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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양에서 조선의용군 독립지대를 창건한 한청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21.08.11일 15:36
  한청(1912-1996), 성은 신(慎)이고 이름은 익성이다. 혁명사업의 수요에 따라 이름을 선후로 신해룡, 장원복, 고바야시 신사부로(小林慎三郎), 신억 등으로 고치였고 8.15광복후 한청(韩青)이라고 고친 후 계속 그 이름을 썼다.

  한청은 1912년 12월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모동리 무월동의 가난한 농민 가정에서 태여났다. 17세 때 항일구국의 큰 뜻을 품고 몇차례의 곡절을 거쳐 1931년말에 심양에 왔다가 1932년에 상해로 갔다. 1933년에 남경에서 마침내 조선인항일단체를 찾았다.

  그는 1933년 3월에 중앙군사학교 락양분교 제5기 제2대대에 편입됐다. 대대장은 양중화였고 그 때 조선인 학생이 100여명이나 있었다. 1935년 3월에 중앙군사학교 락양분교를 졸업한 후 의렬단 성원들과 함께 남경으로 갔다.

  1937년초에 재중국조선공산주의자전위동맹에 가입했고 1938년 10월에 조선의용군에 입대했다. 그해에 연안에 있는 항일군정대학에서 1년 4개월 동안 철학, 정치, 경제학으로부터 항일전쟁과 통일전선, 부대의 건설과 전략전술, 부대의 정치사업, 당건설 등을 공부하게 됐고 그 때 중국공산당에 관한 지식을 많이 배웠다.

  1940년 1월에 처음으로 기남평원유격전에 참가했는데 적의 수류탄 파편이 왼쪽 허벅다리에 맞았다. 한달 동안 야전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상처가 다 아물어 다시 부대에 돌아가 계속 대적와해공작을 했다. 그러나 그 때 수류탄 파편을 다 뽑아내지 못하여 돌아갈 때까지 왼쪽 허벅다리에 파편 하나가 남아있었다고 한다.

  1941년 11월말부터 일제는 태악과 태항 지구에 대소탕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형세에 직면하여 조선의용대도 작전준비에 서둘렀다. 대전을 앞두고 당시 조선의용군에는 무기가 권총 몇자루 밖에 없었는데 후에 팽덕회 사령에게 급보를 보내여 새 총 100여자루와 무기를 전달받게 됐다.

  조선의용군은 팔로군과 배합하여 세차례 대규모적인 반소탕전투를 진행했다. 1941년 동기반소탕전투, 1942년의 동욕진 맥비령(麦秕岭) 매복습격전투, 1943년 5월의 반소탕전투였는데 한청은 이 세차례 전투에 다 참가하여 일본군과 영용히 싸웠다(그 때 한청은 조선의용군 총대의 경위분대 분대장직을 맡았다고 한다).

  1942년 5월에 일본침략군은 화북에서 대규모적인 소탕전을 감행했다. 그 때 조선의용군은 야전군 총정치부 직속부대를 따른 부대로서 총대장에 박효삼이였다. 반소탕전투에서 팔로군지도부는 령활하게 지휘하여 순조롭게 적의 포위를 돌파했고 적 500여명을 소멸했다. 그러나 반소탕전투에서 좌권 참모장과 신화일보사의 지도자 하운 등 재능있는 편집과 행정관리일군 40여명을 잃었다. 조선의용군에서는 지도간부 석정과 진광화가 희생됐다.

  1942년 10월 10일에 태항산 섭현 경내에서 팔로군 전선총지휘부, 중공중앙 북방국, 팔로군 제129사 태항군구, 진기로예변구정부, 각 민중단체는 '5월반소탕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장렬하게 희생된 팔로군 총참모장 좌권, 화북조선청년련합회 진기로예변구지회 회장이며 조선의용군 령도소조 위원인 진광화, 조선의용군의 우수한 지도자중의 한 사람인 정치교원 석정 등 렬사의 합동추도대회를 열었다. 그 때 등대원 부참모장이 사회하고 주덕, 엽검영, 라서경, 류백승, 리대장, 변구정부 주석 양수봉, 조선의용군 대표 리익성 등도 참석했다고 한다.

  한청은 1942년에 중공중앙의 새로운 지시에 의해서 중국공산당 정식당원으로 됐다.

  1945년초 한청은 하북, 열하, 료녕 3성의 변계지구에 있는 항일근거지인 기열료군구에서 사업했다. 1945년 8월 15일에 일본침략자들이 투항을 선포하자 심양시의 조선인들은 심양시조선인민회의 주최로 서탑조선학교 강당에서 항일전쟁의 위대한 승리를 경축하는 성대한 군중집회를 가졌다. 8월 8일부터 한청은 심양시에서 조선의용군 독립지대 창건사업을 하다가 지대장으로 임명됐고 홍주홍이 부지대장으로 임명됐는데 황고구 주강조선소학교에 지대부를 정했다. 9월초에 기열료군구 16분구 증극림(한족)부대가 심양시에 주둔했다. 그 부대 정치위원 당개(한족)의 지지를 받아 독립지대를 무장하게 됐다. 1945년 11월 10일에 심양시 교외의 오가황조선소학교에서 제1, 제3, 제5 지대로 편성됐다. 제1지대는 남만지구에 남게 됐다. 제1지대의 지도성원들로는 지대장에 김웅, 정치위원에 방호산, 참모장에 안빈, 정치부주임에 주연이였다. 한청, 주연이 조직한 조선의용군 선견종대를 기초로 한 1,600여명의 병력과 연안—조선혁명군정학교 졸업생 및 각 항일근거지에서 북상한 청년군관들을 골간으로 한 제1지대는 보병 9개 중대, 기관포중대, 경위중대 등 11개 중대를 두었다.

  조선의용군 제1지대는 1945년 11월에 심양에서 조직되여 그후 홍광지대, 동북민주련군 독립제4사, 중국인민해방군 제166사로 개편됐다.

  조선인으로 구성된 이 무장대오는 ‘통화 2.3폭란’의 진압, 남만 장백산근거지 건설, 토비숙청, 4차의 림강보위전, 료심전역 등 수많은 전투에서 국민당 반동파와 토비들을 대량으로 소멸했으며 간부를 많이 양성하여 해방전쟁에 크나큰 기여를 했다.

  한청은 1942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여 선후로 항일전쟁, 해방전쟁, 항미원조전쟁과 사회주의 건설에 참가했다. 그는 리직 휴양한 후 당과 정부의 관심 속에서 행복한 만년을 보내다가 1996년 심양에서 별세했다.

  /료녕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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