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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33]마지막 한명까지라도 의무교육과정을 다 배워주련다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4.08.21일 21:56
기획-계렬조사보도 《길림성 산재지역 조선족학교에 가보다》(33)

유수시연화향조선족학교편



유수시연화향조선족학교의 조순옥교장.

학교연혁:

1948년, 학교 설립

(초기 교명: 유수현 사하구 20구 연화제2중심학교)

1949년 공립학교 변경

1959년 신툰분교 통합

1964년 유수현 연화향조선족소학교 개명

2002년 유수시 연화향조선족학교 개명(향중학교 통합)

2008년 초중부 해체



유수시연화향조선족학교의 《가족사진》.

《연변마을》 연화향의 우리 학교

장춘시에서 동북쪽으로 차를 달려 4시간만에 도착한 이곳은 장춘지역의 《연변마을》로 불리는 유수시 연화조선족향이다.

취재팀 일행이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8월 14일 오후 두시, 깨끗하게 정돈된 향소재지마을길옆 한가운데 유수시연화향조선족학교라는 간판을 건 아담한 학교 하나가 나타났다.

여느 조선족마을처럼 조금 한적한 마을길이지만 어디선가 흥겨운 음악소리가 들려나온다.

기자 일행을 마중한 향정부 일군은 요즘은 방학기간이지만 학생들은 8월 20일에 개최될 연화향건립 50주년 기념행사에 선보일 무용을 련습하느라 학교운동장에서 구슬땀을 흘리고있다고 소개해준다.

학교와 길 하나를 사이두고있는 향정부 사무청사에서 우리는 마침 연화향건립50주년 기념행사 관련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연화향조선족학교의 조순옥교장을 만날수 있었다.

조순옥교장의 안내를 받으며 학교에 들어서니 학교정원은 종이 한장 없이 깨끗했고 거기에서 여라문명 되는 학생들이 뛰놀고있었다. 우리와 마주치자 처음 보는 사람이라 조금 멈칫했지만 그것도 잠간, 바로 잊은채 신나게 학교운동장을 뛰여다녔다.

《우리 학교는 연변으로부터 온 조선족이주민들이 이주 첫해인 1948년에 세운 학교이다. 학생이 최고로 490명이 있었으며 지난 60여년간 도합 203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유서깊은 학교이다.》

조순옥 제9임 교장은 격양된 어조로 기자 일행에게 학교의 《휘황했던 어제》를 소개하고나서 차분한 목소리로 《참담한 오늘》과 《앞이 안 보이는 미래》를 재조명해보였다.



지금은 연화향 소속의 3개 조선족촌의 촌사무실로 사용되고있는 학교의 옛 교사건물.

《이밥 배불리 먹어보려고》... 조선족 집단이주민 743세대

130여만명의 인구를 갖고있는 유수시는 길림성내 최대 규모의 현급시이며 장춘시 알곡생산량의 3분의 1, 길림성의 10분의 1, 전국의 180분의 1을 차지하는 길림성의 알곡생산대현이다.

제7임 당위서기 리장수가 이끌고있는 연화향은 유수시 관할구역내의 24개 향급 행정구(4개 가두, 15개 진, 5개 향)중에서 유일한 조선족향이고 장춘시의 유일한 조선족향이다.

연화조선족향은 연변의 연길현(현재의 룡정시)과 화룡현(현재의 화룡시)으로부터 집단이주한 조선족농민들로 형성된 곳으로서 연길현과 화룡현의 첫자를 떼여 연화(延和)라는 지명을 지었다.

광복전, 일제는 유수현 라림하강반의 비옥한 땅에 수많은 수전농들을 끌어다가 벼농사를 지어 흑룡강지역의 관동군에 량식을 공급했다.

1945년, 일본이 무조건항복을 하자 수전농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이곳의 논밭들은 황페해지기 시작했다.

1947년말,새로 성립된 유수현인민정부는 이 논밭들을 다시 부치기 위해 벼농사를 잘하기로 소문난 연변의 조선족농민들을 이곳에 이민시키기로 결정했다.

1948년 음력 대보름날, 《땅이 비옥한 송눈평원에 새로 지어놓은 벽돌집의 뜨끈뜨끈한 온돌이 기다린다》는 당시의 개척지 선전에 《속은》 연길현과 화룡현의 조선족 743세대는 뼈속까지 스며드는 추위도 잊은채 《벼농사를 지어 배 터지도록 이밥을 먹고 살수 있다》는 화려한 상상에 젖어 서쪽으로 달리는 화물기차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는건 당장이라도 허물어질것만 같은 한족들이 버리고간 초가집과 허허벌판이였다.



유수시연화향조선족학교의 지도부성원들.(좌로부터 박연숙 부교장, 조순옥 교장, 최애화 교도주임)

이민 첫해 허허벌판에 민족학교 건립

조선족 이주민들은 《부림소를 팔아서라도 자식을 공부시킨다》는 우리 속담처럼 이주 첫해에 맨주먹으로 허허벌판 연화땅에 우리의 민족학교를 설립했다.

