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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공동선언 이후 北에서 도대체 무슨 일 벌어졌나?

[온바오] | 발행시간: 2015.08.10일 14:30

▲ [자료사진] 이희호 여사.

[北 前고위간부 특별기고]

김정일, “남조선 아이들 얼빠진 ‘호갱’이” 취급해

[데일리 엔케이 ㅣ 이재경(북한 군수공업 관련 고위직 출신) ] 김대중 前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 일행이 3박4일(8.5~8) 간의 방북 일정을 마치고 8일 오후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북한 김정은의 초청으로 방북했던 李여사 일행이 당초 예상과 기대와는 달리 김정은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다.

李여사는 공항 입국장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6·15 정신을 기리며 사명감을 가지고 모든 일정을 소화했다”면서 “다음 세대에 분단의 아픔을 물려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생각했다”고 방북소감을 밝혔다. 김대중평화센터도 귀환 즈음해 낸 보도자료를 통해 “이 이사장은 북측 인사들과 6·15 공동선언 실천의지 등 많은 대화를 나눴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정은은 말할 것도 없고 맹경일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 외에 다른 고위 인사와도 접촉하지 못함으로써 돌아오는 李여사 일행의 발걸음이 무겁고 우울했을 것이라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李여사 일행은 방북기간 평양산원과 유선종양연구소, 옥류아동병원, 평양 소재의 육아원과 애육원, 양로원을 차례로 방문했다. 또 김일성·김정일이 외국 사절 등으로부터 받은 선물을 전시해 놓은 묘향산 국제친선박람관을 방문해 방명록에 “6·15 정신을 기리고 실천하자”는 서명을 남겼다.

이번 李여사 일행의 방북은 그들 스스로 누차 밝히고 있는 바대로 ‘6·15 공동선언 실천’에 방점이 찍혀 있다. ‘6·15 공동선언 실천’을 통해 분단의 아픔을 치유하고 통일로 나아가자는 것이 이번 방북의 참뜻이라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북한당국과 햇볕정책 수행자·지지자들이 합창이라도 하듯 읊어대는 ‘6·15 공동선언’의 실체와 본질이 무엇인지, 또 6·15 공동선언만 실천하면 정말로 분단의 아픔을 치유하고 통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6·15 공동선언’ 실체와 본질 무엇인가

먼저 ‘6·15 공동선언’의 산파노릇을 한 임동원의 회고록 ‘피스 메이커’에 ‘6·15 공동선언’의 정체와 본질이 잘 드러나 있다. 임동원은 이 책에서 6·15 공동선언 채택으로 남과 북이 ‘평화공존’의 시대를 열어놓았다고 자화자찬하면서 ‘평화통일’ 문제에 대해서는 후대들에게 맡긴다고 했다. 그러니까 ‘6·15 공동선언’은 남북한 사이의 ‘평화공존’을 위한 선언이지, ‘평화통일’을 위한 선언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두 가지 의문이 생긴다. 하나는 ‘6·15 공동선언’ 채택으로 과연 남북한 사이에 평화공존이 실현됐는가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6·15 공동선언’의 깃발만 높이 들면 후대들에게 평화통일을 선사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먼저 전자와 관련해 ‘6·15 공동선언’ 채택으로 남북한 사이에 평화공존이 실현됐다고 믿는 국민이 얼마나 있을지 묻고 싶다. ‘6·15 공동선언’이 채택된 2000년 6월 이후 북한은 가공할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해 왔다. 또 남쪽을 향해서는 이전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도발과 만행을 저질러왔다. 제2연평해전(2002.6.29)과 천안함 폭침(2010.3.26), 연평도 포격(2010.11.23) 등이 대표적 사례다. ‘6·15 공동선언’ 채택이 가져온 가시적 ‘성과’가 있었다면 그것은 김대중 前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는 사실뿐이다.

‘6·15 공동선언’을 통한 남북한 평화공존 운운에 대해 한 가지 더 언급할 것이 있다. 이 선언이 지향하고 있는 ‘평화’라는 것이 과연 누구와 누구 사이의 평화인가 하는 것이다. 평화공존을 하든, 평화통일을 하든 그 주체는 남북한 주민을 포함한 7천만 겨레여야 한다는데 이의가 있을 수 없다.

‘6·15선언’, 김씨 일가와 南햇볕지자파 사이의 평화

그러나 ‘6·15 공동선언’이 말하는 ‘평화’는 남북한 주민 사이의 평화가 아니라 김일성 일가와 남쪽 사이의 평화에 그치고 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김일성 일가와 남쪽 햇볕정책 지지파 사이의 평화라는 것이 옳다. 한마디로 ‘6·15 공동선언’은 2천만 북녘 겨레의 의지와 소망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이 선언이 채택된 이후에 숱한 도발과 만행이 자행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북쪽의 김일성 세습정권과 ‘평화’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였음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사실이 이럴진대, ‘6·15 공동선언’을 통해 평화공존을 이룩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평화통일을 이어간다는 주장 또한 망상이나 다름없다. 안팎으로 사면초가에 직면한 김일성 세습정권이 바라마지 않는 것은 자신들의 세습정권을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그것을 그들은 ‘평화공존’ 또는 ‘상호 체제인정’이라고 표현한다.

