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장에서] 사상 초유로 해 넘긴 예산안
● 의원 6명에 휘둘린 민주당
● 민주당에 휘둘린 예산 처리
새해 첫날을 기자는 국회 본회의장에서 맞았다. 2013년 예산안이 1월 1일 새벽 6시4분에야 통과됐기 때문이다. 기자는 전날이자 지난해 마지막 날이던 31일 오전 9시부터 국회에서 예산 처리 과정을 취재했다. 꼬박 19시간-. 본회의가 지연되 면서 1박2일을 국회에서 지내게 된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한 새해 예산(342조원)은 모처럼 몸싸움 없이 여야의 합의 표결로 이뤄졌다는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헌정 사상 처음으로 해를 넘겨 처리한 예산이었다는 새로운 기록도 남겼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2012년 12월 31일 09시 국회 본관 638호 예산안(계수)조정소위 회의장. 김학용 새누리당 예결위 간사는 “밤샘협상을 했다. 국채 발행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윤석 예산결산특위위원장, 새누리당 김학용, 민주통합당 최재성 간사와 김동연 기획재정부 2차관, 이석준 예산실장, 이병길 국회 예결특위 수석전문위원 6명이 26일부터 5일간 렉싱턴호텔에서 벌인 협상이 이날 새벽 타결(총 지출 342조원)됐다는 설명이었다. 그런데 오전 10시로 잡혔던 예결위 회의가 오후 1시→6시→9시로 자꾸 연기됐다. 기획재정부의 전산 입력이 완료되지 않았단 이유였다. 빈틈이 생기자 정부부처와 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 등에서 민원예산을 적은 ‘쪽지’가 폭주했다. 이렇게 쪽지민원이 폭주하면서 기획재정부의 작업도 늦어져 수정안이 마련된 게 밤 9시였다.
22시30분 이번엔 민주당의 ‘제주 해군기지 6인방’이 발목을 잡았다. 제주가 지역구인 강창일·김우남·김재윤 의원에다 장하나·김기식 의원이 가세해 “제주 해군기지 공사 중단이 당론”이라며 예산 처리를 반대하고 나섰다. 정청래 의원이 “부대의견을 불이행할 경우 공사를 중단한다”고 못 박는 수정안을 예결특위에 내면서 일은 더 꼬였다. 이처럼 6명의 의원들이 민주당의 발목을 잡았고, 민주당이 다시 국회의 발목을 잡는 일이 벌어지면서 해를 넘기게 됐다.
23시40분 강창희 국회의장은 “여야 합의 없이는 예산안을 처리할 수 없다”며 정회를 선언했다. 자정을 넘기면 본회의가 자동 폐기되므로 1일에 계속해서 회의가 열리도록 차수 변경 선언을 했다. 제주 해군기지 예산을 놓고 실랑이를 벌이던 여야 원내대표가 타결을 본 것은 1일 새벽 3시30분이었다.
2013년 1월 1일 04시20분 본회의가 다시 열렸지만 민주당 의원들이 소득세·법인세 ‘부자증세’ 수정안을 냈고, 김재윤·장하나 의원의 예산안 반대토론으로 또 표결이 지연됐다.
06시04분 예산안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1박2일의 취재기는 여기서 끝났다. 아침 7시, 의사당을 등지고 나서는 기자의 머릿속엔 새 정치의 다짐은 오간 데 없고 밀실협상과 주먹구구식 예산심의의 그림자만 떠올랐다.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