당시의 명칭은 《유수현 사하구20구 연화제2중심학교》이였고 후날 연화향의 제1임 당위서기를 맡은 허윤활선생이 초대교장을 맡고 교원 10명을 인솔하여 280여명의 학생들에게 첫 수업을 시작했다.

1959년에 신툰에 있던 분교를 통합하면서 학생수는 일약 490여명으로 부상하면서 력사상 최고치에 도달, 1964년에 유수현연화향조선족소학교로 개명했다.

1980년에 제6임 교장인 김청송 등의 노력끝에 흙집으로 되어있던 원래의 학교건물을 허물고 벽돌로 된 856평방메터의 단층건물을 지었으며 실험실, 기구실, 의무실 등 시설들을 마련했다.




전성기때 학교의 문체활동 모습을 담은 옛 사진을 통해 당시 학교의 규모를 엿볼수 있다.

《두가지 언어》교육으로 전성기 맞아

1987년, 흑룡강성 오상현고급중학교를 졸업하고 오상현 영성자공사 신광학교(조선족학교)에서 대과교원의 신분으로 교원생애를 시작한지 4년만에 조순옥은 연화향에 시집오면서 연화향조선족소학교에 전근했다.

조순옥교장은 《지난 90년대초기까지만 해도 우리 연화향소학교의 〈두가지 언어〉교육과 축구는 장춘시에서 앞자리를 차지했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학교는 1984년부터 1995년까지 10여년간 련속 유수시교육선진단위로 평의되였고 1994년부터 1996년까지 3년 련속 유수시의무교육보급1류학교로 평의됐으며 장춘지구 조선족랑송경연 3등, 조선족학교문예경연 소품 1등, 장춘시조선족소학교흥회축구경기 1등상 등 많은 영예를 따냈다.

조순옥은 여러해동안 졸업학년의 담임교원을 맡으면서 장춘시우수담임교원, 장춘시골간교원, 유수시우수교원 등 영예칭호를 수여받았으며 교무주임, 부교장, 교장을 력임했다.

1990년대에 제7임 교장 조태호의 노력하에 학교건물은 양철기와로 교체하고 돼지굴과 양어장을 만들어 학교살림에 보탰고 1998년에 학교건립 50주년을 맞았다.

2002년에 학교 뒤울안에 586평방메터의 3층짜리 교수청사를 건설하고 중학교와 통합되고 《9년일관제학교》로 되였으며 학교 명칭은 《유수시연화향조선족학교》로 변경되였다. 중학교 교장이던 권기평이 제8임 교장을 맡았고 당시 10명 중학생과 38명 소학생이 있었으며 교직원은 38명이였다. 당시 도서실, 컴퓨터실, 실험실, 의무실, 원정교육접수실도 새롭게 마련됐다.

2012년 11월, 조순옥(49)은 전교생이 10여명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 학교의 교장직을 짋어지고 현재 부교장 박연숙(46), 교도주임 최애화(38)와 함께 학교 지도부를 결성했다.

현재, 학교의 부지면적은 1만 8800평방메터, 교수청사 면적은 1442평방메터인데 그중 2002년에 건설되여 현재 사용중인 3층짜리 교사건물은 면적이 586평방메터이며 1980년에 세워진 낡은 교사건물은 면적이 856평방메터이다.

몇년전, 학생수가 기하학적으로 줄어들자 리장수 향당위서기의 제의하에 실험실과 의무실을 제외한 낡은 교사건물의 대부분을 연화향의 연화촌, 룡화촌, 장복촌 등 3개 조선족촌의 사무실로 사용하고있다.

낡은 교사 남쪽에 있는 1만여평방메터 되는 학교울안은 향에서 연화향민속광장을 건설하여 주민들의 문화생활 레저장소로 사용하고있고 낡은 교사와 새 교사사이의 4000여평방메터 되는 학교울안을 현재 학교에서 사용하고있다.



연화향민속광장으로 이쁘게 개조된 학교의 옛 운동장.

해당 부문과 지성인들 지원

최근 년간, 상급 해당부문에서는 연화향학교에 아낌없는 지원을 주고있다고 조순옥교장은 말했다.

해마다 학생당으로 전문경비가 500원씩 내려오다보니 최근 몇년동안 학교의 교육전문자금은 5000-6000원좌우를 맴돌았지만 유수시교육국에서는 해마다 학교에 필요한 각종 경비 10여만원씩 학교에 전액 지원해주고있다.

2013년에는 연화향 당위서기이며 유수시 인대상무위원회 부주임인 리장수가 해당 부문을 찾아다니며 28만원의 자금을 쟁취하여 현재 사용중인 학교 운동장의 절반이 넘는 2400평방메터의 원래의 울퉁불퉁하던 운동장 벽돌바닥을 콩크리트로 교체하고 학교대문도 대리석으로 멋있게 개조했다.

