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본회의에서 국가기록원에 대한 2007년 남북정상회담 관련 자료제출요구안이 통과된 이후 국가정보원을 향한 여야 정치권의 시선이 심상치 않다. 이 모든 ‘사단’의 단초를 국정원이 제공했다는 야당은 물론 여당 내부에서도 이번 기회에 어떤 식으로든지 메스를 댈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회에 대한 반란?=민주당 고위 당직자는 3일 “남재준(사진) 국정원장의 지난달 24일 대화록 전격 공개는 한마디로 국회에 대한 반란”이라고 규정했다. 이 당직자는 “원세훈 체제에서 부역한 고위 간부들을 일제히 정리하면서 국정원 조직이 아주 어수선해졌다”면서 “남 원장은 이런 상항에서 국회 국정조사를 결코 받을 수 없다는 판단을 한 거 같다”고 말했다. 남 원장이 정치권을 압박하고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대화록 전문 공개라는 초강수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국회 관계자는 “남 원장이 여권 고위 인사에게 국정조사를 수용할 경우 사표를 던지겠다는 ‘경고성’ 발언을 했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에서도 유사한 분석이 나온다. 한 관계자는 “취임 초 강력한 조직 장악력이 필요했던 남 원장으로서는 직원들에게 정치권에 맞서는 강한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국정원의 대화록 공개 이후 여론 동향이 심상치 않자 결국 여당은 국정조사에 동의했고, 남 원장은 정치권의 역풍(逆風)에 직면하게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국정원의 ‘질긴 악연’=집권 5년간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정원장과 독대하지 않았다. 한 전직 원장은 사석에서 “정보기관장으로서 대통령을 단독으로 만나지 못하는 데 대한 자괴감까지 든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국정원의 ‘정보’를 그리 신뢰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외부로 알려지지 않은 사례가 있다. 2006년 부동산 시장이 들썩일 때 노 전 대통령은 사회 지도층 인사들을 만나 자문을 구하면서 경찰이 올린 정보보고서를 구체적으로 인용했다. 국정원은 ‘굴욕’을 느꼈다는 후문이다. 사행성오락 ‘바다이야기’가 온 나라를 휩쓸었을 당시 사전에 이 같은 동향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질책이 국정원에 떨어진 적도 있다.
이처럼 노 전 대통령은 지속적으로 국정원을 정치권에서 독립된 정보기관으로 만들려 했지만 실패했다는 평가가 많다. 결국 그 국정원에 의해 ‘반역의 대통령’으로 의심 받는 처지로 몰린 셈이다.
◇집권세력, ‘정보유혹’ 이겨낼 수 있을까=남재준 체제의 국정원이 거세게 몰아닥치고 있는 개혁의 칼날을 피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여야에서는 국정원의 국내 파트를 축소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현 집권세력에게 양날의 칼과 같다. 역대 대통령들은 취임 전 정보기관을 대대적으로 수술하겠다고 외쳤지만, 권좌에 앉아 이들이 가져오는 ‘입에 맞는 정보’에 길들여지는 순간 생각이 달라지곤 했다.
따라서 국정원 개혁의 향배는 박근혜 대통령과 여권 수뇌부 의중에 달렸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국정원 내부에 정통한 민주당 관계자는 “국정원이 방대한 조직과 인력을 활용해 생산하는 정치정보를 거부할 만한 ‘용기’가 필요하다”며 “과거 정권들이 실패한 이유도 여기서 찾으면 될 것”이라고 했다. 외부 요인으로는 이번 국정조사에서 충격적인 정치개입 사실이 추가로 드러나 여론이 들끓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국민일보 백민정 기자 min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