먼 대지에 첫 발자국을 찍을 때 그들의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땅도 없었고 마을도 없었고 원시적인 농기구도 없었고 잠잘 초막도 제대로 지을수 없는 처지였다. 그들이 지니고 온건 딱 한가지— 마음속에 간직해온 래일에 대한 희망뿐이였다. 이 살찐 땅에서 하얀 입쌀을 지어내자는 그 희망, 그 희망이 그들의 땀을 머금고 점점 꽃피워왔던것이다. 오상의 습지에다 첫 벼씨를 뿌렸다는 그 농부의 뒤를 따라 수많은 농부들의 걸싼 솜씨가 검은 대지에 푸른 주단을 깔아놓았었다. 벼농사가 유망한 산업으로 부상되면서 많은 조선족들이 벼재배기술자로 발탁되여 수전농사가 불가능하다는 삼강평원까지 벼파도가 넘실거리는 만경창파를 펼쳐놓았었다. 욕망의 힘은 크고 희망의 에너지는 무진장한것이다.

  빈손으로 쌀, 입쌀이란 희망 하나만 안고 처녀지를 개간해서 세세대대 먹을 걱정없이 농사를 지을수 있는 땅으로 걸구어 놓았는데 오늘날 왜서 그 땅에서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할가? 의문스럽게만 느껴지는 땅이다.

  그런 땅을 차지하고 다루는 임자들을 찾아가서 그들의 말을 들어보았다. 강남의 명성촌에서, 련주산의 해방촌에서, 아성의 홍신촌에서, 영성자의 신광촌에서, 가목사의 성화에서, 탕원의 탕왕벌에서 많은 향진 간부들과 촌서기, 촌장, 그리고 몇십년 벼농사에 종사해오신 로농 여러분을 만나뵙고 현지조사도 해보았다. 북방하늘가에서 반짝이고 있는 별들을 찾아보는 기분이였다. 하얗게 반짝이는 그 별들속에는 우리의 하얀 얼이 반짝이고 있었다. 구름속으로 내비치는 희광이 밝아오는 전야였다. 무릇 촌급 2가지 실권(당지부와 촌민위원회)이 조선족지도일군들 손에 쥐여진 고장에서는 토지집중, 통일관리, 통일경영, 통일배분의 모식으로 땅을 굳건히 지켜내고 있었다. 그것이 우리의 기본이고 우리의 중점과제이다. 지금은 돈이 땅을 찾아다니지만 토지의 자본화가 도래되면 땅이 돈을 빨아들이는 금융저수지가 될것이다. 땅만 지켜내면 거기에다 벼꽃뿐만아니라 자본의 꽃도 활짝 피여나게 할수 있다. 그래서 희망이 보이는것이다.

  밀산 비덕의 덕흥촌에는 김장호라는 사나이가 있고 상지 하동의 남흥촌에는 김장도라는 사나이가 있다. 우리는 그들이 꾸리는 “록영고려미전업합작사”와 “장도농업전업합작사”를 돌아보고 들먹이는 흥분을 금할수가 없었다. 마력이 높은 대형뜨락또르, 공능이 다양한 종합콤바인, 최신고속이양기들과 그에 따르는 부속기구들이 세트별로 정검되여 쫙 늘어선 그 기세… 그 옛날 구쏘련 “콜호스”농장에서 뜨락또르로 밭갈이를 하고 콤바인으로 가을하는 영상장면을 보며 “우리도 언제면 저렇게…”하고 환상의 꿈으로 동경해왔던 농업의 기계화, 집약화, 과학화, 현대화가 지금 이 두 사나이에 의해 현실로 된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나니 감개가 무량하기 그지없다. 우리의 선조들이 빈손으로 이 땅을 개척할 때 신선같은 기계농업을 상상이나 해보았을가! 상상도 해보지 못한 그들이였지만 빈손으로 오늘날의 황금벌을 다져냈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정말 천국에서 신선농사를 짓고있는것이 아니겠는가! 모든것이 디지털화로 지능화로 매진하고있는 시대에 벼농사의 기계화수준도 더욱 높은 차원으로 정밀화될것이다. 그때에 가면 우리가 살고있는 고장뿐만아니라 전반 중국의 북방대지, 나아가서는 광활한 동북아지역의 드넓은 미개척지를 우리가 벼농사로 개척해서 곡창으로 개변시킬 의무가 생기게 되는것이다. 그때 가면 우리의 벼농사가 얼마나 전도가 양양하고 희망이 큰 산업으로 될가! 김장호와 김장도의 기계화농업에서 우리는 그 희망의 싹을 보아낼수가 있었다.

