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에 목매는 인터넷언론… “확인없이 베껴쓰고 더 자극적인 제목
‘권지윤 기자 뱃살 굴욕…강풍 앞에 속수무책, 볼라벤 피해자’ (파이낸셜뉴스)
‘권지윤 기자 굴욕, 강풍에 뱃살 노출…박대기 기자의 뒤 잇나’ (TV리포트)
‘권지윤 기자 뱃살 굴욕…볼라벤이 연출한 19금 뉴스’ (아츠뉴스)
지난 29, 30일 포털 사이트에 일제히 올라왔던 연예기사 제목이다. 많은 언론들이 이 같이 비슷한 제목의 기사를 쏟아냈다가 곧 삭제하거나 ‘권지윤’이라는 이름을 뺐다. SBS의 항의와 정정보도 요청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임광기 SBS 뉴미디어부장은 30일 SBS 홈페이지 ‘취재파일’에 이 기사들이 사라진 전말을 밝혔다. 임 부장이 대표적인 사례로 든 것은 지난 29일 스포츠서울닷컴의 ‘태풍에 뱃살이…SBS 권지윤 기자, 노출 굴욕’이라는 제목의 기사.
이 기사에는 태풍 볼라벤이 한국을 강타한 지난 28일 서해대교 현장에서 SBS 기자가 피해자와 인터뷰를 하다가 강풍에 뱃살이 드러난 장면이 담겨있다. 스포츠서울닷컴은 “SBS 권지윤 기자가 뱃살을 노출해 웃음을 선사했다”며 “권 기자의 속살은 안방으로 여과없이 전달됐다”고 전했다.
이 기사를 접한 임 부장은 스포츠서울닷컴에 연락해 정정보도를 요청했다고 전했다. 강풍으로 뱃살이 드러난 기자는 권지윤 기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권 기자는 29일 오전 <SBS 모닝와이드>에서 전날 보도된 리포트를 받아 새롭게 만들어 보도했다가 ‘뱃살 기자’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지난 29일 아침 방송된 SBS <모닝와이드>
임 부장의 요청으로 스포츠서울닷컴은 제목과 기사 내용을 수정했다. 하지만 곧 이어 스포츠조선닷컴, 스포츠동아닷컴 등 수 많은 언론에서 거의 같은 내용의 기사를 베껴 쓰기 시작했다. 임 부장은 “포털에 올라가면서 ‘뱃살, 기자, 노출, 굴욕’이라는 ‘섹시’한 제목 때문에 조회수가 쑥쑥 올라가기 시작했다”며 “마치 이 쪽 불을 끄는 사이에 저 쪽에서 또 다른 불이 난 기분이었다”이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이 기사는 각종 인터넷 카페와 블로그로 퍼져나가면서 더 이상 수정을 요청할 수 없는 상황까지 가버렸다. 임 부장은 “네이버에 ‘권지윤’을 쳐보니 블로그나 카페는 물론, 동영상, 웹문서 검색까지 부지기수로 떠있다”며 “이런 곳들은 연락할 방법도 없다”고 전했다.
임 부장은 “한 곳에서 쓴 기사를 수많은 매체들이 확인 없이 앞다퉈 베껴쓰고, 심지어는 오보마저도 복사, 또는 표절한다”며 “포털에 실려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여기에 일반 네티즌들이 퍼다가 블로그나 카페에 올려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임 부장은 “만약 문제의 기사가 유명인이나 일반인의 명예에 심대한 타격을 주는 내용일 경우, 당사자로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며 “‘조회 수’에 목을 매야 하는 한국 인터넷 언론의 현실의 한 단면을 지켜보면서, 지금 이 시간에도 제2, 제3의 ‘권지윤’이 쏟아져 나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너무 답답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