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럴드 크로토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교수가 탄소 60개가 축구공 모양의 구형 분자를 이룬 ‘풀러렌’을 설명하며 축구공 그림을 발로 차는 동작을 하고 있다. | 한국과학기술 기획평가원 제공
ㆍ노벨상 수상자들이 그린 그림 전시… 14일부터 경기 과천과학관
노벨상 중 과학 분야의 3가지 상인 생리의학·물리학·화학상 수상자가 지난주 발표됐다.
노벨상 수상자들의 업적과 유품 등을 전시하는 스웨덴의 노벨박물관 관장인 올로르 아멜린은 노벨상 수상 비결에 “헌신적이고 부단한 노력도 중요하지만 노벨상 수상처럼 어려운 일을 해내려면 재미가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아멜린 관장은 “이제까지 만난 수많은 노벨상 수상자들은 항상 발견의 즐거움과 기쁨에 대해 말했다”고 밝혔다.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인류 과학의 진보를 이끌었다고 평가받는 노벨상 수상자가 되려면 창의적인 연구를 해야 하는데 그 원천이 재미와 즐거움이라는 말이다.
노벨상 수상자들의 유쾌함과 창의력을 엿볼 수 있는 전시회가 한국에서 열린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은 경기 과천과학관에서 14일부터 11월23일까지 노벨박물관의 협조를 얻어 노벨상 수상자들이 연구 성과를 직접 그려보고, 함께 찍은 사진을 전시하는 ‘노벨상 수상자와 함께하는 아이디어 스케치 사진전’을 개최한다. 그 가운데 사진 3점이 주목할 만하다.
아론 시카노버 이스라엘 테크니온 공대 교수는 2004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단백질이 분해되는 과정을 밝혀내서다. 대부분의 과학자가 단백질 생성에 관심을 갖던 때, 그는 단백질이 어떻게 소멸되는지를 연구했다. 알츠하이머병이나 노화처럼 특정 단백질이 원인이 되는 병의 치료법을 찾는 데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시카노버 교수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어떻게 표현했을까. 그는 “단백질 분해 과정을 종이 한 장에 정적으로 담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즉석에서 과학 공연을 선보였다. 연구 성과에 대해 영어로 길게 적은 뒤 물컵에 물을 따르는 포즈를 취했다. 단백질이 분해될 때 반드시 물이 필요함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분수 양자 홀 효과’를 설명한 그림을 입에 문 로버트 러플린 전 카이스트 총장. | 한국과학기술 기획평가원 제공
해럴드 크로토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교수와 로버트 컬 미국 라이스대 명예교수는 탄소가 60개 모여 축구공 모양의 구형 분자를 이룬 ‘풀러렌’을 발견해 1996년 노벨 화학상을 공동수상했다. 풀러렌은 안쪽에 약물을 담아 신약을 만들어낼 수 있다.
크로토 교수는 평소 운동을 좋아하고 유쾌한 성격답게 축구공 모양의 풀러렌을 직접 그린 뒤 익살스럽게 그림을 발로 차는 동작을 취했다.
컬 교수는 풀러렌이라고 이름을 짓게 된 사연을 소개했다. 원래 ‘사커린’이라고 이름을 지으려 했지만 영국 출신 크로토 교수가 영국에서는 축구를 ‘사커(soccer)’가 아닌 ‘풋볼(football)’이라 부른다는 이유로 ‘사커린’이란 단어를 반대했다. 결국 이들은 풀러렌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생각해내야 했다.
로버트 러플린 전 카이스트 총장은 1982년 ‘분수 양자 홀 효과’를 이론적으로 입증한 공로로, 1998년 대니얼 추이(프린스턴대), 호르스트 슈퇴르머(콜롬비아대) 교수와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수상했다. 이는 ‘양자유체’란 강한 자기장과 극저온(영하 273도 정도)에서 전자들이 액체처럼 운동하면서 전기저항이 분수값을 갖는 상태를 말한다. 그는 알록달록한 그림을 입에 문 채 촬영하는 익살스러운 모습을 보여줬다.
<목정민 기자 mok@kyunghyang.com>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