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빈) 리춘화
여러분은 자신의 인생 시나리오를 어떻게 써나갈가고 고민한적이 있는가?
고정적인 직업이 있는 나에게 고민할것은 삶의 세절이고 그때문에 각본의 세부가 달라지겠지만 총적으로는 일직선의 레루우에 있은 느낌이여서 돌아보니 안일한 삶이였다.
그런데 우리에게 인생도 시나리오처럼 쓸수 있다고 보여주는 분이 인생의 막을 내리면서 많은 영구할 존재로 다가오고있다.
장구한것을 좋아하는 분, 긴 부부정, 긴 인간정을 보여준 분, 전설적인 107세란 장수의 인생을 보여준 분. 사회와 인간에 대한 탐색과 길고 연연한 정을 보여주는 그 분의 이런저런 자선 사업들이 계속 그분의 이름을 길이길이 전해갈것이다.
그 분의 이름은 우리학교의 교사에 새겨져있다.
할빈시 조선족제1중학교에는 형제학교가 부러워하는 실내체육관이 있어 궂은 날씨에도 실내 배구, 롱구, 배드민턴 등을 자유롭게 칠수 있어 대단히 편리하다.
이 학교건물이 바로 일부루 (逸夫楼)이다.
2003년에 완공되여 학교의 원체로 이어진 일부루(逸夫楼) 그 이름때문에 묻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당시 간단히 홍콩의 소일부란 자선가가 자금을 대고 정부가 합작하는 방식으로 지은것이라는 답이 전부였다. 그 분은 자신을 선전할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밖에 몰랐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우리는 실내의 활동실에서 신체단련 헬스 기구도 쓰고 탁구도 치고 무도실에서 춤도 추고 했었다.
그 자선가인 홍콩 오락업 거두인TVB종신명예주석 소일부선생이 2014년 1월 7일 타계하였다.
그 소식에 접한후 자료를 찾다가 놀라운 장면에 입을 벌리게 되였다.
전국 31개 성시 및 자치구까지 소일부선생이 자금을 대여 지은 일부루(逸夫楼)가 대학교로부터 소학교에 이르기까지 규모는 같지 않지만 웅장하고 화려한 여러가지 모습으로 쫙 널려 있다는것, 그 교육자선투자가 6000여개 항목을 초월한다는것, 근 47억 5000만홍콩달러(인민페로 50억원)의 교육기금을 기부했다는것이다.
주로 학교건물, 도서관, 예술관, 학술교류중심 등으로 고향인 상해 녕파로부터 북경대학에서 청화대학에 이르기까지 1985년부터 시작된 자선사업이였다. 의료시설도 포함되여 있다. 이렇게 많은 일부루는 거인이 스러진 뒤에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탑처럼 자리잡아가게 될것이다.
내 마음속에도 소일부선생의 전설적인 인생이야기와 감동적인 사색들이 밀물처럼 벅차게 밀려들고있다.
그이는 어떤 분일가?
그분은 홍콩 영화계와 텔레비전계의 거두이다. 소씨영화의 창시자의 한 사람으로 1920년대의 상해로부터 싱가롤, 남양, 홍콩으로 전전하며 영화업의 앞장에서 개척하고 제작하는 인도자다. 리소룡, 주윤발, 장국영, 류덕화, 량조위, 류가령 등 헤아릴수도 없는 많은 유명한 배우들을 하늘의 별처럼 만들었다
그분의 분투사, 참답고 근면한 일상, 사랑이야기 등이 차차 알려지면서 그분의 추구와 정신세계가 드러나고 경탄과 함께 사회의 주선률, 탐색의 주선률을 느끼게 한다.
그이는 일생동안 일하여 부지런한 로동으로 사회를 위하여 재부를 만들고 그 돈을 또 사회에 반환하였다. 한 가정의 가장이란 직책을 넘어서 많은 사람을 념두에 두고 정신적 재부를 만들고 또 재부를 떠난 정신을 당세와 후세에 남기는 초탈한 모습이 참으로 멋있고 황홀하다.
그분이 세상 떠날 때까지 살았다는 주택을 보았는데 겉모습이 극히 소박하고 지어 낡아보였다는것도 사색을 남긴다. 그분은 알면 알수록 가슴이 멍멍해진다.
소일부선생의 전기적인 인생에 대한 조명이 지금 중국사회의 부패한 일면을 반추할수 그런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소일부선생이 한 말씀이 있다. 한 기업가의 최고경계는 자선이다.
일생동안 영화를 연구하고 만들어 온 소일부선생, 그이는 자신의 인생으로 제일 감동적이고 아름답고 영구히 남을 시나리오를 설계하고 인생의 종지부호 뒤에 더욱 큼직한 감탄부호를 찍었다.
자신의 인생 시나리오를 어떻게 쓸가 결정할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다. 끊임없는 탐색과 추구, 능력과 자본의 저축 그리고 옳바른 발휘에 있다고 소일부선생은 힘있게 이야기하고 있는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