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가 있는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가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조선일보DB
지난달 초 미국에서 한 대학생이 자살하며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적이 있다. 학교생활이 모범적이었던 이 학생은 이른바 ‘공부 잘하는 약’을 복용했는데, 이 사실을 안 부모가 약을 끊게 하자 자살을 해버린 것이다. 국내에서도 ‘공부 잘하는 약’에 대한 논란은 끊이질 않고 있다. 인터넷을 찾아봐도 공부 잘하는 약을 판다는 곳이 줄줄이 뜬다.
특히 최근에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치료제가 효험이 있다고 알려지며 환자를 가장해 이를 처방받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보건당국으로부터 허가를 받은 약이라 안심을 해도 된다고 하는데 정말 그럴까? 미국 신경과학자들이 ‘건강한 아이에게는 이 약을 처방하면 안 된다’는 성명서를 내놨다.
세계 최대 규모의 신경과학자 모임인 미국 신경학회는 지난 13일(현지시각) 학회에서 발행하는 학술지 ‘신경학(Neurology)’ 온라인판 최근호에서 “건강한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인지능력을 향상하고 기억력을 높이고 생각하는 능력을 키워준다는 약을 처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성명서를 내놨다.
10대 사이에서 시험 전에 공부 잘하는 약을 먹는 것이 유행한 것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각성제가 중·고생들 사이에 오래전부터 유행했다. 문제는 최근 들어 부모들이 ‘공부 잘하는 약’을 처방해달라고 하는 일이 잦아졌다는 것이다. ADHD 치료제가 대표적인 사례다. ADHD 치료제는 미국의 경우 마약류로 분류돼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오남용금지 의약품으로 지정된 예가 있다.
학회는 이 문제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기 위해 지난 수년간 가능한 모든 연구결과를 검토하고, 윤리적 문제에 대해 검토도 했다. 검토결과 학회는 건강한 아이에게 이런 약을 처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결론을 냈다.
학회는 이런 결정의 근거로 아이들의 장기적인 건강과 의약품의 안전성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꼽았다. 또 어린아이와 학생들이 인지 능력과 감성 능력, 판단력이 발달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독립적으로 완전한 의사결정을 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라고 했다. 과잉 처방과 중독의 위험이 있다는 점 역시 건강한 아이에게 처방하면 안 된다는 이유로 꼽혔다.
윌리엄 그라프 예일대 교수는 “의사들은 아이들과 약자를 보호하고 의약품의 오남용을 막을 전문가로서의 의무가 있다”면서 “신경 활동을 증진하는 의약품을 건강한 학생에게 처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의사들은 약의 처방을 원하는 사람에게 분노나 우울증, 불면증 같은 사회적·심리적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알려야 한다”면서 “잠을 잘 자는 것과 영양을 잘 섭취하는 것, 공부하는 습관, 식이 요법 등 신경 활동을 증진하는 다른 방법도 많이 있다”고 덧붙였다.
조선비즈 [이재원 기자 tru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