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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노래》28. 집을 뛰쳐나오다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1.02.18일 10:29
지옥같은 집을 뛰쳐나오기는 했는데 갈데가 없었다. 그때 내 나이는 벌써 26살, 시집가야 할 나이인데 일자리도 구하지 못하고 공부를 한답시고 집에서 불화만 일으키니 부모인들 좋아할리 있겠는가?


생각던끝에 나는 연길 이모네 집으로 갔다. 나의 이모와 이모부는 모두 연변대학의 교수인데 슬하에 자식 넷을 두고있었다. 모두가 어른 식솔들이라 한구들 넘칠지경인데 그중 신체가 허약하여 늘 약을 달여먹고있는 환자도 있었다. 나의 이모와 이모부는 환자의 병시중을 드느라고 얼마나 바쁜지 모른다. 그런데 나까지 가서 페를 끼쳐야 하니 미안하기 그지 없다.


렴치를 불구하고 이모네 집에 도착한 나는 어떻게 하면 그들의 부담을 덜수 있겠는가를 궁리해보았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내가 할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던차 나의 동생이 뜨개질을 배워달라고 요청을 한다. 공부를 으뜸으로 잘하던 이 동생은 병에 걸려서부터 아무 일도 할수 없었다. 말이 배우지 대부분은 시작해놓고 완성하지 못한다.


나는 낮에는 공부를 하고 저녁에는 걔가 뜨다만 뜨개질을 부리나케 뜨군 하였다. 어떤 때에는 밤 11시까지 뜨개를 떴다. 한자세로 너무 오래 앉아있으니 목을 돌릴수조차 없었다. 그래도 이모부와 이모님이 나를 받아주셔서 고마웠고 또 이렇게라도 그들을 위해 뭘 할수 있다는것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기뻤는지 모른다.


이모네 집에서 두달가량 공부를 하고 여름방학이 되자 나는 학교에 가 시험을 추리고 집중수업도 받았다.


환자가 있는 이모네 집에서 오래 머물수 없는 나는 또 갈데가 없게 되였다. 이때 이모네 승학공부를 하던 두동생도 집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방학에 큰이모집으로 간단다.

큰이모네집은 화룡시 한 시골에 있었다. 자식들은 모두 외지에 가 있으니 조용하고 공부하기 딱 좋을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따라가기로 하였다. 언녕 독립을 해야 할 나이에 어린동생들과 함께 큰이모네 집으로 피난가는 나의 신세 가증스럽기 짝이 없었다.


어느 화창한 날 우리는 길을 떠났다. 기차 타고 팔가자에 도착한 우리들은 30리길을 걸어서야 큰이모네집에 도착할수 있었다. 길가의 풍경도 아주 생소하였다. 가없이 펼쳐진 벼밭, 졸졸 흐르는 개울물, 울퉁불퉁한 달구지길, 거무칙칙한 초가집들 모든것이 낯설면서도 정다워보였다.


나는 공부를 많이 할 욕심으로 책을 많이 가지고 떠났다. 게다가 동생들의 짐까지 놓다보니 장애인차는 꽉 차서 엉뎅이를 들이밀기조차 힘들었다. 간신히 30리길을 굴려가는데 가도가도 끝이 있을것 같지 않았다. 물 한모금도 마시지 못한 우리들은 지쳐서 죽을 지경이였다. 다행이 공부를 잘하는 동생들은 아는것도 많아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니 그나마 피곤을 이길수 있었다.


네시간동안의 장정을 걸쳐 우리는 겨우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기별 없이 온 우리들을 보고 이모네는 놀라와하면서 반갑게 맞이하였다. 말그대로 큰이모네 집은 조용하였다. 동생들은 며칠 놀다가 돌아갔다. 집에는 이모와 이모부 그리고 그 집 막내딸밖에 없었다. 막내딸은 나보다 서너살아래인데 시내로 일하러 가려다 내가 가니 동무해주느라고 머물렀다.


