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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세 삶을 살다 별이 된 대스타 ​-진이와의 특별한 인연을 회억하여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22.05.13일 15:32



  《동방명주를 빛낸 사람들》을 보고 있는 진이

  밀린 일 때문에 밤샘 작업을 하다보니 아침에 눈을 뜨지 못하고 있는데 딸애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진이(秦怡)할머니가 100세를 일기로 상해에서 사망했다고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연변인민출판사 상해지사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영화황제’ 김염의 일대기를 다룬 책 출판행사를 두번이나 치렀는데 행사 때마다 딸애는 진이할머니를 가까이에서 만나 싸인을 받고 기념사진까지 찍었으니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전화를 내려놓은지 한시간도 안되여 상해의 여러 지인들로부터 진이 사망소식을 메시지로 전달받았다. 다들 그번 행사에 참석해 진이와 특별한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이다. 이 순간 상해에서 진이와의 만남은 주마등마냥 떠오른다.

  10여년전 상해독서회로부터 ‘영화황제’ 김염에 대해 특강을 해달라는 청탁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가 《동방명주를 빛낸 사람들》이라는 상해조선족명인시리즈를 책으로 펴내려고 인물 선정을 서두르던 때라 김염에 대한 자료수집도 어지간히 확보한 상태여서 그 청탁을 쾌히 받아들였다. 때마침 한국에 나가 있는 지인으로부터 《상하이 올드 데이스》라는 김염의 일대기를 다룬 책자를 부탁해 받은 즉시로 밑줄을 그어가며 탐독했다.

  그걸 바탕으로 상해에서는 내노라하는 엘리트들이 모인 모임에서 “‘영화황제’ 김염에 대해 말하다”라는 특강을 하게 되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특강을 했다기 보다는 《상하이 올드 데이스》를 읽고 독서감상을 발표했다고 함이 더 적중한 표현일 것이다.

  《상하이 올드 데이스》는 박규원이라는 한국에 사는 김염의 외손녀가 근 8년에 걸쳐 이미 고인이 된 ‘영화황제’ 김염의 발자취를 더듬어 저술한 논픽션이다. 한국에서는 상당한 평가를 받은 작품이지만 필자의 립장에서 볼 때 중국에서 ‘영화황제’가 된 조선인 배우 김염을 한국에서 태여났다는 리유만으로,그것도 태여나 2살에 중국에 건너와 줄곧 중국에서 71년을 살아 온 김염을 한국적인 시각에서 다루었다는 서운함이 뒤따랐다. 책속의 주인공 김염이 중국 100년 영화사를 대표하는 거물급 스타인데 비해 그 예술인의 리면에 가려져 있는 멋스러우면서도 미스터리한 일화나 스토리들을 중국적인 시각에서 발굴해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컸다. ‘영화황제’ 김염에 대해 거론하게 될 때 중국의 100년 영화사를 들먹이지 아니할 수 없고 그의 대표작에 대한 평가나 연기예술에 대한 평을 더더욱 소홀히 할 수 없다. 더더구나 그이와 동시대를 살면서 그이를 흠모해왔고 신봉해왔던 당년의 관객들이나 영화인, 예술인들의 그에 대한 평을 더더욱 무마할 수 없다. 이 부분은 아마도 상해에 정착해 사는 이중언어에 능한 조선족지인들이 보완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서 김염평전에 대한 집필을 구상하게 되였다.

  ‘영화황제’ 김염 평전 집필에 확실한 립지가 굳혀지자 집요한 자료추적에 달라붙었다. 우선 상해도서관에 찾아가 김염이 활보했던 1930년대-1940년대 영화잡지나 신문들을 하나하나 뒤지기 시작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자료들이 모아지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김염에 대해 흠모하고 숭배하게 되였다.

  그러는 와중에 김염의 미망인 진이가 고령임에도 중국영화계에서 최고의 배우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되였다. 달력에 “秦怡”라는 두 글자를 큼직하게 적어놓고 여러모로 그녀와의 만남을 시도했다.

