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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처녀·베트남 총각 '40년 사랑'… 직접 만나 '못다한 이야기' 들어보니

[기타] | 발행시간: 2012.02.20일 14:16
북한 여성 리영희(64)씨와 베트남 남성 팜 녹 칸(63)씨는 베트남 하노이 시내 작은 집에 살고 있었다. 두 사람의 국경을 뛰어넘은 30년간 사랑의 겉모습은 화려하지 않았다. 18일 찾아가보니 이들이 살고 있는 집의 좁은 거실엔 소파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이들의 사랑 이야기는 칸씨가 1967년 북한에 유학을 가면서 시작된다. 외교관 집안의 아들이었던 그는 북한으로 가는 유학생 200명 중 1명으로 선발돼 북한 함흥화학공업대학에서 공부하다 1971년 흥남비료공장에 실습을 갔다. 거기서 리씨를 만났다.

↑ [조선일보]리영희(왼쪽)씨와 베트남인 팜 녹 칸(오른쪽)씨가 지난 18일 베트남 하노이 자택 거실에서 다정하게 앉아 있다. 칸씨는 1973년 베트남에 홀로 돌아왔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잊지 못해 30년간 연애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키웠고 결국 2001년 결혼했다. /하노이=여시동 특파원 sdyeo@chosun.com

↑ [조선일보]리영희씨와 칸씨가 1971년 북한 흥남비료공장에서 처음 만나 사랑에 빠졌을 당시 모습.

칸씨는 이전 언론 인터뷰에서 부인 리씨에게 첫눈에 반했다고 여러 번 얘기했다. "실습을 했던 흥남비료공장에 작은 유리방 실험실이 있었다. 영희씨가 그곳에서 푸른 노동복을 입고 근무하는 모습을 지켜봤는데 얼굴이 고왔고 인상이 좋았다. 아내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마주칠 때 눈인사를 하는 게 고작이었다. 감시가 심해 말을 붙일 수가 없었다. 연애하다 적발되면 바로 출국 조치되던 시절이었다."

칸씨가 리씨에게 처음 말을 건 건 한 달 실습기간이 끝나기 며칠 전이었다. 그는 용기를 내 리씨 실험실로 찾아갔다. 칸씨는 "'혹시, 애인이 있나요'라고 물었더니 '없다'고 하더라. 준비해간 봉투 하나와 손수건 한 장을 건넸다. 봉투엔 내 사진과 함흥화학공업대학의 주소가 들어 있었다. 영희씨에게 집 주소를 달라고 해서 주소를 받았다"고 했다.

그들의 첫 만남은 3분이 채 안 됐다. 그 순간을 리씨는 이렇게 기억했다. "당시 우리 공장에서 '베트남 청년들이 오니 조심하라'는 사상 교육을 했다. 나는 남의 일로 생각했는데 며칠 뒤 친구들이 와서 '야, 딱 너같이 생긴 베트콩이 왔다'고 하는 얘길 듣고 웃었다. 어느 날 그가 실험실로 찾아왔는데 첫눈에 '아! 이 사람이 날 닮은 베트콩이구나'하는 생각이 스치면서 가슴이 탁 막혔다."

칸씨는 실습이 끝나 함흥으로 돌아가서도 리씨와 편지로 계속 연락했다. 칸씨가 편지를 보내 '집에 놀러 가도 되느냐'고 물었는데 리씨가 '오라'고 했다. 그는 그해 여름방학 때 주소만 들고 무작정 길을 떠나 몰래 리씨를 만나러 갔다. 동료들에겐 철저히 비밀로 했다. 그 당시 표현으로 '빨치산 사랑'이었다.

1972년 칸씨는 함흥화학공업대학을 졸업한 뒤 흥남비료공장에서 6개월간 실습을 했다. 두 사람은 그때도 몇번 만났다. 두 사람의 관계를 알게 된 리씨의 어머니가 "위험하니 만나지 말라"고 했으나 두 사람은 계속 사랑을 키워갔다. 칸씨는 리씨를 만난 지 1년 반이 지난 1973년 1월 1일 베트남으로 돌아갔다. 마지막 만남 때 두 사람은 오랫동안 울었다고 한다.

