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자 앱 | | 모바일버전
뉴스 > 경제 > 경제일반
  • 작게
  • 원본
  • 크게

[수요 인터뷰] 법인카드 가위질, 110조 부실 도려낸 뚝심남

[기타] | 발행시간: 2012.06.13일 03:01
지난 7일 경기 성남의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 7층 집무실에서 인터뷰를 위해 만난 이지송 LH 사장은 "어서 오라"며 양손을 덥석 붙잡았다. 주름지고 검버섯이 핀 그의 손에선 일흔둘의 나이와 인생의 경륜이 동시에 묻어났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느냐"고 묻자,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다"는 답이 돌아왔다. 의외였다. 이 사장은 업계에서도 소문난 '강철 체력'의 소유자다. 2009년 10월 LH 사장 취임 이후 매일 7시에 출근하고 설과 추석을 빼면 거의 하루도 쉰 적이 없다.

이유를 물었다. "사실 암 덩어리가 많이 자라서 곧 수술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이 사장은 2009년 11월 폐암 판정을 받았지만 숨겨왔다고 털어놨다. "암 덩어리 크기 10㎜가 수술 기준인데 지난 2월에 쟀더니 9㎜라고 하더군. 이달 말에 최종 검사받을 예정이야." 하지만 이 사장은 2시간 가까운 인터뷰 내내 회사 경영과 미래를 걱정했다.

LH 사장 임기가 약 100일 남은 그는 현재 한국 건설업계 최고경영자(CEO) 중 가장 어른이다. 1962년 건설부(현 국토해양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한 뒤 무려 반세기 동안 건설 외길을 걸었다. 1976년 현대건설로 자리를 옮긴 뒤 2003년부터 3년간 사장으로 일했다. 현대건설 사장 퇴임 후에는 경복대 총장으로 학계에도 몸담았다. 현직 국내 건설업 CEO 중에서 산(産)·학(學)·관(官)을 모두 경험해 본 유일한 인물이다.

화려한 경력과 달리 CEO로서 항상 위기에 처한 기업을 살려내는 게 그의 몫이었다. 이 사장의 이름 앞에 가장 많이 붙는 수식어 중 하나가 '구원투수'다. 현대건설 사장 시절에도 유동성 위기를 겪으며 채권단 관리를 받던 회사를 살리라는 특명을 받았다. LH 사장이 됐을 때도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108조원의 빚과 하루 100억원의 이자였다.

이 사장 취임 이후 현대건설은 경영 정상화를 이뤄냈다. 2006년 3월 이 사장이 퇴임하던 해 현대건설은 사상 최대인 3976억원의 순익을 올렸다. 취임할 때 920원이던 주가도 5만7000원으로 62배가 올랐다.

LH도 이제 경영정상화의 기반을 닦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매출액이 15조3000억원으로 취임 당시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당기순이익도 7905억원으로 같은 기간 1.6배 늘어났다. 지난해 전체 공기업 중 매출액 3위, 순이익은 1위를 기록했다.

◇"사명만 빼고 다 바꾼다"

―LH의 경영정상화는 어느 단계까지 왔나.

"42.195㎞를 달리는 마라톤으로 보면 절반쯤 온 것 같다. 지난해 LH의 토지·주택 판매액이 22조2000억원인데, 사업비로 쓴 돈이 22조원쯤 된다. 벌어들인 만큼 쓰는 선순환구조가 생긴 셈이다. 부채에 대한 이자를 갚고 원금도 갚아나갈 수 있게 됐다. 지난해 원리금만 11조원을 갚았다. 매년 20조원씩 늘어나던 금융부채가 지난해 6조원 늘어나는 데 그쳐 경영상태가 안정세로 돌아섰다."

이 사장이 취임 일성으로 내세운 구호가 '사명(社名)만 빼고 다 바꾸자'였다.지난 2년간 1·2급 직원 75%를 물갈이하고 인력도 800명 가까이 줄였다.

―구조조정하면서 조직 내부에서 반발도 많았을 것 같다.

"LH는 SOC(사회간접자본) 관련 공기업 12개 중에 급여 수준이 꼴찌다. 그런데도 회사 이름만 빼고 다 바꾸자고 한 후 직원들이 LH를 살리기 위해 월급 10%를 반납하면서 일했다. 늘 안타깝게 생각한다. 일도 참 많이 시켰다. 직원들에게 내가 평생 갚아야 할 빚이다."

―LH는 100조원이 넘는 빚을 줄이기 위해서는 420조원이 넘는 사업 규모를 재조정해야 했다. 처음엔 사업재조정이 불가능하다는 얘기가 많았다.

"LH가 출범하기 전인 토지공사·주택공사 시절 계획된 사업을 모두 추진하면 매년 45조~50조원의 사업비가 들어 회사 존립 자체가 위태로웠다. 400개가 넘는 사업장을 모두 찾아다니며 주민들을 설득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지난 2년간 정리한 사업 규모가 110조원에 이른다. 4대강 사업 5번 하고도 남는 금액이다. 사업조정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면 LH 출범도 물거품이 됐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당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뭐였나.

"사업조정 대상이 된 경기 파주 운정3지구 주민들이 2010년 12월 회사 앞에 찾아와 천막 치고 농성할 때다. 자살하겠다며 '사장 나오라'고 하는 사람들이 몰려왔다. 정면돌파하는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들이 친 텐트에 찾아가서 '내가 이지송 사장이오'라고 했더니 믿지를 않더라. 정말 내가 이지송이라고 몇 번이나 이야기한 다음에는 한 명씩 붙들고 왜 이 사업이 어려운지 설명했다.