  기성자료수집도 당연히 중요하겠지만 관건은 그녀가 김염에 대해 어느만큼 말문을 여는가에 따라 이 책의 값어치가 결정이 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녀가 김염의 두번째 부인으로 37년이라는 긴 려정을 함께 해왔다는 점도 중요하지만 ‘진이’라는 그 이름자 뒤에 따라 붙는 숱한 수식어들이 이 책의 품위를 결정짓는 척도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1992년 정월 초닷새날, 진이가 댁에서 맞이하는 칠순잔치에 상해영화텔레비죤회사(上海影视公司)로부터 특제한 케익이 배달되였다. 케익에는 “중국의 비너스 진이, 그 청춘 영원하라!”라는 글발이 새겨져 있었다. 비너스는 세인이 인정하는 미의 화신이고 아름다움의 대명사이다. 그만큼 진이는 중국영화계가 한결같이 인정하는 “4대 인기 스타(四大名旦)”의 한사람으로 대단한 미인이면서도 또 “위대한 어머니”로도 칭송받고 있다.

  1995년 8월, 중국영화연출예술학회는 진이에게“특수영예상”을 수여했다. 같은 해 10월에 세계영화탄생 100주년 및 중국영화 탄생 90주년을 맞아 국가방송텔레비죤총국은 진이에게 “중화영화계스타(中华影星)”라는 최고의 칭호를 수여하였다. 그때로부터 그녀에게는 “세기적인 명배우”라는 별호가 생겨났다. 상해배우극단 성립 50주년 기념모임에서는 “일대공신”이란 칭호를 수여했고 중국영화연출예술학회로부터 “종신성과상”을 받아안았다. 세계영화 탄생 110주년, 중국영화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에서는 “100년 100인 우수배우상”을 수상했고 국가인사부와 국가방송텔레비죤총국으로부터 “걸출한 영화예술인”이라는 칭호를 수여받았다.

  1930년대에 김염이 중국의 초대 ‘영화황제’였다면 해방 후에는 진이가 중국 100년 영화사의 절대적인 1인자로 각광받고 있으니 그에 걸맞는 ‘영화황후’인셈이다.

  세인이 인정하는 대스타로, 중국영화계의 절대적인 1인자로 그 다사다난했던 범상치 않은 인생을 살아 온 그녀에게는 전 남편과 낳은 딸 비비(斐斐)와 김염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김첩이 있었는데 그 금쪽같은 아들이 어려서부터 정신분렬증을 앓아 애간장도 많이 태웠으련만 그녀는 항상 밝은 마음가짐으로 세상과 대화했다. 그녀는 항상 배우로서의 초점과 어머니로서의 리지를 잃지 않았다. 그녀는 정신장애를 가진 아들에게만 참된 어머니가 되여준 것이 아니라 국내외 자선기구의 리더로 활약하면서 이 세상 모든 불우이웃과 아이들에게 사랑과 선의를 베푼 ‘위대한 어머니’로 살아왔다.

  이런 대단한 녀인을 필자가 여하를 불문하고 꼭 만나야 했었다. 그냥 스쳐지나듯이 잠간 만나 사진이나 한장 남기는 정도가 아니라 편하게 자주 만나 긴긴 대화를 풀어나가야 했었다. 그녀를 떠나 ‘영화황제’ 김염의 일대기를 쓸 수도 없거니와 막상 썼다 해도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을 것이 뻔했다. 김염 평전은 필자가 집필하겠지만 김염에 대한 준확한 평가는 미망인 진이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09년을 마감하면서 상해 생활 5년에 사람 만나는 일을 업으로 살아 온 필자의 인생도 한번쯤은 총화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그동안 만났던 민족의 자랑스러운 지인들, 말하자면 상해에서 반세기 이상 살아 온 지인들을 《동방명주를 빛낸 사람들》이라는 타이틀로 인물전기를 펴내기로 하였다. 책속에 고인이 된 ‘영화황제’ 김염도 어련히 한자리를 차지하게 되였다.

  인물시리즈로 보는 상해조선족발자취 《동방명주를 빛낸 사람들》이라는 책이 출판되여 상해에서 출판기념회를 가지기로 했다.

  누구를 내세워야 출판식이 출판식답게 치러질 지를 두고 여러모로 고민하다가 필자는 어벌이 크게 대스타 진이를 떠올렸다. 그때까지 만나본적조차 없는 그녀를 필자의 책 출판식에 귀빈으로 초대하려고 작심했던 것이다.

  달력에 출판기념식 일자하고 그 옆에 ‘秦怡’라는 커다란 이름자를 적어놓고 그녀를 만나려고 상해탄을 누비기 시작했다. 전국인대 대표를 3기나 련임한 9.3학사의 한분이 진이하고 안면이 있다고 해서 부탁했는데 물건너갔다. 하도 스케줄이 빽빽한 분이여서 만나뵙기 어렵다는 것이다.

