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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키스가 끝나자마자 결혼, 결혼 타령이라니

[기타] | 발행시간: 2014.07.12일 10:35

[한겨레] [토요판] 연애

현실남 대 이상녀

▶ 결혼 적령기라는 말이 있지요. 여성은 20대 중후반, 남성은 30대 초반인 결혼 적령기에 진입하면서 때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결혼을 떼놓고 연애만 할 수 없게 되는 순간을 맞습니다. 결혼은 충분히 사랑하고 난 뒤에 자연스럽게 결정할 문제라는 한 여자와 첫 키스를 마치자마자 치밀하게 결혼 준비에 착수한 결혼 적령기의 한 남자가 있습니다. 연애와 결혼이라는 간극 앞에서 두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난 2014년 9월쯤이 좋겠어. 그 이후엔 직장도 옮겨야 하고 적응하느라 결혼 준비할 시간 내기가 어려울 거야. 한 명이라도 시간이 넉넉할 때 열심히 준비해서 결혼하면 좋잖아? 내가 잘할게. 자기가 바쁘니까.”

만난 지 100일쯤 지났을 때 그가 말했다. 어른들의 소개로 만나 ‘연애의 정석’을 그대로 따랐던 우리. 첫 만남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고 세번째 만남에선 영화를 봤고 네번째 만났을 때 사귀기로 했다. 사귄 지 한달쯤 지났을 땐 집 앞 가로등 아래에서 첫 키스를 했다. 첫 키스라는 세리머니가 끝나자마자 그는 자신의 결혼 계획을 하나하나 꺼내놓기 시작했다. “선 자리에 나오면서 결혼 생각이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어?” 그는 당연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는 내가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일들을 모두 맞춰줄 만큼 친절한 성품이었다. 하지만 결혼이란 제도 앞에서는 단호했다. 시도 때도 없이 ‘결혼’이란 단어를 꺼냈다. “결혼하면 어느 동네에 살고 싶어?” 그는 데이트를 하다 이런 질문을 했다. 깊이 고민해본 적이 없던 나는 부모님 집과 가까운 근처 지역을 몇 개 대충 둘러댔다. 다음날부터 그는 인터넷 부동산 사이트를 뒤져가며 신혼집 구경을 시작했다. 몇 평짜리 어떤 아파트는 얼마고, 방이 몇 개면 얼마라며 잠자기 전 마지막 통화에서도 내게 보고를 해댔다. 조금 더 섬뜩했던 건 교외로 드라이브를 가던 날이었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그의 옆에 공책이 있어 넘겨 봤더니 ‘신혼여행 가기 좋은 곳’ 리스트가 있었다. 가고 싶은 신혼여행지를 단순히 적어놓은 게 아니었다. 비행기 요금부터 풀빌라, 리조트, 호텔 가격 등을 비교해뒀다. 식당 이름까지 빼곡히 적어 놓은 그 공책을 훑어보면서 어쩌면 그가 나 아닌 누군가와 이미 결혼을 준비한 적이 있는 건 아닐까, 해괴망측한 생각까지 하게 됐다.

‘결혼은 죽을 듯 사랑한 뒤에…’

진정한 연애를 꿈꿨던 나는

치밀한 결혼계획을 세워가던

그에게 이별을 통고해 버렸다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음을

서른이 다가오면서 깨닫는다

사랑에 속아 결혼하려던 나보다

어쩌면 그가 고단수였을지도

“오빠가 원하는 게 결혼인지, 아니면 나인지 모르겠어.” 내가 이런 말을 꺼내면 그는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무하고나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 사랑하니까 결혼하고 싶지.” 하지만 내 눈에 그는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사람과 만나 결혼하고 싶은 남자처럼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의 ‘적당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에겐 나를 만나기 전부터 정해진 ‘인생 계획표’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전문직인 그는 자신과 같은 직종은 보통 얼마를 벌 수 있다는 얘기와 함께 노후까지 큰 걱정이 없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했다. 나는 그런 말을 듣는 게 어색하고 편치 않았다.

당시 우리 두 사람은 결혼 적령기에 있었다. 30대 초반의 그는 결혼을 하고 싶었고 20대 후반의 나는 연애를 하고 싶었다. 나에겐 결혼보다 더 중요한 고민거리가 많았다. 직장에서 자리도 잡아야 하고, 때론 다른 직장에 눈길도 갔다. 공부를 더 해보고 싶단 생각도 놓지 못했다. 그런데 결혼이라니. 열심히 연애하고 깊은 사랑을 하다가 인생에 대한 계획이 두 사람 사이에서 합의됐을 때쯤 고민해도 늦지 않을 거라 여겼다. 결혼이란 두 사람이 서로를 죽을 듯이 사랑한 후에 결정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그게 그렇게 큰 욕심이었을까.

서로를 알아가는 그때, 나는 그와 함께하는 모든 일이 결국 벗어날 수 없고, 무를 수 없으며, 책임져야 하는 결혼이란 결과로 다가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쯤에서 그만두지 않으면 어느 날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장에 깔린 하얀 ‘버진 로드’를 걷게 될 것 같았다. 결혼을 향한 그의 계획이 점점 치밀해져 가면서 우리 대화도 겉돌기 시작했다. 결국 만난 지 8개월쯤 지나 그에게 이별을 고했다.

이별은 구차하지 않고 깔끔했다. 한참 동안 호수공원을 함께 걸으면서 지금 결혼하고 싶지 않은 이유를 백가지쯤 댔다. 그는 말이 없었다. 마지막 그의 모습은 또다른 ‘적당한’ 사람을 찾아가면 된다는 듯 담담했다. 연애와 결혼이란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우리는 서로를 자연스럽게 놓았다. 네 살 차이, 큰 키에 나쁘지 않은 외모, 같은 종교, 안정적인 직업. 우리는 서로에게 ‘적당한’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그와의 이별을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그는 결혼이란 단계로 다가가며 만족감을 느끼고 그 과정상의 이벤트를 충족해 갔지만 결정적으로 그와 나 사이에 충만한 사랑이 있었는지 되돌아보면 그렇지 않았다.

이별의 책임은 두 사람 모두에게 있기에 헤어지며 그의 행복을 진정으로 빌었다. 그와 이별하고 6개월쯤 지났을 때 작가 알랭 드 보통의 <사랑의 기초>를 다시 읽은 적이 있다. “현대사회는 낭만적 사랑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한 유일한 조건이라는 아이디어를 조장하지만 원래 결혼은 그 기원에서부터 계급과 제도의 산물이었다.” 이 구절을 읽을 때 우리 두 사람이 떠올랐다. 그를 비정상적이라 치부했던 것도 늦었지만 마음 깊이 사과하면서.

그와 사귀고 헤어질 당시 내가 가진 생각이 틀렸을 수 있음을 서른에 다가서는 지금, 깨닫고 있다. 미친 듯이 사랑해서 결혼해도 틀어지고 어긋나고 헤어진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알고 싶지 않았다. 죽을 듯 사랑해서 결혼하고 그 사랑이 식어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것과 적당한 사람과 적당히 사랑하고 결혼해 그 온도를 유지해가는 것. 사랑을 수반한 결혼과 제도로서의 결혼. 어떤 것이 더 맞고 고결하다고 저울질할 수 있을까.

내가 바랐던 것은 사랑 한 가지고 지금도 그 마음이 변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자신이 없어진다. 결혼, 이처럼 쉬운 게 있을까 싶으면서도 이처럼 어려운 것도 없다. 영원할 것만 같은 사랑에 속아 결혼을 하려는 나보다 어쩌면 그가 고단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결혼 적령기 여자의 연애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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