나중에는 '당신들이 돌아가지 않으면 나도 집에 안 간다'고 하고 옆에 텐트 하나 더 치고 드러누워 설득했다. 하룻밤을 거기서 잤는데 전기장판 때문에 등은 뜨거운데 얼굴은 시려서 입이 돌아갈 뻔했다."

◇"월급·보너스 한 푼도 안 받아"

―임기 후 지난 3년을 돌이켜보면.

"토지공사와 주택공사가 통합한다고 했을 때 잘될 거라고 말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사업 정리 과정 등에서 각종 민원에 시달리면서 전국에서 68번이나 사진 화형식을 당했다. 단순히 임기 3년 채우고 나간다고 생각했으면 이 자리에 오지도 않았을 거다. 내 마지막 소명(召命)이라고 보고 최선을 다했다."

이 사장은 올해 초 현대건설 사장 재임 시절 받은 130억원대 스톡옵션을 포기해 화제가 됐다. 취임 이후 월급과 보너스를 한 푼도 받지 않았고, 법인카드는 아예 가위로 잘라버렸다.

"회사 빚이 그렇게 많은데 사장이라는 사람이 스톡옵션 받는다는 게 말이 되나. 가족들이 먼저 나서서 안 된다며 이해해줬다. 내가 봉급 받을 생각이 있었다면 기업가서 돈 벌고 살지 이 나이에 여기서 왜 이러고 있겠나."

―LH의 남은 과제는.

"임대주택 부채 문제 해결이 가장 큰 숙제다. 현재 임대주택 보유 자산이 36조원인데 집을 팔 수도 없고 운영하면 계속 적자 난다. 임대주택 운영 적자만 매년 5000억원이 넘는다. 정부와 머리를 맞대고 이 문제를 풀어내야 한다."

―현장 경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아버지 다음으로 존경하는 분이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다. 그분은 당장 돈이 안 되더라도 먼 미래를 보고 일하라고 하셨다. 그분이 생전에 경영하시는 모습을 직접 내 눈으로 봤다는 게 영광이었다. 옆에서 오래 봤기 때문에 내 몸에도 그분의 철학이 배었을지 모르겠다."

―지난 50년간의 소회는.

"난 지금까지 복이 많았다. 50년이나 일하지 않았나. 70년대 건설업계에 와서 제일 크다는 대기업 총수도 해봤고, 학교에서 총장도 해봤다. 마지막으로 국내 최대 공기업 수장까지 했으니 보람 있었던 것 아니냐. 퇴임 후에는 업계로 안 가고 연구소나 학교에 가서 조용히 지낼 생각이다. 72살 먹은 노인을 받아줄 데도 없을 테고. 허허."

☞이지송 사장은

▲1940년 7월 충남 보령 生

▲경동고·한양대 토목공학 박사

▲건설부·한국수자원공사 근무

▲현대건설 국내영업본부장

▲경인운하 사장

▲현대건설 사장

▲경복대 총장

▲한국토지주택공사 초대 사장

- chosun biz

뉴스조회 이용자 (연령)비율 표시 값 회원 정보를 정확하게 입력해 주시면 통계에 도움이 됩니다.

남성 0%
10대 0%
20대 0%
30대 0%
40대 0%
50대 0%
60대 0%
70대 0%
여성 0%
10대 0%
20대 0%
30대 0%
40대 0%
50대 0%
60대 0%
70대 0%

네티즌 의견

첫 의견을 남겨주세요. 0 / 300 자

관심 많은 뉴스

관심 필요 뉴스

모이자114

추천 많은 뉴스

댓글 많은 뉴스

1/3
'범죄도시 4' 1천만명 돌파…한국영화 시리즈 첫 '트리플 천만'

'범죄도시 4' 1천만명 돌파…한국영화 시리즈 첫 '트리플 천만'

배우 마동석 주연의 액션 영화 '범죄도시 4'가 15일 천만 영화의 반열에 올랐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4편까지 나온 '범죄도시' 시리즈는 한국 영화 시리즈 최초로 '트리플 천만'을 달성했다. 배급사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범죄도시 4'는 이날 오전 누적

"약물 의존성 인정한다" 유아인, '재발 가능성 있어' 치료 전념 근황 공개

"약물 의존성 인정한다" 유아인, '재발 가능성 있어' 치료 전념 근황 공개

사진=나남뉴스 배우 유아인의 마약 투약 혐의에 관한 5번째 공판에서 근황 및 치료 상황 등이 알려져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난 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에서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향정) 혐의로 배우 유아인에 대한 5번째 공판이 진행됐다. 이날 공판에는

[창업붐4]날로 변모하는 고향서 뭔가 할 수 있는 지금이 행복

[창업붐4]날로 변모하는 고향서 뭔가 할 수 있는 지금이 행복

이국생활 접고 화룡에 정착한 김희붕 사장 ‘숯불닭갈비집’ 김희붕 사장. 얼마전 오랜 이국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와 귀향창업을 결심한 김희붕, 홍지은 부부를 만나 이제 막 창업의 길에 올라 ‘숯불닭갈비집’을 운영하게 된 따끈따끈한 신장 개업 이야기를 들을 수

모이자 소개|모이자 모바일|운영원칙|개인정보 보호정책|모이자 연혁|광고안내|제휴안내|제휴사 소개
기사송고: news@moyiza.kr
Copyright © Moyiza.kr 2000~2024 All Rights Reserved.
모이자 모바일
광고 차단 기능 끄기
광고 차단 기능을 사용하면 모이자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모이자를 정상적으로 이용하려면 광고 차단 기능을 꺼 두세요.
광고 차단 해지방법을 참조하시거나 서비스 센터에 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