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중국조선족기업가 박동일씨를 만나
일본에는 현재 6~7만명의 중국조선족이 살고있다. 2000년전후에 일본정부의 류학생 10만명 도입정책과 함께 연변에서도 일본류학붐이 일어났다.
몇년사이에 수만명의 조선족젊은이들이 일본류학을 선택하였다. 일본사회의 빠른 절주를 따라가지 못해 도중에 포기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지만 많은 중국조선족들이 어려운 난관을 돌파하고 대학진학, 회사취직에 성공하였다. 맨 주먹만 들고 낯선 일본땅을 밟았던 그들은 십몇년의 간고한 분투를 걸쳐 일본사회에 깊숙히 뿌리를 박고 현재는 자신의 회사를 차리고 창업에 성공한 이들도 적지 않다.
필자는 얼마전 동경 아라카와구에 큰 사무빌딩을 두고 전자제품 관련 수출입 회사를 경영하고있는 주식회사P&G 사장 박동일씨를 찾았다.
크지 않은 키에 작지만 부리부리한 눈매를 가진 전형적인 조선족 남자라는 인상을 주었다. 한창 수출준비에 처리할 일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상품체크를 직접 하는 박동일사장의 모습에서 세심함을 엿볼수 있었다
박동일씨는 중국 연변에서 태어나 1999년에 일본어학교에 어학연수로 왔다가 졸업후 일본 군마현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여 학업생활을 마쳤다. 33살에 일본에서 첫 직장인 면세점에 취직을 하여 4년 가까이 영업일을 했다.
회사에서 성적을 내기 위해 하루에 13시간 넘게 영업을 할때도 있었고 심지어 자신의 돈을 쓰면서 영업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번은 비디오테프 영업을 하는데 고객사를 5번 찾아갔지만 갈때마다 거절을 당했다. 그래도 락심하지 않고 6번째 찾아갔더니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끈질김에 담당자가 감동을 받아 한번에 5만개의 주문을 받았다고 한다. 그후부터 장기적인 거래처로 지정되여 회사의 매상액에 큰 공헌을 하였으며 그후 박동일씨도 면세점 책임자로 승급되였다. “정성이 지극하면 돌우에도 꽃이 핀다”는 말은 이것을 두고 한 말인것 같다
“인생은 항상 도전이다”고 말하는 박동일사장은 열심히 한 만큼 성과도 많았지만 또 다른 새로운 도전을 위해 창업을 결심하였다고 말했다. 창업초기부터 일본과 중국, 한국의 정치적관계로 국가관계가 팽팽한 시절이였지만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아무것도 없이 시작해 갖은 실패를 겪으면서 회사설립 단 5년만에 매년2배 이상의 성장을 이루어 작년에는 년간 매출액이 30억엔에 달했으며 일중한을 련결하는 종합무역회사로 성장하였다.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박동일사장은 미소를 지으면서 “시행착오로 실패를 할때도 가끔 있지만 그 실패속에서 배우는게 더 많았다”며 “앞으로 5년내에 수출입을 위주로 하면서 자사브랜드상품을 만들고 장기적으로 2배이상의 성장률을 유지하면서 회사를 성장시키는게 목표”라고 하였다.
박동일사장처럼 일본에 와서 어학공부를 하고 창업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구하자 “일본에서 꼭 직장생활을 먼저 해보고 조직생활을 하면서 성적을 내보는게 아주 큰 경험이 된다”고 권장했다. 박동일사장 역시 직장생활을 하면서 익힌 기본지식들이 나중에 창업을 하면서 크나큰 자산이 되였다는 경험담이였다.
무엇보다 중요한건 무슨 일이든 안된다고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남들이 할 수 있는건 나도 얼마든지 할수 있다는 신심을 가지고 두배이상의 노력을 해야된다고 제언했다.
“아무것도 안하고 불만을 가지는건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다. 도전을 하고 열심히 노력을 하면 성과가 따라온다.그리고 일본사회에서 장기적으로 살아가려면 무엇보다 사회적 신용이 정말 중요하다”박동일사장이 거듭 강조하는 진솔한 일본생활의 충고였다.
/최매화 김정남
편집/기자: [ 안상근 ] 원고래원: [ 길림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