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반 친구 협박에 절대복종 맹세한 11세 아이가
엄마 지갑서 훔친 돈, 친구에게 빼앗기는 중입니다
'요요 갖고 놀다 지각' 일렀다며 피해학생에게 죽인다고 협박, 존댓말 쓰게 하고 종처럼 부려
교사 "둘 다 똑같이 잘못… 피해학생 얘기안해 사건 커져"
피해학생 부모 "우리 애도 잘못? 말이 되나"
초등학생이 같은 반 학생에게 노예 계약서를 쓰게 한 뒤 돈을 빼앗고 괴롭히는 학교 폭력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 학생 부모는 "학교 측이 가해자 편을 들며 사건을 축소하려고 했다"며 서울교육청에 민원을 냈고, 이에 교육청은 지난 21일부터 진상조사를 벌였다.
사건은 지난 6월 서울 송파구의 A초등학교 5학년 교실에서 시작됐다. 김모(11)군 등 3명이 장난감 '요요'를 갖고 놀다가 수업 시간에 늦게 들어왔다. 이 중 한 명이 담임교사에게 "휴대폰 게임 하다가 늦었다"고 했고, 이를 지켜본 이모(11)군은 "(쟤들은) 휴대폰이 아니라 요요를 갖고 놀았다"고 교사에게 말했다. '요요'는 학교에 가져오지 못하는 금지 물품이었다. 교사는 김군의 요요를 압수했다. 화가 난 김군은 수업 후 이군에게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다고 피해자 측은 밝혔다.
며칠 후 김군이 이군에게 종이 한 장을 주며 사인하라고 했다. 제목은 '노예증서'. 그 밑엔 '이○○은 김○○의 노예다'라고 쓰여 있었다. 이군은 며칠 전 김군이 요요를 압수당한 것을 미안해하며 그만 사인을 해줬다. 그때부터 이군은 김군의 노예처럼 움직였다. 김군에게 존댓말을 하고 업어줬다. 며칠 후 김군은 '요요값'이라며 이군의 용돈 5000원을 빼앗고 "내일까지 1만5000원 더 갖고 오라"고 했다. 이군은 다음 날 아침 엄마의 지갑에서 1만5000원을 훔쳐 김군에게 가져다줬다. 며칠 후 김군은 자기 요요를 담임교사에게 돌려받았는데도 이군에게 다시 "내일까지 요요값 4만원을 갖고 오라"고 했다. 이군은 다음날 돈을 가져가지 못했고, 김군은 돈을 받기 위해 방과 후 이군의 집까지 따라갔다.
서울 송파구 지역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초등학교 5학년 이모(위쪽)군이 부모의 서랍에서 꺼내온 만원짜리 지폐를 같은 반 김모군에게 주고 있다. 김군은 이군에게 노예계약서를 쓰게 하고 돈을 빼앗는 학교 폭력을 저질렀다. /CCTV 화면 촬영
김군이 이군의 돈을 빼앗는 과정은 집요했다. 김군은 이군을 아파트 12층 집에 들여보내고 자기는 13층에서 기다렸다. 이군은 집에 들어가 안방 서랍에서 4만원을 훔쳐 나가려다 외삼촌에게 들켰다. 밖에서 기다리던 김군은 이군에게 "집에 다시 들어가서 돈을 갖고 오라"고 시켰다. 김군은 이군에게 1만원을 받았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다시 집에 들어가서 돈을 더 갖고 오라"고 했다. 이군은 김군의 강요에 세 차례나 돈을 훔치기 위해 집에 들어간 것이다.
피해자 부모는 사건의 전말을 전해 듣고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담임교사 때문에 더 큰 상처를 받았다. 이군 부모로부터 피해 사실을 전해 들은 교사는 "조사해보겠다. 그런데 돈 문제이니 이군 엄마가 김군 엄마와 만나서 해결할 부분도 있다" "이 사건은 김군(가해자)과 이군(피해자)이 똑같이 잘못한 문제다. 이군이 이런 내용을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아 사건이 커졌다"고 말한 것으로 교육청 조사 결과 밝혀졌다. 피해 학생 아버지는 "담임교사는 이렇게 무시무시한 학교 폭력을 당한 피해자에게 되레 '너도 잘못했다'고 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피해자 이군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고, 스트레스와 심리적인 위축 상태를 보이고 있다.
피해자 측의 요청으로 6월 학교폭력자치위원회가 열렸고 가해자 김군은 등교정지 7일과 상담치료, 공개사과 결정을 받았다. 처벌이 약하다고 생각한 피해자 학부모가 7월 재심(再審)을 청구해 가해 학생은 학급 교체, 피해 학생은 심리 치료를 하라는 추가 결정이 내려졌다. 서울교육청 측은 27일 "조사 결과 담임교사가 피해자 위주로 사건을 처리하지 않는 등 잘못 대응한 부분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