  다시 고민을 하다가 필자가 쓴 책 속 세번째 주인공 현채미를 찾아뵙기로 했다. 현채미 화백은 98세 고령이지만 ‘우아함이 극치에 이른 녀인’이란 평을 받고 있는 원로화가이시다. 현채미 화백은 표준어로는 대화가 전혀 안되는데다가 가는귀가 어두워 펜으로 의사를 적어가면서 대화를 나누어야만 했다. 실은 취재도 이런 식으로 어렵게 했다.

  그런데 대화가 어려운데 비해 일은 술술 풀려나가기 시작했다. 필자의 책 출판식에 98세 고령의 화가가 발 벗고 나서주겠다는 것이다.

  필자는 렴치불문하고 그녀한테 근사한 회의장소를 섭외해 줄 것과 대스타 진이를 모셔올 수 있게끔 도와달라는 두가지 청탁을 드렸다. 그녀는 즉석에서 전화하였으며 우선 회의장소문제가 해결되였다. 말하자면 그녀가 관원으로 계시다가 퇴직한 상해시문사연구관에서 출판행사를 치르기로 합의를 보았다.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였다.

  이어서 화가가 다시 수화기를 들더니 륙씨 성을 가진 조카한테 전화를 건다. 급한 일이 있으니 당장 내집으로 뛰여오라고 말이다. 홍교공항 부근에 있는 조카가 30분이 안되여 헐레벌떡 도착했다. 화가할머니는 조카더러 필자를 앞세우고 곧장 장원민 선생을 찾아가서 진이와의 약속을 잡아보라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때를 두고 ‘소뿔은 단김에 빼랬다’고 하나 본다. 장원민은 당년에 상해영화촬영소 소장을 지냈었고 그 당시에는 상해시영화인협회 부주석, 상해시영화텔레비죤기술학회 부주석이란 직분을 가진 분이셨다. 필자가 금방 출판된 책자를 장원민 선생에게 내보이며 찾아 온 사정이야기를 했더니 당장에서 진이한테 전화를 해서 3일후 집으로 찾아오라는 약속을 잡아주었다.

  3일 후 장원민 주석을 따라 대스타 진이의 사저를 방문하게 되였다. 형산로와 오흥로가 교차되는 오동나무숲이 우거진 번화가 아빠트단지 9층에 자리한 진이의 저택은 스타가 사는 집으로는 너무 평범했다. 정신분렬증을 앓던 아들이 몇년전에 사망하다보니 집에는 90대를 넘긴 언니와 도우미 아줌마만 있었다. 과연 88세 고령의 진이는 할머니가 아니였다. 하얀 금발에 너무 잘 어울리는 하얀 피부의 동안, 거기에 깔끔하면서도 지적임을 더해주는 가는테 안경너머로 흘러나오는 그윽한 눈빛, 그냥 집안에서 입는 평상복차림으로 편하게 양털세타를 입고 있었는데 참으로 절세가인이 따로 없는 대단한 미모의 녀인이였다.

  진이는 필자가 넘겨주는 책을 받아 몇장절 펼쳐보고나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 가방끈이 짧아서 좋은 책을 선물받았는데 읽을 수가 없네요. 하지만 이것이 저의 남편 이름자 ‘김염’이라는 건 어림짐작으로라도 알만하네요. 호호호.”

  역시 미인은 매너부터가 달랐다. 그러면서 책을 너무 품위 있게 잘 만들었다고 칭찬해주었다. 김염을 쓴 페지를 한장한장 번져보면서 옛추억이 되살아났는지 조선민족은 참으로 개명한 민족이라는 얘기를 곱씹었다. 거기다 생전에 김염도 대단히 총명했고 또 손재주가 이만저만이 아니였다는 자랑도 곁들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마침 드라마촬영이 잡혀서 그때 쯤 소흥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되도록이면 하루 미루어 가더라도 출판식에는 꼭 참석하도록 스케줄을 잡아보겠다고 했다. 어쩐지 느낌으로 그녀가 꼭 참석할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2009년 12월 12일, 과연 그날 손꼽아 기다리던 진이가 대회장에 나타났다. 대스타 진이는 연변인민출판사 상해지사의 초청을 받고 그 자리에 어련히 참석하여 한자리를 빛냈어야 했을 고인이 된 남편 김염, ‘영화황제’ 김염의 빈자리를 대신해 참석했던 것이다.