  행복이란 소박할수록 편안하게 누릴수 있다. 선배들이 그리워한건 그 옛날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가 활짝 피여나던 시골의 아담한 마을이였다. 오늘날 우리가 편안한 행복을 누릴수 있는 마을은 어떤 고장이여야 할가? 서울의 빌딩숲에서 우리의 보금자리를 찾을수 있을가? 상해의 인파속에서 우리의 쉼터를 찾을수 있을가? 거칠고 험난한 인생살이에는 꼭 보금자리가 있어야 한다. 보금자리는 또한 풍수가 좋고 정기가 도는 곳에다 꾸며야 한다. 부모의 혼이 배기고 자신의 태줄이 묻힌 곳이 정기가 가장 잘 돌아가는 고장이다.

  강남향 명성촌에 들어서면 우선 시원한 감이 든다. 가로세로 뻗은 포장도로도 시원하고 드넓은 마을광장도 시원하고 널찍널찍 들어앉은 농가와 아파트도 시원하게 안겨든다. 그다음 깨끗함이 인상적이다. 마을의 골목골목마다 집집의 뜨락마다 정갈하기 그지없다. 지어 마을경로원의 실내 칸칸마다 잡내라곤 없었다. 몇몇 촌민들의 집을 방문해보았는데 실내장식과 가정기물은 물론 다 현대화적인 인테리어로 디자인되여있었고 전기화, 가스화, 상하수도화가 실현되여 도시아파트와 못지 않았다. 도시사람들의 부러움을 자아낼만한 뜨락에다는 화초화단가꾸기가 가능했고 유기농남새야채재배가 가능했다. 한국이 1인당 GNP가 5천딸라로부터 2만딸라로 급부상한 기한은 십여년밖에 안된다. 중국이 지금 6천딸라에 이르렀는데 아마 십년후이면 역시 2만딸라시대에 들어설것이다. 헌데 한국시장과 중국시장은 그 규모나 속도가 엄청 차이가 크다. 자본화시대에 시장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그 속도가 엄청 빠르게 나간다. 향후 십년동안에 중국에 억대부자가 얼마나 용솟음칠지 모른다. 벌써1인당국민소득이 만딸라를 넘게 되면 전반 국민의 가치관이 달라진다. 리상적인 거주지를 선택할 때 자원배치공유에서 금융, 권력, 교육, 보험을 따지던데로부터 공기, 물, 생태환경을 따지게 되고 귀농귀향바람이 불게 된다. 그때에 가서 명성촌같이 우월한 환경을 가진 마을은 그 가치를 따지기 힘들게 될것이다. 이런 마을이 명성촌뿐만아니라 련주산의 해방촌, 아성의 홍신촌 등 여러 마을들이 있다. 그래 이런 마을에서 우리가 희망을 보아낼수 없단 말인가!

