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판사의 재임용 제도가 논란이 되는 나라는 한국을 빼면 일본 정도다. 미국·영국이나 독일·프랑스는 종신제와 정년제를 채택하고 있어 재임용 과정이 없다.
미국은 판사들이 선거 절차를 통해 종신이거나 정년을 보장받고 일한다. 주법원 판사는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는 게 일반적이다. 대부분은 당적을 갖고 있다. 일부는 주지사나 주의회 임명을 거쳐 뽑는다. 임기는 따로 없고 보통 70세가 정년이다. 연방법원 판사는 대통령의 지명과 상원 인준으로 법관이 된다. 미국 헌법 3조1항이 보장하는 종신직이다.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9명의 미국연방대법원 대법관도 종신직이다.
영국도 대법관은 종신이고, 일반 법관은 정년이 70세다. 독일에서는 3년의 예비법관을 거쳐 5년 안에 종신법관 심사를 받는다. 종신법관이 되지 못하면 해임된다. 판사와 검사를 합쳐 사법관으로 부르는 프랑스는 최고사법관회의의 제청을 받아 대통령이 법관을 임명한다. 8000여명 사법관 대부분이 정년 65세를 채운다.
종신직을 도입한 국가들은 판사 탄핵 제도를 두고 있지만 실제 탄핵되는 경우는 드물다. 미국에서 1789년 헌법이 만들어진 뒤 탄핵되거나 탄핵 직전에 사임한 연방 법관은 모두 15명에 불과하다. 미국에서는 2010년에 루이지애나주 동부법원 토머스 포티어스 판사가 변호사에게 뇌물을 받은 혐의로 탄핵된 게 마지막이다.
일본은 사정이 한국과 아주 비슷하다. 일본은 재판소법 40조에 따라 법관은 임기 10년에 연임이 가능하다. 임면(任免)권자는 일왕이다. 2차대전 직후에는 주로 정치적 이유로 오키나와 같은 오지에 발령 내거나 심한 경우 재임용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근무 태도 등을 이유로 재임용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최고재판소에서 재임용 심사를 통보 받으면 대부분 사표를 내기 때문에 정확한 탈락 숫자는 드러나지 않는다.
법관 평가제도를 객관화해야 한다는 여론에 따라 일본은 2004년 최고재판소 사무총국에서 '재판관의 인사평가에 관한 규칙'을 마련했다. 이 과정에 변호사단체 등 외부 인사도 참여한다. 법관 본인이 열람하거나 불복하는 절차도 따로 마련됐다. 복잡한 절차를 거쳐 평가결과가 확정되면 본인에게 평가서 사본을 준다. 이렇게 촘촘한 절차를 마련했지만 여전히 애매한 면이 많다는 불만이 나온다.
김철민 일본변호사는 "일본도 인사평가에 바탕을 둔 경우는 논란도 있지만 명백한 문제가 있는 경우에는 재임용이 안된다"고 말했다. 최근 요코하마의 재판소에서 석 줄짜리 판결문을 쓴 것이 문제 돼 법원을 떠난 판사도 있다.
<이범준 기자 seirot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