그 무렵과 그후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엔 '나를 버리고 가느니 차라리 죽이고 가세요''나와 동무를 떼어놓으려고 하는 모든 것, 나는 그것들을 저주합니다''우리들의 비극적인 이 연애는 언제 끝이 날까요?'등 고통을 호소하는 내용이 가득하다.

두 사람은 처음 만난 지 30년이 지난 2001년 북한 당국의 허락을 받아 결혼했다. 제대로 만나지도 못하고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30년 동안 마음이 변하지 않을 수 있을까.

칸씨는 "베트남에 돌아간 뒤에도 끝까지 결혼하지 않은 것은 영희씨에게 '영원히 사랑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부모는 결혼하라고 독촉했으나 그는 버텼다. 리씨와 편지는 계속 주고받았다. 칸씨의 수신 주소는 그의 어머니가 근무하던 베트남국가은행 사무실이었다. 북한을 떠나기 전 이 주소를 적은 빈 편지 봉투 수십장을 리씨에게 주고 왔다. 의심받지 않기 위해 편지 왕래는 1년에 1~3번 정도로 자제했다. 하지만 그 편지의 힘으로 두 사람은 서로를 기다릴 수 있었다.

두 사람은 1978년 칸씨가 함흥 2·8 비날론 공장 실습을 위해 방북하면서 다시 만났다. 칸씨는 그때도 리씨에게 계속 "기다려 달라"고 했다. 리씨가 "나 나중에 할머니 된다"고 하자 칸씨는 "당신은 할머니가 돼도 나의 영희다. 늙어도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북한 당국의 결혼허가를 받는 건 쉽지 않았다. 1992년 초 칸씨는 베트남 주재 북한대사에게 리씨와 결혼하고 싶다는 신청서를 냈다. 그는 "그때 우리의 인연을 다 말했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대답만 들었다"고 했다. 이후엔 더 이상의 만남을 시도하지 못했다. 편지도 하지 못했다. 북한 당국에 사연을 다 밝혔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리씨가 위험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2001년 칸씨는 당시 평양을 방문하는 쩐득르엉 베트남 국가주석과 아버지의 친구인 외무장관에게 자신의 사연을 소개하는 긴 편지를 보냈다. 그해 북한 당국은 쩐득르엉 주석의 요청에 따라 리씨의 결혼을 전격 허락했다. 그 이듬해 두 사람은 하노이에서 결혼했다.

1999년부터 하노이에서 거주하며 칸씨와 형님 아우로 가깝게 지내고 있는 태권도 사범 이명식(50)씨는 "형님은 형수와 재회하기 직전까지도 형수의 편지를 들고 다녔는데, 편지를 꺼내보고는 자주 울었다"고 했다. 칸씨는 현재 하노이 태권도협회 집행위원을 맡고 있다.

칸씨는 리씨를 오토바이 뒤에 태우고 자주 시내 나들이를 한다. 작은 오토바이는 '골동품'이라 불릴 정도로 낡고 오래됐다. 고교 시절 공부를 잘했다는 리씨는 베트남어를 몇달만 배우면 웬만큼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가 10년이 지난 지금도 언어가 자유롭지 않다며 둔해진 머리를 한탄했다. 리씨는 그러나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는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땐 기후도 안 맞고 우울증이 생겨 가끔 남편에게 짜증도 냈는데 남편은 모든 걸 받아줬다. 바보가 아니면 그럴 수가 없을 것이다. 나는 이 '좋은 바보'와 운명을 같이하고 싶다. 꿈같은 세월이었고, 꿈 같은 세월을 살다 가고 싶다."

조선일보 | 하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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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 의견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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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적인 러브스토리입니다..두 분 행복하시길..
답글 (0)
두 분 사랑 영원하시길 바랍니다. ~~ ^^
답글 (0)
눈물겨운 사랑이야기 감동이네요.
행복하시길 축복드립니다.
답글 (0)
두분 사랑 영원하시길 바람니당~
답글 (0)
아 아름답다~~~ 나두 나두~~
답글 (0)
지고지순한 사랑이네요!
답글 (0)
영화같은 이야기네요 ^^
답글 (0)
두 분 사랑 영원하시길 바랍니다. ~~ ^^
답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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