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의《뢰봉》고만길씨 아들 고청남《사경에 처한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
지난 3월 31일은 80년대 연변의 《뢰봉》 - 고만길의 아들 고청남이 결혼한 날이다.
기자는 이 결혼식을 계기로 고만길가정, 그리고 고만길이 1986년 12월 24일에 사품치는 얼음강물에 뛰여들어 구원한 물에 빠진 어린이 (림철섭, 6살) 의 어머니를 취재하였다.
고만길은 뇌출혈수술로 언어장애가 와서 겨우 띄염띄염 하는 말이《그때나 지금이나물에 빠진 어린이를 구원한 것을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다》고, 또 《다른 사람을 위하여 그 많은 좋은 일을 한 것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하고는 함구무언하였다.
필자는 취재중 때마침 길가에서 25년전에 고만길을 취재하면서 고만길이 오공촌의 깊은 저수지물에 빠진 사람을 구원한 감동적인 사적을 제공했던 장정구씨를 만났는데 그가이런 말을 하였다.
《며칠 후면 만길이 아들이 결혼식을 합니다. 물론 가야지요.》 《만길이 남을 돕는 <병>은 못 고칩니다. 2년전 고만길이 친구가 앓아서 병원에 갔다가 병원서 내 동생이 덮개 없는 하수도구멍에 빠져 척추며 턱이며 골절된 엄청난 사고를 당한 것을 보고 당장에서 나의 동생을 도와준 것은 물론 사고분석을 해야 한다며 주동적으로 나서 끝까지 당사자가 제공한 선색에 따라 며칠간 현장조사를 하더니 그 덮개없는 하수구가 도문시 모 회사의 하수구라는 것까지 확인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회사에 다니며 수차나 교섭하더니 회사에서 하수구관리를 잘못한 책임으로 손해배상청구를 하여 지난해 말에 동생에게 몇만원에 달하는 돈을 배상하게 했습니다. 우리는 하수구에 빠졌으면 그저 제탓이라고 생각하는데 만길의 덕분으로 제 동생이 경제보상을 받고 살게 되였습니다》
《제 동생은 지난 음력설에 일부러 오공촌에 있는 고만길의 어머님을 찾아가 고만길때문에 살게 되였다며 설인사를 올렸답니다》
인연이라 할가, 장정구는 내가 고만길을 취재할 때마다 나타나 붉은 꽃에 푸른 잎이 되여주니 정말 인연도 이런 인연이 어디 있을가.
고만길의 아들 고청남(31)의 말이다.
《당과 정부에서 우리 아버지에게 큰 영예를 드렸기에 우리들도 영광스럽습니다》
《아버지는 늘 우리에게 국가의 유용한 인재로 가치있게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경에 처한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응당한 도리입니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가 아니라 나도 그런 환경에 띄우면 선뜻이 나설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라고 하더니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였다.
아들의 결혼잔치에서 만나 기념사진을 남긴 고만길 부부와 철섭의 어머니(오른쪽)
기자는 25년 만에 다시 고만길을 취재할 때 고만길의 련계전화를 몰라 행여나 하고 고만길이 구원한 림철섭의 어머니 류영희를 찾았다.
《혹시 철섭이 아버지 전화기록부에 고만길의 전화가 있을겁니다》(그의 남편 림광은 지난해 5월에 병으로 사망)
이렇게 말하던 그녀는 끝내 남편의 전화기록부에서 고만길의 전화번호를 찾아서 필자에게 알려줬다.
류영희의 말에 따르면 당년에 철섭이가 물에 빠졌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 배속에 있던 아이가 락태되였다. 철섭이의 사고를 당하고 보니 아이를 하나만 키우는 것이 너무 위험하다며 다시 임신하여 낳은 딸이 이미 23살이 되였다. 실로 고만길의 덕분에 철섭이도 살렸고 딸애도 얻었니며 자기네는 절대로 고만길을 못 잊는단다.
그래서 남편이 한국에 갔다가 돌아오자 현금 5천원을 가지고 고만길을 위문하러 다녀왔고 또 식당을 운영하면서 남편이 앓기전까지는 거의 해마다 고만길네 부부간을 모시고 고만길의 생일을 함께 쇴다고 한다.
일전에 일본에 있는 아들(철섭)한테 고만길의 아들 청남이가 결혼한다고 하니 자기 대신 어머님이 가서 축하해드리라며 오는 8월에 중국에 갈때 꼭 고만길을 찾아 인사를 올리겠다고 하더란다.
철섭이는 고만길을 잊지 않기 위하여 자기의 상용전화번호의 꼬리수를 《1224(12월 24일)》로 했다고 한다.
고만길의 부인 림영애의 말이다.
나는 종종 자식들의(1남1녀)말에서 힘을 얻는다. 나는 남편의 병(작년 5월 뇌출혈로 대수술을 받았음)을 병수발하는 것을 뢰봉을 모시는 일로 생각하며 마음속으로부터 달갑게 생각한다. 남들은 긴병에 효부(효자)가 없다면서 나를 생각하여 남편을 양로원에 보내라고 하는데 나는 도저히 그렇게 할수 없다.
남편이 병마와 억척스럽게 싸우는 것을 보면 나도 몰래 감동된다. 나는 더 좋은 약을 남편에게 대접하자는 마음이다. 지금 우리는 매일 아침 3시 반부터 일어나서 더운 소금물에 발을 담그는 것부터 시작하여 재활치료를 한다. 그러고도 아침 저녁으로 남편에게 온수목욕을 시킨다.
우리 가정에서는 사회의 관심에 보답하며 한뉘 고운 마음을 가지고 다 함께 잘 살아보자는 말을 수없이 한다.
고만길, 그리고 고만길의 주변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기자는 사람은 누구나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는 한차례 생동한 교육을 깊이 받았다.
오기활기자
편집/기자: [ 안상근 ] 원고래원: [ 길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