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후나大 수석코치 김동규씨 맨발로 훈련하는 모습에 충격
6개월 만에 우승팀 만들어 상금 1000만원 현지에 기부
15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50회 대한민국체육상 시상식. 양학선 런던올림픽 체조 금메달리스트(경기상·어머니 대리 참석), 정훈 전 유도 대표팀 감독(지도상) 등 7명의 수상자 사이에 낯선 얼굴이 있었다. 공로상을 받은 김동규(31) 스리랑카 루후나대학교 배구 수석코치(한국국제협력단 봉사단원)다.
지금까지 주로 종목별 협회 회장이나 대학 총장 등이 받아온 공로상을 무명의 젊은 지도자가 받은 것은 이례적이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김 코치가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뛰며 '스포츠를 통한 국위 선양'의 새로운 모델을 정립한 공로를 심사위원들이 높이 평가했다"고 밝혔다.
작년 2월 스리랑카 마타라 지역의 루후나대학에 부임한 김 코치는 6개월 만에 팀을 스리랑카 대학선수권대회 정상에 올려놨다. 올해 열린 스리랑카 전국체전에서도 우승했다. 배구가 최고 인기 스포츠인 스리랑카에서 다른 팀 코치들까지 그를 찾아와 지도법을 배워간다고 한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배구를 시작한 김 코치는 국가대표를 꿈꿨으나 선수로서 성공하지 못했다. 체육 특기생으로 체대에 진학하는 데 실패하고 전문대(자동차타이어공업과)에 들어갔다. 졸업 후엔 충남 연기군청(현 세종시청) 산업과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며 퇴근 후 지역 주민들에게 배구를 가르쳤다. 배구심판자격증, 배구기술지도자격증, 경기지도자자격증 등을 따낸 그는 "누구보다 배구를 좋아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에게 배구를 즐겁게 가르쳐주고 싶었다"고 했다.
김동규(가운데 흰 옷) 스리랑카 루후나대학교 배구팀 수석코치가 지난여름 KOICA로부터 지원받은 새 유니폼을 입고 선수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김 코치는 15일 대한민국체육상 공로상을 받았다. /KOICA 제공
스리랑카 봉사단원을 구한다는 공고를 우연히 접한 김 코치는 '배구로 승부를 걸어보겠다'는 각오로 지원했다. 그러나 막상 도착해서는 충격에 빠졌다. 공 3개로 30명의 선수가 훈련 중이었고 그나마도 운동화가 없어 맨발이었다.
김 코치는 한국의 배구 선후배들에게 "쓰다 버리는 유니폼과 운동화가 있으면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한국 프로팀 경기 동영상을 100개 이상 마련해 선수들에게 틈나는 대로 보여줬다. 기숙사 식당에서 영양이 풍부한 음식을 먹지 못하는 선수들을 위해 한 달에 한 번은 사비를 털어 회식을 했다. 선수들이 큰 대회를 앞두고 긴장해있을 땐 한국 영화 '국가대표'를 함께 보며 열악한 환경의 선수들이 꿈을 이루는 이야기에 다 같이 눈물을 쏟았다.
김 코치는 "내가 주목받는 선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오히려 지도자로서 내 방식을 고집하지 않고 선수 개개인을 존중할 수 있었다"며 "형, 삼촌, 친구처럼 다가가 충분히 대화하고 서로 의논하면서 선수 각자의 장점을 살려주려고 애썼다"고 했다.
김 코치가 지역의 유명 인사가 되면서 대부분 어업에 종사하는 가난한 주민들이 그에게 먹을 것을 챙겨줄 만큼 가까워졌다. 고마움에 보답할 길을 찾던 그는 2004년 쓰나미 피해를 봤던 이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컴퓨터, 한국어 등을 무료 교육하는 시설 건립에 나섰다. 군청에서 일해본 경험을 살려 현지 관리들을 일일이 설득해가며 폐교를 리모델링하는 공사를 진행 중이다.
김 코치는 "지역 주민들이 나를 통해 한국을 알게 되면서 한국에 가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며 "공로상 상금 1000만원은 열악한 환경에서 훈련하는 스리랑카 고등학교 배구 선수들을 위해 쓰고 싶다"고 했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