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654억 비자금’ 확인 땐
미납분 231억만 국가에 귀속
차액은 노씨 소유 될 수 있어
아들 이혼소송 등 불화에 진정
뇌물 찾아달라는 ‘뻔뻔한 꼼수’
노태우(80·왼쪽) 전 대통령이 자신이 맡긴 비자금을 임의로 사용했다며 사돈인 신명수(71·오른쪽) 전 신동방그룹 회장을 수사해 달라는 진정을 검찰에 내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추징금을 완납하기 위해 적극적인 수사를 요청한다는 게 노 전 대통령 쪽의 그럴듯한 명분이지만, 이번에 문제삼은 비자금 규모가 남은 추징금 액수보다 훨씬 커 이참에 ‘차액’까지 챙기려는 속셈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다.
11일 검찰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노 전 대통령은 1990년께 신 전 회장에게 “자녀들을 위해 맡아서 잘 관리해 달라”며 230억원을 건넸다. 이 돈은 서울 소공동 서울센터빌딩을 매입하는 데 쓰였고 신 전 회장은 신동방그룹 계열사로 명의가 넘어간 이 건물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개인 빚을 갚은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 1995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조사에서 “신 전 회장이 사들인 건물의 소유권에 관해 지분 비율을 약정한 것은 없으나, 신 전 회장이 알아서 내 몫을 인정해 줄 것으로 믿었다”고 진술했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신 전 회장에게 맡긴 230억원은 이자 등을 포함해 현재 654억6500만원 정도에 이른다며 검찰이 이를 밝혀내 미납 추징금에 사용돼야 한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의 외아들 노재헌씨와 신 회장의 장녀 신정화씨는 1990년 결혼했으며, 지난해 법원에 이혼소송을 내고 결별 수순을 밟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 재임 기간(1988년 2월~1993년 2월) 중 기업체들로부터 받아 조성한 비자금을 경호실장인 이현우씨를 통해 관리하며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한 혐의(특정범죄 가중처벌법의 뇌물) 등으로 기소돼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징역 17년과 추징금 2628억9600만원이 확정됐다. 같은 해 12월 사면·복권됐으나 추징금은 여기에서 제외됐다. 노 전 대통령 재산에 대한 추징금 추심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집행2과의 말을 들어보면, 노 전 대통령은 1997년부터 현재까지 97차례에 걸쳐 2397억9300만원(총 추징금의 91%)의 추징금을 납부했다. 미납 추징금은 231억여원이다.
이번 검찰 수사에서 노 전 대통령 주장대로 654억6500만원이 자신이 맡긴 돈으로 드러날 경우 미납 추징금 231억여원이 국가에 귀속되는 것과는 별개로 남은 차액이 과연 누구의 것이냐는 문제가 생긴다. 추징금에는 이자가 붙지 않기 때문에 미납 추징금 액수는 그대로다. 검찰 내부에선 추징금을 제외한 남은 돈은 노 전 대통령 소유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많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추징을 하고 남은 돈은 노 전 대통령이 갖게 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뇌물로 받은 부정한 돈이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노 전 대통령이 미납 추징금도 납부하고 뇌물로 받아챙긴 남은 돈도 되찾으려는 ‘꼼수’를 부린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검찰의 중간 간부급 검사는 “노 전 대통령이 병세도 깊은데다 그동안 추징금을 내느라 현재 돈이 별로 없는 것으로 안다”며 “추징금을 완납해 떳떳하게 지내면서도 실속을 챙기려는 계산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김정필 황춘화 기자 fermat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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