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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수필. 심전도 (외2편)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14.05.16일 17:03
(연길) 신철국

생업에 쫓겨 무리하게 밤샘을 했던 탓이었던가. 어느 날 아침 문득 일어나 보니 가슴이 침침해나며 은은한 통증이 왔다. 어딘가 두려워났다. 아침술을 놓기 바쁘게 부랴부랴 병원으로 향했다. 다급한 마음에 급진을 찾았더니 당직의사가 미간을 찌푸렸다. 심장검진은 정밀진찰이 필요하므로 우선 심전도부터 하라는 것이었다.

‘심전도까지? 간대로사… ’

어디 크게 고장난건 아니겠지? 하고 자위를 하면서도 내 발길은 급급히 심전도실로 향하고 있었다. 의무일군의 분부대로 활짝 웃통을 벗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찌찌… 찌륵, 찌륵”

뒤이어 이질감을 주는 낯선 기계음이 집안 가득 울려 퍼졌고 나는 반사적이라 싶게 그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저만치 심전 곡선을 기록한 종이장이 길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직까지 내 심장이 살아있다는 표시였다. 내 생명의 순간, 순간을 기록하고 있는 저 기계. 만약 박동을 멈춘 심장이라면 저기에 나타나는 표시는 곡선이 아닌 일직선으로 기록될 것이 분명할 터인데…

새삼스레 심전도 검사를 받아보면서 곡선 많은 내 인생에 감사했다. 때로는 오불꼬불 이어지는 곡선이 순풍에 돛 단 배처럼 곱게 그어가는 일직선보다 더더욱 사람을 즐겁게 만든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벌레찌꺼기

다저녁때 심심풀이로 야시장에 갔다가 어느 난전 앞에 사람들이 잔뜩 둘러있는 것을 보았다. 대관절 무엇을 파는 것인지 잔뜩 궁금해났고 댓바람에 진동한동 달려갔다. 겹으로 둘러싸인 사람의 담장을 허겁지겁 뚫고 고개를 디미는 순간 나는 그만 픽 냉소하고 말았다. 요란하게 내 호기심을 자극했던 그 난전의 정체는 다름 아닌 배추난전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숭숭 벌레가 먹은, 김치거리는 고사하고 국거리에 시래기거리도 변변찮을 보잘 것 없는 배추…

분별없이 발동했던 내 호기심을 비웃으며 허우적허우적 인총들 속을 되짚어 나오던 나는 꼬불닦 일어서는 호기심에 떡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저렇게 지천으로 벌레 먹은 배추를, 아니 그냥 공짜로 주어도 시원찮을 배추를 왜서 떼거리로 몰려들어 구입하느냐 말이다.

새로운 호기심에 우두망찰 서있는 내 귀전으로 다투어 배추를 안아가며 인사처럼 주고받는 목소들이 난무했다.

“이런거야 씻지 않고 먹어도 아무 근심 없지유.”

“그럼요. 벌레 먹은거야 시름 놓고 먹을 수가 있으니깐요”

“농약을 쳤다면야 벌레가 낄리 만무하지요.”

록색혁명, 무공해식품… 만판 벌레찌꺼기로 도배될 우리들의 식탁을 그려보며 나는 탄식처럼 허구픈 웃음을 씰룩였다.



세월의 염색

축구구경을 하려고 집을 나섰다. 아직 경기시작과는 한 시간 가량 남아있기에 택시가 아닌 버스를 탔다. 생각밖에도 버스 안은 사람들로 붐볐다. 불편하지만 그런대로 천정에 매달린 손잡이를 틀어잡았다. 그때 누군가 등 뒤에서 내 옷자락을 건드렸다. 등을 돌리고 보니 어떤 중년남자가 자기 자리를 나한테 권하고 있었다. 황급히 손을 저으며 사양을 했으나 그의 태도는 전에 없이 진지했고, 그 진지한 태도에 나는 감동을 먹으며 그 성의를 수락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은 찜찜했다. 인상을 보아서는 나와 비슷한 중년세대인데 왜 여자도 아닌 나한테 자리를 권했냐 말이다. 황차 몸에 장애도 없는 사람을 말이다. 불안하게 차오르는 의심을 이리저리 뒤집으며 차창으로 얼굴을 돌리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창가에 백발이 성성한 사내의 모습이 비껴있었던 것이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다잡으며 찬찬히 훑어보니 그 백발의 사내는 다름 아닌 내가 아닌가! 그동안 밀린 원고 때문에 정신없이 돌아치다 보니 언제부터 허옇게 세어버린 머리를 염색하지 않은 게 탈이었다. 뒤늦게야 그 중년남자가 나한테 자리를 권했던 이유를 깨닫고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저와 나이가 비슷한 나를 파파 늙은이로 빗본 그 중년남자가 공연히 미워졌다. 축구구경이이고 뭐고 당장 때려치우고 우선 머리 염색부터 해야겠다며 버스가 다음 정거장에 도착하자바람 부랴부랴 하차했다. 누구한테 동정을 받을 나이가 아직 아닌데, 그것도 자기와 비슷한 동년배한테 동정을 받는다는 건 내 마음이 허락치 않았던 것이다. 허옇게 세어버린 청춘을 머리염색으로나마 불러올 수 있다면 괜히 나쁘진 않으리라. 허지만 세어버린 마음은 무엇으로 염색을 하지?

머리카락이 아닌 마음으로 우선 먼저 돌아가는 나이테, 아마 진지한 세월만이 염색이 불필요한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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