2천만 북녘동포들을 노예와 인질로 삼아 호의호식하는 조폭정권, 한줌도 안 되는 반역정권·패륜세력과 손잡고 그들의 존재를 인정해 주고 ‘평화적’으로 공존하겠다는 것이 바로 ‘6·15 공동선언’의 정체이고 본질이다. 이것도 부족해 이 선언을 바탕으로 분단의 아픔을 치유하고 통일의 길을 열어나가겠단다. 견강부회(牽强附會)라도 이런 견강부회가 있을 수 없다.

기왕 얘기가 나왔으니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 ‘6·15 공동선언’이 채택된 이후 북한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하는 것이다. ‘6·15 공동선언’이 채택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해외에서 일하는 북한 사람이나 해외에 출장 나가는 북한 사람은 남한 사람과 만나게 될 경우, 영사국의 지침에 따라 자연스럽게 접촉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남한 사람과 대면하게 될 때 자연스럽게 대화도 나누고, 상대가 원하면 사진도 찍고 식사도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밥값도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부담시키지 말라면서 평양으로 돌아오면 당에서 밥값을 정산해주도록 했다.

그런데 ‘6·15 공동선언’이 채택된 이후 이런 지침이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다. 평소 해외에 나가 일하는 주재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출장 나가는 사람들까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일체 남한 사람과의 접촉을 불허한 것이다. 부득이하게 남한 사람들과 조우하게 될 경우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접촉을 피하라는 것이었다. 다만 대남분야에 종사하는 특수 요원들만은 예외였다.

이것뿐만 아니었다. 남한 상품에 대한 통제도 이전에 비해 훨씬 강화되었다. 공식적으로 남한 상품이 북으로 들어가는 것을 완전히 차단해 버린 것이다. 남한에서 생산된 물품이 구호물자나 지원물품 형식으로 들어오는 경우에도 ‘적지물자’(敵地物資)라 하여 철저히 대남부서인 통일전선부에서 관리, 처리하도록 했다. 그 덕분에 통일전선부가 ‘재미’를 보긴 했지만 말이다.

비슷한 사례가 금강산에서도 펼쳐졌다. 남한의 민간인들이 금강산 관광을 시작한 1998년 11월 이후 북한 주민의 금강산 출입이 완전 봉쇄된 것이다. 종전에는 북한 주민들이 ‘견학’ 등의 명목으로 비교적 편하게 금강산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금강산 관광객들과 북한 주민이 마주치는 것을 꺼린 북한당국이 이를 차단해 버린 것이다. 이로 인해 알게 모르게 북한 주민들의 불만이 고조되었다.

‘6·15 공동선언’이 채택된 이후 남한에서 남북한 사이에 평화가 왔다고 들떠 있을 때 북한은 내부적으로 착실히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했다. 또 ‘평화’와 ‘교류·협력’의 미명 아래 남쪽에서 수많은 돈과 물자가 북으로 들어가자 북한당국은 돈은 돈대로 챙기고 물자는 다시 김정일의 ‘선물’로 포장해 인민들에게 ‘장군님의 인덕’을 과시했다. 남한은 돈과 물자로 북쪽을 섬기며 애써 ‘평화가 왔다’고 자위했고, 그런 남쪽을 북한당국은 얼빠진 ‘호갱’(어수룩한 ‘호구’라는 의미) 취급을 했다.

김정일, ‘6·15선언’ 이후 南사상적 해이에 쾌재

김정일은 2005년 초 당정군 간부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서울 불바다’라는 말을 더 이상 하지 말라. 앞으로 다 우리 것이 될 텐데…” 도대체 김정일의 이런 자신감이 어디에서 왔을까? 그 배경을 설명하자면 얘기가 길어지겠지만 간단히 ‘6·15 공동선언’이후 남한에서 벌어진 사상적 해이로 압축할 수 있다. 김정일이 보기에도 남한은 사실상 ‘적화’된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개판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김정일 혼자만의 망상이자 개꿈에 불과했다. 겉으로 드러난 어수선하고 헝클어진 남한의 모습만 보았지, 밑바닥에 면면히 흐르는 국민들의 튼튼한 안보의식과 눈높이를 보지 못한 탓이다.

이제 김정일 시대가 막을 내리고 김정은 시대가 시작되었다. 바야흐로 전무후무한 ‘사회주의 3대 세습’의 막장드라마가 펼쳐지고 있다. 이 철없는 애송이는 93세의 전직 대통령 부인을 안방에 초청해 놓고 뒷짐만 지고 있다가 그냥 돌려보내는 ‘무례’를 저질렀다. 이것이 바로 그 잘난 ‘최고 존엄’의 행보이고, ‘위대한 영도자’의 처신이다. 소위 말하는 ‘김정은 스타일’이다.우리는 이 철부지와, 그의 핏속에 흐르는 유전자를, 李여사 일행의 방북을 계기로 다시금 되돌아봐야 한다. 이 땅에서 평화와 통일은 조폭혈통·철딱서니정권과 잘 지내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상기하자. 그것이 바로 평화와 통일로 가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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