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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의 어원 알고 충격 받더니

[기타] | 발행시간: 2012.05.19일 02:36

서울 경희여중 학생들이 16일 학급 칠판에 또래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욕설을 적어 보았다. 말하는 이는 무의식적으로 욕을 쓰지만, 듣는 사람은 상처를 받는다. 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Cover Story] "○발·존○ 어원을 알면 못쓰죠"

욕설문화 고치는 경희여중 '너나들이' 동아리

"바른말 지킴이 되자" 욕 대신 사용할 수 있는 순 우리말 정리 등 활동

"감탄사처럼 입에 붙은 욕 서서히 바꿔 나갈 거예요"

'ㅂㅅ'은 어떤 단어의 초성일까.

고요하던 중학교 운동장에 선명하게 'ㅂㅅ'이라고 적은 스케치북 한 권이 등장했다. 받침대 위에 보기 좋게 올려둔 글자에 귀가하려던 학생들이 휘둥그런 눈으로 하나 둘씩 모여든다. 갸우뚱하고 깔깔대면서 저마다 연상하는 말은 하나다.

"와하하! 병○이래.""야, 누가 운동장에 ○신이라고 써놨어."

아이들이 몰리자 교사들도 나와본다.

"선생님! 이거 뭐 같아요?"

"어…? 저기… 비, 비산."

학생 언어문화개선 선도학교인 충북 청운중학교 문수미 교사가 한 학생이 작성한 욕 근절 표어를 들고 있다. 청운중 3층 복도 국어올레길에는 학생들이 스스로 만든 우주 표어가 걸려있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어휴, 억지 쓰지 마세요. 누가 봐도 병○이잖아요." 열 다섯 살들의 항변이 당당하다.

지난 가을 서울 경희여자중학교 운동장에서 벌어진 이 사건의 주동자들은 이 학교 언어문화개선 동아리 '너나들이'다. '바른말 고운말 지킴이가 되자'는 뜻으로 작년 봄 처음 뭉친 2, 3학년 23명이 의도된 파문을 일으켰다. 이들은 운동장에서 보인 학생들의 반응을 고스란히 담은 영상을 UCC로 제작해 경종을 울렸다. 학생들의 가슴 속에는 "왜 우리는 병○을 제일 먼저 떠올렸을까"하는 반성이 남았다.

너나들이는 서로 너니 나니 하고 부르며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를 뜻하는 순 우리말이다. "참된 변화는 무엇보다 학생들 자신에게서부터 시작돼야 한다"는 강용철 경희여중 교사(이화여대 겸임교수)의 제안이 모임의 단초가 됐지만 전원이 자원자로 아이디어 회의, 프로젝트 수행 등은 오로지 학생들의 몫이다.

이들은 지난해 내내 이어진 치열한 아이디어 회의를 통해 ▦욕설 뜻 풀이 사전 발간 ▦바른말 고운말 강령 제작 ▦순 우리말 사전 제작 등 다양한 교내 캠페인 활동을 했다. '아, ○됐어'같은 표현이 입에서 맴돌 때는 '망했다'는 말을 떠올리자고 유도하는 운동이다. 욕의 어원을 담은 포스터도 각 반 교실에 붙였다. '존○'의 어원을 알고 충격 받은 학생이 적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지금은 고1이 된 지난해 동아리 회장 이예림(16ㆍ당시 중3)양은 "같은 또래가 말하니 무엇보다 시큰둥하던 친구들의 관심을 끌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강 교사는 "자치활동의 힘"이라고 뿌듯해했다. 학생언어 문화 개선사업을 진행중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이 학교를 모델로 올해 전국 100군데 학교 동아리를 지원한다.

학기가 바뀌어 새 진용을 갖춘 너나들이는 16일 아이디어 회의를 열었다. 6교시 수업을 마치고 잔뜩 지친 채 모였지만, 새 욕 뜻풀이 사전을 만들기 위해 아는 욕을 모두 칠판에 적어보면서 교실이 왁자지껄해졌다. ○발, 미○놈, 존○… 20개쯤 쓰다 막히자, 동아리 내 소위 욕 종결자 3학년 김모(15)양이 나선다. 씹○레 등 몇 개를 더 써 내려가다 돌아서서 질문한다. "선생님 야부리(깨다, 찢다는 뜻의 일본어)는 욕 아니죠?"

우리말 지킴이라는 동아리 성격상 욕과는 거리가 먼 모범생 위주라고 생각하겠지만 지난해 홍보활동의 흥행으로 올해는 '욕쟁이'들도 적잖이 합류했다고 강 교사는 설명했다. 서모(15)양은 "버스에서 교복 입고 화떡(화장을 덕지덕지 한 모습을 이르는 은어)한 애가 욕하는 걸 보는데 나도 저렇게 보이면 안되겠다 싶어 동아리 활동을 시작했다"고 했다. 김모(15)양도 "초등학교 때부터 씨○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단짝이 '너 입에 걸레 문 것 같아'라고 말해 충격 받고 고쳐보려고 왔다"고 말했다.

동아리 회장 3학년 박민재(15)양은 "욕을 안 쓰면 뭔가 짜증나는 느낌이 표현이 안 된다는 학생들이 많은데, 욕의 본뜻을 알려주고 대신 쓸 수 있는 우리말 용례를 정리해 후배들에게 좋은 정신적 유산을 물려주고 싶다"는 사명감을 드러냈다.

이날 회의에서 ▦욕쟁이에게 역지사지를 느끼게 할 역할극 대본 쓰기 ▦대중가요를 순 우리말로 개사해 관심 끌기 ▦부모님 경고 카드제 등의 참신한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회장 민재양이 '욕을 쓰는 부모님에게 드리는 경고 카드제'를 제안하자 앉은 자리에서 어른을 향한 성토가 이어졌다. "솔직히 애들이 태어나자 마자 욕을 했겠냐, 다 어른들한테 배운 거지." "맞아, 어제 아빠 친구들이 왔는데 입만 열면 무조건 '야, 이○끼야'더라니까."

이들의 최종 목표는 여우비에 옷 젖듯 친구들과 사회를 변화시켜 나가는 것. "우리가 전부 못~된 무개념 학생이라 욕을 하는 건 아니잖아요. 뜻도 모르고 다들 하니까 감탄사처럼 입에 붙은 건데, 생각을 조금 달리할 계기만 만든다면, 바꾸는 것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학생들의 눈이 반짝 빛났다.

한국일보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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