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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아이돌의 21세기

[기타] | 발행시간: 2013.05.29일 14:20

팬들을 ‘마누라’라 부르던 서태지는 ‘주니어’ 계획을 세워볼까 한다며 결혼 발표를 했다. 늘 웃고 다닐 것만 같았던 손호영은 괴로움에 못이겨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신화가 이름부터 < Classic >인 앨범을 발표하고 15년째 한 팀으로 활동 중이고, 이효리는 솔로 활동을 하며 여전히 이슈의 중심에 서 있다. 그들은 20년 전 <내일은 늦으리>, 또는 10년 전 <드림 콘서트>에서 영원히 빛날 줄 알았다. 하지만 2013년 5월 현재, 그들 중 대부분은 해체했고, 일부는 일부는 팬들 앞에 설 수 없는 입장이 됐다. 신화의 김동완이 팬들에게 했던 말은 예언이나 다름 없었다. “신화는 여러분의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습니다.”

그 때의 영웅은 대부분 평범한 생활인이 됐다. JTBC <20세기 미소년>은 그 진실에 대한 담백한 확인이다. 젝스키스, god, NRG의 멤버가 모두 모여 ‘핫젝갓알지’를 결성했다. 하지만 몸도 인기도 예전같지 않다. 30대 중반이 된 그들은 기억력 감퇴를 고민한다. 잠실 주경기장을 채우던 팬들은 이제 작은 공개홀에 모일 정도만 남았다. 그 사이 그들은 각자에게 얹어진 삶의 무게를 짊어졌다. 토니안은 번 돈의 90%를 아버지가 주식으로 날렸다. 문희준은 솔로 데뷔 후 폭력적인 악플들을 견뎌야 했다. 천명훈이 합동 공연에 NRG의 팬들이 없을까봐 걱정하는 것은 그 시절 아이돌의 현재다. 20세기 미소년의 전성기는 끝났다. 사는 것은 정말 만만치 않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팬들의 사랑을 받고 싶다.

<응답하라 1997>, 그 후 16년

tvN <응답하라 1997>에서 성시원(정은지)에게 토니안은 신이나 다름 없었다. 반면 <20세기 미소년>에서 성시완의 실제 모델이라는 토니안의 팬은 초인종을 누르고 그를 만나러 온다. 그녀는 토니 안에게 도시락을 싸주다 아예 도시락 업체를 차렸다. 그 사이 그녀는 토니 안의 희노애락을 모두 지켜봤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지금도 도시락을 싼다. 그 이유는 핫젝갓알지의 합동공연에 온 다른 팬이 보여준다. 몸이 불편한 그녀는 17년 전 ‘전사의 후예’를 보고 H.O.T.를 좋아했고, H.O.T.는 방송과 함께 그녀를 찾아와 힘을 줬다. 그녀는 지난 10여년동안 힘들 때마다 그 추억을 기억하며 살았다고 했다. 20세기의 아이돌은 그런 존재였다.

그 시절 모든 것이 아이돌 그룹의 소속사가 기획한 비즈니스일 수도 있다. 아이돌이 팬들의 생각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1990년대에는 아이돌도, 아이돌의 팬덤도 처음이었다. 팬들은 성시완처럼 10대를 온전히 좋아하는 아이돌에게 던졌고, PC통신을 통해 가족과 학교에서 경험할 수 없었던 또다른 연대감을 느꼈다. 성시완의 모델이 된 그녀처럼 그 때의 경험이 인생을 바꾸기도 했다. 아이돌을 좋아하는 것이 소비가 아닌 사회생활의 시작이거나 심지어는 종교였던 세대. 그 기억이 있기에, 그들은 20세기 아이돌을 21세기에도 응원할 수 있다. <20세기 미소년>은 20세기의 아이돌이 한 세대의 문화이자 정서였다는 것을 알고, 그 마음을 존중한다.

덕분에 잘 살고 있는 거 맞죠?

“신화는 욕해도 신화창조는 욕하지 말아라” 신화의 팬클럽 신화창조의 누군가가 농반 진반으로 했다는 이 말은 20세기 아이돌과 팬의 관계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아이돌도 팬도 30대가 됐다. 팬은 ‘오빠’들이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 때의 기억은, 팬덤을 통해 만들어진 인연은 30대까지 계속된다. 20세기의 아이돌이 신화였다면, 21세기의 그들은 팬의 20세기를 긍정케 하는 구심점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아이돌과 팬이 아니라, 한 세대의 문화가 나이들어가는 과정을 보는 것일런지도 모른다. 아이돌 산업을 경험한 이후의 세대는 또다른 방식으로 그들의 스타를 받아들일 것이다.

나이든 아이돌의 유일한 의무. 팬이 이렇게 말할 수 있게 하는 것



H.O.T.는 ‘소년이여! 신화가 되어라’라는 노래를 불렀었다. 하지만 지금 그 시절의 아이돌은 데뷔 15년째 해체 안하고 그룹 활동만 열심히 해도 충분히 신화다. 이효리처럼 여전히 아이콘의 자리를 갖는 것 역시 신화의 영역이다. 팬들은 거기까지 바라지 않는다. 토니안은 몸이 불편한 그 팬의 정성스러운 편지에 눈물을 흘렸다. 젝스키스의 김재덕은 잠깐 등장해 여전히 유쾌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 뒤 쿨하게 카메라 밖으로 사라진다. 그거면 충분하다. 팬을 여전히 아끼는 것. 이 험한 세상에서 여전히 잘 살아가고 있는 것. 그래서 여전히 ‘오빠’라고 부를 수 있게 하는 것. 그러면 팬은 <20세기 미소년>의 그 팬이 쓴 편지처럼 화답할 것이다.

“끊어진 흑백필름 같은 추억이 아니라 반짝 반짝 빛나는 추억을 갖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참 많이 힘이 들 텐데 지금까지 내가 팬일 수 있게 잘 버텨 주셔서, 변함없이 그 자리 지키고 있어 고마워요.”

글. 강명석 (웹진 < ize >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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