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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신용은 금이다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09.10.13일 15:42
도문시 보이라공장 김룡식공장장 인터뷰

일전 기자는 30여명의 종업원들을 이끌고 팽이처럼 돌아치는 도문시보이라공장 김룡식공장장(55)을 만났다. 월동준비때라 꺼질줄 모르는 핸드폰, 할빈서 온다는 손님들… 여하튼 오전에 시작한 인터뷰가 밤 약속으로 이어졌다.

그도 그럴것이 지나온 17년간 눈에 차지도 않는 작은 공장에서 크고 작은 보이라를 1000여대나 생산해 주내외에 공급했다니 그에 따른 추적봉사만 해도 얼마나 벅차겠는가!

《불공평한 운명》

《내 운명은 불공평한 운명입니다》

첫눈에 정직하다는 인상을 안겨 주는 그가 떼는 화두에 필자는 저으기 당혹하였다.

광복 3 년전에 닥치는대로 일해 번 돈으로 땅을 사 지주로 된 무식쟁이 할아버지, 《력사반혁명분자》 에 《현행반혁명분자》 모자까지 쓰고 투쟁을 받은 아버지(김한역, 연변한어사범학교, 연변고중 교도주임 력임), 부농의 딸 어머니로 하여 룡식이는 기죽은 《불행아》로 될수밖에 없었다

가정정치배경으로 로동자모집에 늘 《왕따》만 당하던 룡식이는 《지식청년을 모두 귀성시키는 정책》에 따라 농촌에 하향하여 8년이 지난 1978년 1월에 국영기업소(도문시 윤활유공장)로동자로 배치를 받았다. 그런데 또 그에게는 《집체편제》라는 꼬리가 달려 그의 전도에 거침돌이 되였다.

그는 《집체편제》때문에 간부편제로 넘지 못하다 보니 13년간 용접봉과 씨름을 했고 남들은 공비로 하는 연변대학(함수)도 그만은 자비로 졸업하였다. 그에게 글재간이 있다고 여러 문화계통에서 욕심을 냈으나 단 《간부 아닌》 리유로 길이 막혔다. 아무리 밀어봐도 당 《문》이 안 열리니 입당을 포기하였다.

《무》에서 《유》를

1991년 11월, 교육개혁과 더불어 《학교에서 공장을 꾸리는》 열풍이 일자 룡식이는 《용접기술이 높은》 덕분에 도문시기공학교에서 초빙, 날개를 편 룡식이는 정보를 얻고 보이라공장을 꾸렸다.

그제나 지금이나 룡식이의 창업밑천은 《의욕, 정신, 책임》 이란다.

《창업으로 불공평했던 운명을 보상받겠다》는 그의 창업의욕과 하늘을 찌르려는 분발정신, 사회에 대한 높은 책임감은 날이 갈수록 빛을 내고 힘이 되였다.

그는 《발열량이 낮고 연소시간이 짧으며 체적이 큰》 연변석탄의 특성에 맞는 보이라를 설계, 제작한데서 룡식이네 제품이 《가격이 싸고 질이 좋다》는 평가가 뒤따라 도문시보이라공장이 《연변조선족자치주보이라생산 지정공장》으로 부상되였다. 하여 연변변방지대 병영에 이 공장제품을 보급(15대)하였다. 지난 9월 21 일 서란시정부물자구입처에서는 사람을 파견하여 이 공장을 고찰하고 《당금 5대를 보증해 달라》고 재촉한데서 룡식이는 《즐거운 고민》으로 모대기고있다.

《내가 하면 되고 내가 안 하면 안 되는 기업은 기업이 아니다. 지난 17년을 창업련습으로, 지금부터를 창업실천으로, 지나온 련습이 너무 길다보니 아직까지 종업원들에게 복을 주지 못해 미안하다》 《내가 안 해도 잘 돌아가는 공장을 기어코 만들겠다!》

이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 그의 호언장담이다.

《성신위금》

룡식이는 사무실에 《성신위금(誠信槨쏜)》을 정중하게 모신다. 《성신위금》은 그가 명망이 높은 서법가(란해)한테 특별히 부탁한 서예작품이기도 하다.

《성신위금》은 그의 좌우명이고 생활과 사업의 신조란다.

부모들의 《정치불결》로 《오직 정직하고 온순했다》는 그는 《성신위금》을 가보(家괜), 장보(낍괜)라 한다. 그의 말 몇마디를 적어 본다.

―내가 말하는 책임은 사회를 책임지고 종업원을 책임지며 가정을 책임지는것으로서 나의 인격을 책임지는것입니다.

―하고 싶은 말은 정부공무원들이 기업의 운명과 자신의 운명을 련계시켜 공정집권, 공평집권도의를 지키라는 부탁입니다.

―《인간답게 살려면 불의와 도전하고 편안하게 살려면 불의를 외면하라》는 김학철선생님의 유언도 《성신위금》이라고 생각됩니다. 《의욕, 분투, 책임, 성신위금》은 그의 인격이고 창업밑천이다. 도문시보이라공장의 번영발전을 기원하며 필자는 맘속으로 《10자 밑천》 만세를 불러본다.

편집/기자: [ 오기활 ] 원고래원: [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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