  난리가 났다. 다들 회의는 뒤전이고 진이와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고 진이의 일거일동에 눈길을 떼지 못한다.

  이윽고 모임의 핵심인물인 진이한테 마이크가 돌아갔다. 그녀는 많이 격동되여 조선민족은 아주 우수하고 개명하고 위대한 민족이라고 높이 치하하고나서 당년에 ‘영화황제’ 김염이 조선위문단으로 평양에 다녀 온 이야기도 곁들였다. 그러면서 김염은 일편단심 영화만을 사랑해 온 직업의식이 투철한 배우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 혼란한 시기에도 좌익의 켠에 굳건히 서서 초점을 잃은 적이 한번도 없었다고 토로했다.

  뒤이어 싸인을 요청하는 팬들이 그녀의 주위를 둘러쌌다. 그날 참석자들은 진이 싸인이 담긴 책을 받아안고 무한한 행복감에 도취되였다.

이렇게 진이와의 뜻깊은 만남이 이루어지다보니 그날 이후로 필자는 대스타 진이댁에 자주 출입할 수 있는 ‘특허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였다. 그처럼 바쁜 와중에도 그녀는 나를 여러번 만나주었다. 또 만날적마다 김염에 대해 새로운 얘기를 들려주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 많이 감동되였다. 진이는 김염에 대해 사도혜민이나 류경, 손유 등 영화인들이 쓴 추모문장도 여러편 복사해주었다.



  《중국영화황제 김염》평전 출판기념모임

  필자가 몇년간 김염에 대해 자료수집을 열심히 해온 과정에 대해 낱낱이 얘기를 올리자 큰 감동을 받은 그녀는 2010년이 김염 탄생 100주년으로 상해영화인협회에서 특별한 기념행사가 있을 것이니 출판도 되도록이면 그 기회에 맞춰야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얘기를 했다.

  《중국영화황제 김염》은 이런 피타는 노력을 거쳐 드디여 빛을 보았다. 집필활동을 하는 사이 도 조직했고 그와 때를 같이 하여 김염연구회도 발족시켰다.

  2011년 5월 29일 오후 3시경에 상해홍교문화센터에서 두번째로 대스타 진이를 모신가운데 김염 평전 출판기념모임이 성황리에 거행되였다.

  행운스러운 것은 출판행사를 이틀 앞둔 5월 27일에 상해시 민항구 포강진 옛도읍(古镇)에서 개관식을 거행한다는 것이다. 살아있는 사람의 예술관을 개관한다는 게 어쩌면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그만큼 진이는 중국영화사에서 대단한 인물로 평가받는다는 얘기가 되겠다. 중국 최고의 배우들이 대거 모인 그 어마어마한 개관식에 필자가 특별귀빈으로 초대되여 2일후에 출판행사를 갖게 될 책자 《중국영화황제 김염》 2권을 진이예술관에 손수 기증하는 영광을 지녔다.

  《중국영화황제 김염》평전 출판기념모임은 단순한 책 출판파티가 아닌 현지 각계 인사들과 조선족, 한국인 수백명이 모여 우리 민족 우상의 넋을 기리고 우리 민족 명인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는 뜻깊은 만남의 장이 되였다.

  진이는 그날도 “조선족은 참으로 위대한 민족”이라는 말을 곱씹으면서 다소 흥분된 심정으로 당년의 ‘영화황제’ 김염에 대해서 절찬을 아끼지 않았다.

  책 출판에 앞서 그이가 써준 ‘변함 없는 웅대한 뜻 천금보다 값지여라’라는 제사는 그가 김염의 영화인생에 내린 가장 정확한 평가라고 필자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김염 평전 집필과 출판에 물심량면으로 도움을 주어 늘 고마웠는데 최근년간 상해를 떠나 연변에 와 있다가 지난해 퇴직까지 하다보니 언제 한번 찾아뵈야 한다는 생각만 하던 중 이런 부고를 접하게 되여 마음이 더없이 짠하다. 하지만 한평생을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 온 인기 스타로 백세를 누리다 가셨으니 여한이 없을 것이다. 부디 하늘나라에서 다시 ‘영화황제’ 남편과 먼저 간 아드님을 만나 더 멋진 새로운 삶을 사시기를 비는 바이다.

  출처:중국민족 조선문판

  편집:김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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