유수시교육국의 왕화학(王化学)국장은 《연화향조선족학교의 마지막 한명의 학생이 학교를 졸업하여 학교가 문을 닫을 때까지 지원을 계속 아끼지 않을것이다》고 여러차례나 모를 박아 말했다고 한다.




전교생이 친구가 되여 서로 어울려 놀고있는 연화향조선족학교.

전교생 9명이라도 학년따로 반급 따로

조순옥이 전근해오던 1987년에만 해도 연화향조선족소학교에는 학급마다 학생이 40여명씩, 도합 200여명 있었으며 교원은 21명 있었다.

하지만 지난 7월에 6학년생 3명이 졸업하고 장춘시조선족중학교에 입학하게 되다보니 현재 연화향조선족학교의 전교생수는 두자리에서 한자리수로 줄어 9명으로 되였다.

그중 학전반과 3, 5학년에 각각 1명, 1, 2학년에 각각 3명씩 남아있으며 4, 6학년은 없어졌다. 여러해동안 마을에서 신생아의 울음소리를 들어보지 못하다보니 유치원은 없어진지 여러해 됐다.

5개 학급이다보니 5명의 담임교원이 조선어, 수학, 한어 등 과목을 가르치고 학전반은 담임교원이 여러가지 과목을 일년 사계절 혼자 가르친다.

영어, 과학, 컴퓨터 등 과목의 과임교원이 각각 1명씩 있는외 음악, 미술, 체육 수업은 전교생이 같이 수업한다.

《한개 학년에 학생이 한두명이라고 해서 몇개 학년을 통합하여 한개 학급으로 만들고싶지는 않다. 한개 학년, 한개 학급에 한명의 학생이 있더라도 그 년령단계에 따른 교육방법이 달라야 하기에 우리는 담임교원 한사람씩 꼭 붙여놓았다. 학생수가 적다고 해서 어느 과목을 가르치고 어느 과목은 가르치지 않을수 없다. 마지막 한명의 학생이라도 국가의 의무교육과정은 반드시 다 배워주련다.》

조순옥교장은 차분하면서도 견강하게 말한다.

조순옥교장은 《학교는 2000년부터 젊은 교원을 모집하지 못하다보니 38세인 최애화 교도주임이 최년소 교원이며 학교 12명 교원의 평균년령은 50세좌우다》면서 교원의 로령화문제가 심각하다고 소개한다.

그외 상급 부문에서 조직하는 강습, 업무회의때마다 무릇 통지만 받으면 교원들을 파견하는데 그외에 외지 학교와의 업무교류와 학습기회는 전무하다. 교원들의 제1학력은 대부분이 고중졸업이고 제2학력은 본과대학이 4명, 그외 전부 전문대이다.

그외 조순옥교장은 학생들의 성격문제 역시 홀시할수 없다고 꼬집었다. 학생수가 적고 동학이 적거나 없다보니 학생들은 경쟁심과 승벽심이 없다고 한다. 학습성적이 조금만 좋아도 자만하는 경향이 있고 학습성적이 차해도 참조대상이 없다보니 대수로와하지 않는다. 학생의 대부분이 조부모가 키우고있는 실정, 집에서 하자는대로 다 해주니 성격이 내성적이고 어질면서도 고집이 매우 세다. 남학생들은 녀학생들과 어울려 놀다보니 성격이 녀성스러운 면이 많다. 하여 동년배 남학생들보다 담도 작다.



깨끗하게 정돈된 학교 일각.

언젠가는, 언젠가는...

7년후 현재의 학전반의 유일한 학생이 졸업하면 연화향조선족학교도 산재지구의 수많은 조선족학교들과 마찬가지로 세월의 흔적속에 사라질수 있다는 말이 된다. 그것도 이 학생이 그동안 다른 학교로 전학해가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만 가능한 추측이다.

66년의 력사를 자랑하는 연화향조선족학교, 학교건물은 아직까지 쓸만했고 세멘트 바닥의 교정도 새것이다. 이곳엔 마지막 학생이라도 반드시 정성들여 배워주겠다는 굳은 결심을 가진 우리의 사랑스러운 교원들이 있다. 또한 민족교육의 든든한 뒤심인 연화향 당위와 정부의 드팀없는 지원과 지지가 있다.

하지만 이런것들은 사그러져가는 학교의 운명은 개변시키지 못할것 같다.

이 학교의 마지막 학생이 졸업하는 날 다시 와보고 싶었다.

취재를 마치고 나서니 밖에서 놀던 애들은 보이지 않았다. 학교운동장옆에 높이 자란 몇몇 소나무만이 이 학교의 자랑찬 력사를 기억한채 하늘을 우러러 름름하게 서있었다. 마치 마지막 한명의 학생이라도 꼬옥 지켜주려는듯.



학생들이 길림성조선족경제과학기술진흥총회로부터 선물받은 공으로 즐겁게 공놀이를 하고있다.



연화향민속광장에서 휴식하고있는 학생과 주민들.

편집/기자: [ 유경봉 최승호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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