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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웃으며 살 때가 됐습니다"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12.05.18일 10:55
정씨 일가를 통해 보는 조선족의 칭다오 이주 20년

정광모 사장이 장식체인 품질을 검사하고 있다.

(흑룡강신문=칭다오) 이수봉, 박영만, 김명숙 기자 = 90년대 초부터 한국기업의 칭다오 진출과 더불어 동북지역의 조선족들이 칭다오로 대거 이주했다. 처음에는 가족 중 한 사람이 칭다오로 진출하고, 어느정도 자리가 잡히면 가족이 따라 가고 또 친척이나 주변의 친구들이 따라나서는 '코스'를 밟았다.

  조선족들이 고국을 떠나 중국 동북지역으로 월경한 것이 제1차 대이동이라면 20만명 조선족의 칭다오 이주는 제2차 대이동이다.

  칭다오 이주 20만명 조선족은 처음 한국기업에 취직하고, 봉급생활자로 셋방살이를 살다가 창업의 길에 들어서고, 나중에 사장이 되고 아파트도 장만하여 안정된 생활을 해나가고 있다. 오늘날 80% 조선족이 칭다오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것으로 추산된다.

  한 가정의 칭다오 이주 역사는 결국 전반 칭다오 조선족의 이주 역사의 축소판이나 다름없다. 흑룡강성 밀산시 출신인 정광모(48세, 부인 박미라 43세) 씨 가정을 중심으로 정 씨 일가의 칭다오 이주를 통해 조선족의 이주 역사를 살펴보았다.

  정광모 사장은 현재 칭다오찌머시에서 액세서리 회사를 경영, 50명 직원에 연간 1천만위안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목걸이, 팔찌 등 장신구체인을 생산하는데 60%는 내수하고, 40%는 일본, 한국, 인도, 동남아로 수출하고 있다.

  또한 칭다오조선족기업협회 청양지회 4대 지회장(회원사 87개) 으로 활약하며, 2011년 5월 설립된 칭다오밀산협회 초대회장을 맡아 200여명 고향 사람들을 위해 봉사를 하고 있다. 아울러 밀산시정부와도 긴밀히 연계하며 고향건설에 힘을 보태려는 자세를 보여 고향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정 씨는 1989년 목단강대학을 졸업(중문 전공)하고 밀산시 흑태조선족중학교에서 4년간 교편을 잡았다. 1994년 당시 생활의 어려움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고 보따리 하나를 들고 무작정 칭다오로 떠났다. 칭다오 땅에 들어서니 모든 것이 낯설었고 , 반기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는 직업소개소를 통해 월 500-600위안씩 받기로 하고 한국가구공장에 취직했다. 숙식은 공장숙소에 잡았다. 한달후 아내도 칭다오로 왔다. 두 사람은 여인숙에 2-3달 묶었다. 몇달후 이들 부부는 여인숙에서 나와 칭다오청양구에서 20분 떨어진 지홍탄진에 월세 60위안씩 내고 셋집을 얻었다. 이것이 그들 부부의 첫 '보금자리'가 됐다. 정 씨 부부는 그 셋집에 4년간 거주했다.

  처음에는 현지인들이 광주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오해했는데 점차 이웃들과 친근해졌다고 한다. 당시 이웃들과 음식도 나누어 먹었다고 정씨는 회고했다. 이젠 지홍탄에 가면 모두가 반길 정도로 친숙해졌다고 한다. 칭다오 진출 1년후에 어린딸(92년 생)도 데려왔다. 그 딸이 커서 이젠 사대 1학년생이 됐다.

  당시 정 씨는 처음 가구공장에 2달 근무했는데 봉급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당시 그 가구공장의 한국인 공장장과 함께 나와 새로운 가구공장을 설립했다. 현지 중국인과 합작했는데 경기가 좋지 않았다. 두 번째 가구공장에서 1년 근무했는데 역시 봉급을 받지 못했다. 정씨는 사표를 내고 한국인 방직공장으로 일자리를 옮겼다. 사무실 직원으로 한달에 800위안씩 봉급을 받았다. 그러다가 1996년 한국인이 경영하는 액세서리 회사로 옮겨서 3년간 근무했다.거기서 경험을 쌓았는데 훗날 창업의 밑거름이 됐다.

  1999년 정 씨는 회사 출근시 모은 돈과 친구, 친척들한테서 빌린 돈 20만위안으로 류팅진에서 7명의 직원을 데리고 창업을 시작했다. 규모가 점차 커지면서 2009년 5월 3천 제곱미터 되는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3년후 임대 계약이 만료되면 자신의 소유로 된 4800 제곱미터 되는 곳으로 이주하게 된다.

  아내 박미라 씨는 1994년부터 2001년까지 한국어망회사에서 회계로 근무하다 그만두고 2002년부터는 남편과 함께 액세서리 일을 하고 있다.

  정광모 사장이 칭다오에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가족 외에 형제들도 하나둘씩 칭다오로 이주해왔다. 가족행사로 모두 모이면 50명이나 된다고 한다.

  정 사장은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들 4명, 딸 3명이다. 현재 90세 노모는 정광모 씨와 함께 지내고 있다.

  정 사장의 도움으로 두 동서도 칭다오에 진출하여 창업에 성공했다. 큰동서 이봉철(38세, 목릉 출신)씨는 초창기에 정사장의 한쪽 건물을 빌려 액세서리 고리장식품을 생산했는데 현재는 연간 6천만위안의 매출을 올려 고리장식품업체 가운데서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둘째 동서 류호산(38세, 오상 출신)씨는 폴리백(塑料袋)을 생산하고 있다.

  정 사장의 액세서리 사업은 4명의 조카들한테도 영향을 주었다. 당시 조카들이 찾아와서 뭘 하면 좋으냐고 묻자 정 사장은 "내가 아는 것은 액세서리밖에 없다"고 말했는데 그 '인연'으로 조카들도 액세서리 사업에 뛰어들었다. 30대의 조카 2명은 정사장 공장에서 3-4년씩 근무했고 후에 자립하여 액세서리 공장을 경영하고 있다. 조카딸 2명도 시집을 가서 남편과 함께 액세서리 공장을 경영하고 있다.

  정 씨 일가를 통해 칭다오에 진출한 20만 조선족들이 피와 땀을 흘리며 열심히, 그리고 이를 악물고 악착스레 어려움을 이겨내 낯선 땅에 보금자리를 마련하여 떳떳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 모습이 정말로 아름답다.

  /특별취재팀 이수봉, 박영만, 김명숙기자lixiufeng@hljxinwen.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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