며칠이 안되여 큰이모는 우리 집으로 떠났다. 나의 친언니가 결혼식을 하기에 도우러 가는것이였다. 하나밖에 없는 언니의 결혼식에 나도 꼭 참가하고싶었건만 그렇게 될수 없는 정황이고보니 너무나 유감스럽지 않을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어디 다른것을 돌볼 여유가 있는 사람인가? 나한테는 학업이 위주다. 이제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하여 남의 부담거리로 되지 않으려는 이 동생의 마음을 언니는 리해해주고도 나머지가 있을것이라고 믿고싶었다.


조용한 환경속에서 나는 공부를 착실하게 하였다. 학교에서 지정해준 참고서적들도 마음껏 볼수 있어 정말 좋았다. 게다가 시골사람들은 도시 사람들과 완전히 달랐다. 소박하고도 인정이 있어 나의 마음을 몹시 안정시켜주었다. 나와 아무 관계도 없는 마을사람들도 아주 친절하게 대해주었을 뿐더러 특히 사돈집들에서는 약간한 색다른 음식이 있어도 나한테 보내주군 하였다.


하루는 큰이모부가 큰사돈네 집에 갔다가 물고기 두마리를 가지고 오셨다. 사돈아저씨가 잡아온것이라면서 이모부는 흙내가 나서 별로 먹기 좋아하지 않지만 그 집에서 성의로 나한테 주는것이니 가지고 왔단다.


흙내가 나면 뭐라나 제거하면 되겠는데. 이튿날 아침, 물고기를 료리할 때 어느 책에서 본 방법대로 식초, 사탕, 술을 적당히 넣고 끓이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흙내는 가뭇없이 사라지고 담백하고 쫑깃쫑깃한것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모른다. 큰이모부는 너무도 놀랍고 신기하여 온 마을에 다니며 자랑을 늘어놓는것이였다. 그러고보니 책은 만능이고 지식은 쓸모 없는것이 없는것 같다. 그래서 사람은 정말 많이 배워야 하는것이다.


조용하고도 안정된 환경속에서 공부를 할수 있어 너무나 기뻤는데 갑자기 홍수가 진다고 마을에서는 난리들이다. 련속 며칠 비가 크게 내리더니 매일 도처에서 물사태가 터지고 다리가 끊어지고 길이 차단되였다는 소식들이였다. 큰이모네 집근처에는 저수지가 있었다. 이대로 계속 비가 내리면 저수지수문을 열어놓아야 한단다. 그러면 이모네집뿐만 아니라 온마들이 물에 잠기게 된단다.


난리라도 또 이런 난리가 어디에 있을가?


경보가 울리면 근처의 산으로 피난을 가야 한단다. 피난은 무슨놈의 피난인가? 이집저집 떠돌이하는 신세에 하늘의 뜻이라면 차라리 죽고말지. 나는 아예 산에 올라가지 않겠다고 선포하였다. 그랬더니 이모부는 안된다고 야단이였다. 자기가 죽는한이 있더라도 꼭 나를 살려야 한단다. 새파란 나이에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는 그릇된것이란다.


며칠이 지난 어느 새벽, 마을에서 기별이 왔다. 저수지를 열어놓으니 빨리 산에 오르란다. 캄캄한 하늘에서는 계속 비가 내리고있었다. 큰이모부는 어디서 소수레를 빌려와서는 빨리 중요한 물건들을 실으라고 재촉한다. 큰이모네 작은 딸은 텔레비죤이며 쌀 같은것들을 싣느라고 부산을 떨었다.


나는 한보따리나 되는 책이 근심이 되였다. 나는 빨리 책꾸러미를 소수레에 실어달라고 하였다. 사촌동생은 작은 소수레에 가장기물도 다 못 싣겠는데 그까짓 책이 몇푼어치 간다고 싣지 말자는것이였다.


나는 내가 앉지 못하더라도 책만은 꼭 실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사촌동생은 내키지 않으면서도 할수 없이 실어주었다. 책은 나의 생명과도 같다는것을 사촌동생이야 어찌 알랴.