  “싸리나무 한가지는 꺾을수 있어도 아름드리 나무는 꺾지 못하네.” 이는 어느 조선민요의 한 구절이다. 뭉쳐야 큰힘이 된다는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 농민은 전반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이다. 개개의 농민이나 농호는 “싸리나무”와 같은것이다. 쉽게 꺾이우고 쉽게 무너진다. 뭉쳐야만 “아름드리 나무”로 되고 조직되여아만 자기의 권익을 수호할수 있다. 우리의 선조들은 남부녀대하여 이 땅에 와서 자리를 잡았을 때부터 개개의 가족의 힘이란 너무나도 미약함을 절감하게 되여 서로서로 모여 동네를 이루고 품앗이나 두레를 무었던것이다. 원래 벼농사자체가 협업영농을 수요하는 농사였다. 걸어온 력사의 발자취를 돌이켜 보면 우리가 조직력이 가장 강했고 규모가 제일 크게 집체화로 나갔을 때 그 어느 타민족보다 제일 잘살았고 공헌도 제일 컸고 교육문화도 제일 높았고 실력도 제일 컸었다. 타민족농민들이 국가로부터 “반소량(返销粮)”을 타먹었을 때 우리 농민들은 그런걸 타먹는걸 수치로 여겨왔고 오히려 국가에 많은 공구량을 바쳐왔던것이다. 그건 뭉친 힘이였고 조직의 실력이였다. 오늘날 우리는 다시 제각기 흩어져서 로무송출로 외국으로 나아가고 연해지구의 대도시로 진출했다. 10년, 20년동안 열심히 일해서 가난의 때를 시원하게 벗겼다. 허지만 자본축적이 되지 못하고 실력을 다지지 못했다. 왜서? 뭉치지 못했고 강유력한 조직체가 없었기 때문이였다. 매 개개인의 모은 자금이 몇십만원 내지 몇백만원이 된다고 해도 그걸 가지고 지금 무슨 일을 할수 있겠는가? 왜서 이 근년에 연해지구에다 힘겨웁게 일궈세운 개인기업들이 위험의 변두리로 밀려나고 있을가? 시장화경제사회에서 자본운영은 소통과 화합의 도경을 찾아야 하고 합작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만 점점 높아가고있는 시장문턱을 넘을수가 있다. 개인끼리도 그렇고 기업끼리도 그렇고 나라끼리도 그렇다. 우리의 농업, 우리의 벼농사는 두말 할것없이 더욱 그러하다. 우리는 련주산의 해방촌에서, 강남향의 명성촌에서 바야흐로 뭉쳐지고 조직되여가는 힘을 보아낼수가 있었다. 우선 촌급 두개 지도부의 간부들이 잘 뭉쳐졌고 촌민들과의 단결도 잘 도모되고 있었다. 비록 촌에 남아있는 촌민 대부분이 로약자였지만 호상관심과 호상방조가 더욱 돈독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촌간부들이 한국이나 연해지구에 나가 자기네 마을에서 나간 로무송출일군들을 불러 “사원대회”도 열고 “동향회”모임도 가지면서 고향의 정을 베풀었고 고향에 대한 그들의 그리움을 풀어주기도 했다. 정말 민심적이면서도 원견성있는 처사였다. 앞으로 땅을 지켜내고 아름다운 고향마을을 건설하자면 그들의 지지가 큰힘으로 될것이다. 마을지도부 간부들지간에 서로 의기투합되고 간부와 촌민들이 똘똘 뭉치고 마을안에 남은 사람들과 마을밖으로 나간 사람들지간에 소통이 잘되면 앞으로 사업, 자금, 항목, 인력 등 방면에서 큰 합작과 성공이 이룩될것이니 그래 이것 역시 반짝이는 희망이 아니겠는가!

  이밖에도 여러 향진과 마을들을 돌아보면서 우리는 희망의 불꽃을 튕기고 있는 많은 현상들을 보아낼수가 있었다. 해남향의 중흥촌과 해림진의 신합촌에서는 지정학적특점을 리용하여 관광체험농업, 조선족전통음식업, 문체오락서비업 등 특색산업을 발전시킬 계획을 짜고 있었고 가목사의 성화향에서는 개인의 토지주식, 농기계의 할당리윤, 농사수입의 재배분제도를 원칙으로 하여 농민들에게 더많은 수익이 돌아갈수 있는 농업주식제합작경영방식을 시점적으로 탐색하고 있고 탕원의 탕왕향에서는 북경의 대투자그룹의 거대자본을 인입하여 전국일류의 생태환경유기벼산업원구건설전망계획을 짜놓고 이미 초기실시계단에 들어서고 있었다. 정말 사람들의 인심을 격동시키는 기상들이였다.

  예로부터 흑룡강은 나라의 곡창이였고 앞으로는 동북아경제시장의 량식허브로 부상될 고장이다. 이런 고장에서 지금 우리의 조선족이 땅을 잃지 않고 마을을 버리지 않고 벼농사를 고집하고 있다. 지정학적으로 흑룡강이란 이 광활한 대지가 희망이 있는 고장이고 민족학적으로 조선족이란 이 민족이 희망을 잃어버린 적이 없었던 민족이고 산업적으로는 벼재배업이 유망한 농업인것이다. 우리 민족이 이 땅에 건너와서 피땀도 많이 흘렸고 생명도 많이 바치면서 이 나라의 혁명과 건설에 마멸할수 없는 공헌을 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큰 공헌이 이 광활하고 드넓은 대지에다 수전을 개척하고 벼농사를 보급시킨것이다. 앞으로 더 크게 공헌해야 할 일도 바로 벼농사이다. 중국의 이 크나큰 북방대지에 아직도 수전으로 개답해야 할 경작지가 많고도 많고 전반 동북아지역에는 미개척지가 많고도 많은 것이다. 전반 북방인들의 주식결구를 개선시키고 동북아지역의 량식안보를 수호하는데 공헌하자면 우리 민족이 해야 할 일도 많고 갈길도 먼것이다.

  떠나는 날 이른 아침, 가목사역전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12월 초순이라 금방 눈까지 푸짐하게 와서 날씨는 추웠다. 그야말로 뼈를 콕콕 찌르듯한 추위였다. 삐주룩이 솟은 터미널꼭대기너머로 새날을 밝히려는 희광이 강추위를 무릅쓰고 희붐히 비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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