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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같은 할머니들의 이야기, 그건 우리 모두의 이야기"

[기타] | 발행시간: 2012.08.31일 16:38
과거 일본군이 위안부를 강제연행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일본 노다 총리의 망언으로 나라 전체가 분노하는 요즘, 반가운 음반이 나왔다. '소규모아카시아밴드' 송은지, 이상은, 정민아, 강허달림 등 홍대에서 활동하는 여성뮤지션 15명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음반 '이야기해주세요'를 지난 24일 냈다.

처음으로 얼굴을 드러내고 전쟁 범죄를 고발한 고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이 있었던 1991년 이후 12년 만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음반이 최초로 나온 것이다.

이 음반작업을 주도한 '소규모아카시아밴드' 송은지씨가 30일 홍대 씨클라우드에서 꺼낸 음반 표지는 간결했다. 하얀색 바탕 위에 '이야기해주세요'란 까만 글씨가 쓰여 있을 뿐이었다. 화려한 기교가 빠진 이 음반 표지엔 오히려 위안부 할머니의 삶과 이야기에 집중해달라는 의지가 느껴졌다. 앨범 안엔 환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김학순 할머니의 사진이 있다.

송은지씨가 이런 성격의 음반 작업을 고민하게 된 계기는 2005년 외할머니의 죽음이었다. 송씨는 "돌아가시기 전 옛날이야기를 여쭤보면 정신대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결혼을 일찍 했다는 말씀을 했다"며 "이렇게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일들인데 왜 말하기가 어렵기만 할까란 고민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지난해 독립적으로 활동하던 여성 뮤지션들이 많아지자 지금이 음반을 만들 수 있는 최적기라고 생각했다. 송씨는 "더 늦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도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왜 아무도 이런 음반을 만들려고 생각하지 않았는지 놀라웠다"고 했다.

가야금 연주가 정민아씨는 "은지의 제안을 들었을 때 획기적이라고 생각했다. ‘왜 여성 뮤지션들이 진작 할 생각을 못했나’란 자책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나 역시 여성이면서도 위안부 할머니들을 그냥 불쌍하다고만 생각했다"며 "음반 작업을 하면서 이들의 입장이 돼 보자고 생각했더니 상상하는 그 순간이 너무 힘들었다"고 당시 심정을 밝혔다.

이번 음반에 참여한 페미니스트 가수 지현은 2006년 나눔의 집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노래 수업을 하면서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엔 할머니들은 일본의 범죄에 대한 인정과 사죄를 원하는데 과연 음악이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노래를 듣는 5분 동안이라도 위로를 받을 수 있으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30일 홍대 시클라우드에서 만난 뮤지션 정민아씨, 송은지씨, 지현 씨(왼쪽부터)

단순히 곡을 쓰고 가사를 붙이는 일만이 음반 작업의 전부가 아니었다. 음반 작업을 하면서 만난 위안부 할머니들은 이들을 설레게도 했지만 마음 한켠을 아프게 하기도 했다.

송씨는 "너무 고령이셨고 말도 걸 수 없을 정도로 기운도 없어 보여서 너무 늦게 찾아갔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안타까웠던 당시 마음을 드러냈다. 만남은 한 번에서 그치지 않았다. 나중엔 노래를 좋아하시는 할머니들을 위해 노래방 기계를 들고 가기도 하고, 정민아씨가 가야금을 켜기도 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반드시 알려야 한다며 나눔의 집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허다하지만 한 번 찾아오고는 이후엔 연락도 없는 일이 부지기수라고. 송씨는 "할머니들도 사람들이 자신을 이용한다는 느낌에 상처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나눔의 집에서 이 인연을 계속 이어달라고 부탁하더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위안부 할머니를 찾아갔던 이들의 마음이 음반 발매로까지 이어졌으니 어느 정도 '인연'을 이어간 듯하다.

'이야기해주세요'란 제목은 요절한 재미교포 작가 차학경씨의 <딕테(받아쓰기)>라는 책에 나오는 구절에서 땄다고 했다. 이 책의 여는 부분에는 '당신의 이야기를 어디서부터든 어떤 방식으로든 좋은지 이야기해십시오'라는 구절이 나온다.

하지만 결코 할머니들에게 당신의 상처를 한 번 더 드러내달라는 의미는 아니라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옛날에 일어난 일이지만 반드시 그렇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단다. 전쟁에서 일어나는 여성에 대한 폭력뿐만 아니라 여성에 대한 국가·사회적 폭력은 여전히 현재진형행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것은 거짓말 같은 이야기/내 할머니의 할머니 이야기/사실 그것은 거짓말 같은 이야기/내 아버지의 아버지 이야기/사실 그것은 거짓말 같은 이야기/바로 내 이야기 나의 이야기"('이야기해주세요' 수록곡, 무키무키만만수의 <구순이> 중)

송씨는 "굳이 말하자면 할머니들에게 당신이 아닌 당신의 상처에 대해 이야기하라고 말하고 싶다"며 "할머니들이 당신의 얼굴을 드러내고 사실을 알린 것이 많은 이들에게 영감과 용기를 준 것처럼 현재를 살아가는 존재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야기 해 주세요> 포스터

터 14일까지 용산아트홀 전시장에서는 이들의 콘서트와 함께 사진전과 재일 위안부 송신도 할머니의 소송 투쟁을 담은 영화 <내 마음은 지지 않았다>(감독 안해룡)상영이 이뤄진다.

이번 사진전에는 그동안 위안부 할머니를 찍어온 한겨레와 조선일보 사진기자들도 많이 참여한다. 한겨레는 위안부 문제 보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안 감독은 "일본군 위안부를 사회적으로 문제제기한 윤정옥 전 이화여대 교수와 관련 르포로 이 문제를 조명한 한겨레 보도가 운동을 촉발시켰다"고 설명했다. 조선일보는 김학순 할머니의 사진을 이번 사진전에 제공하기로 했다.

이번 사진전에는 한국 위안부 할머니들뿐만 아니라 대만, 필리핀 등의 위안부 할머니들의 사진도 전시돼 당시 태평양 전쟁에 희생된 아시아 여성들의 고통과 상처를 드러낼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분단 현실을 보여주는 사진, 강정마을 등 평화를 염원하는 사진도 함께 전시된다.

안 감독은 최근 일본 정치권의 발언에 대해 화가 나지만 일본 국민들은 이와 달리 생각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치권과 미디어는 뜨겁지만 위안부의 증거는 일본 쪽에서 많이 제기했다"고 말했다.

안 감독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평소에는 무관심하면서도 특정 계기가 터질 때만 들끓는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꼬집기도 했다. 그는 "예전 아사히신문의 한 기자가 수요집회 1000회 때는 요란한 관심을 보였다가 1001회 때는 썰렁한 집회 현장을 비교한 기사를 내보낸 적이 있었다"고 에둘러 비판했다.


조수경 기자 | jsk@mediatoday.co.kr 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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