소수레에 올망졸망 걷어싣고 산에 오르니 날이 훤히 밝기 시작하였다. 산이라야 평지보다 크게 높지 않아 언덕이라고 하는편이 더 적합할것 같았다. 주위는 온통 옥수수밭이였다. 우리는 비를 맞으면서 장밤을 지샜다.


온몸은 비에 젖어 후줄근하고 추운데 배까지 고파났다. 그런데 이놈의 난리는 언제 끝날지 미결이다. 약 세시간을 기다렸는가 하는데 홍수주의보가 해제되였단다.


정말 다행이였다. 나는 소수레에 앉아 집으로 내려왔다. 산에 올라갔다가 집에 내려오니 집이 그렇게 반가울수가 없었다. 나는 입었던 옷을 몽땅 바꾸어입고 깨끗이 빨아놓았다. 새출발을 할 타산이였다.


책꾸러미를 보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무슨 큰 인물이 되겠다고 책보를 가지고 피난갔다 왔는지 나로서도 모를 일이다. 이 일은 사촌동생한테 큰 인상을 남겼던 모양이다. 지금도 집안 군일이 있을 때면 그는 늘 그때 옛말을 하군 한다.


피난소동이 있은 뒤 얼마 안 되여 큰이모가 우리 집에서 혼사를 끝내고 돌아왔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푸념질하였다. 《어이구, 넌 언제면 언니처럼 너울 쓰고 시집을 가겠느냐? 언니는 정말 행복하겠더라. 신랑이 시체옷들을 한트렁크나 사왔던데 죽을 때까지 입어도 다 못 입겠더라. 그런데 너는 한평생 치마도 못 입어보고 변변한 신발도 신어보지 못하게 생겼으니 얼마나 원통하겠냐.》


큰 이모는 내가 누릴걸 누리지 못하는것 같아 가슴 아파 하지만 나는 종래로 먹고 입는데 신경을 쓴적이 없었다. 잘 먹고 잘 입는 생활이 싫어서가 아니다. 나에게는 그럴 시간이 없거니와 조건도 없었다.그리고 사람이란 추구가 있어야 하며 또 그 추구를 위하여 고생을 해야 한다.어떻게 사람으로 생겨서 그저 먹고 입기만 하겠는가?

반드시 먼저 자급자족을 할수 있는 떳떳한 인간이 되여야 한다. 그다음 물질적 풍요로움을 추구하여도 늦지 않다. 때문에 나한테는 홀로서기가 급선무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엇서서 많은 고생을 겪었고 또 주위의 여론압력을 이겨나온것도 바로 나의 이 홀로서기를 위해서였다.


그런데 홀로서기가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싶은 때가 너무도 많았다.이집저집 떠돌아다닌다는것이 정말 구차한 일이였다. 한집에 너무 오래 있을수 없고 그렇다고 아버지한테 큰소리 쳐놓고 불과 몇달이 안되여 집으로 돌아간다는것은 더구나 될수 없는 일이였다. 게다가 나는 집으로 들어가기 딱 싫었다.


어떻게 하였으면 좋을지 어머니한테 편지를 썼더니 집으로 돌아오란다.이만큼 오래 갈라져있었으니 아버지의 성질도 가라앉았을것이란다.


큰이모네집을 떠나기 전날, 나는 이모네집앞에 나앉아 넓은 벼밭을 바라보면서 착잡한 생각에 빠져들었다. 나는 이때까지 살아온 삶을 한번 점검해보았다. 도대체 내가 정말 옳은 짓을 하면서 살아왔는지. 아버지와 근 20년 엇서면서 하라는 걷기련습은 하지 않고 하지 말라는 공부를 기어코 하면서 주위 사람들까지 피곤하게 만드는것이 정말 잘하는 노릇인지 알수 없었다.


이제 또 집으로 돌아가면 어떤 봉변을 당해야 할지 근심이 태산같았다. 학업은 계속 할수 있을지? 학업을 끝내면 소원대로 취직을 할수 있을지 모두가 미결이였다.


앞을 내다볼수 없는 나는 그래도 한번 어머니의 말을 믿고 집으로 돌아가보려고 마음먹었다.


최원 (다음기에 계속)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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