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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개 마을을 가다 | '개천에도 룡이 난다'는 마을-보흥촌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24.02.02일 12:05
흑룡강성 목릉시 하서진 보흥촌은 목릉시 소재지 팔면통진에서 목릉하를 건너 서쪽으로 5리쯤 상거한 조선족촌(최명수 촌주임 겸 당지부 서기)이다.



최명수 촌주임 겸 당지부 서기

보흥촌 동쪽은 목릉하를 끼고 있고 서쪽은 하서진, 남쪽은 한족촌인 향향촌이고 북쪽은 조선족촌인 기경촌과 이웃하고 있다.

이 마을의 어른들에 따르면 지금의 보흥촌 일대에 조선인이 처음 온 것은 1935년경인 일제 강점기 때였다고 한다. 그때 일제는 수전을 개간해 군량을 해결하기 위하여 조선인들을 강제로 끌어다 수전농사를 짓게끔 강요했다고 한다. 그렇게 끌려온 조선인들은 대부분 몇백리 떨어진 연변에서 왔는데 남쪽으로부터 목릉하를 따라 이곳까지 왔다고 한다. 그 시기는 일제가 집단부락을 지을 때였다. 마을이 서자마자 마을주변에 넓다란 토성을 둘러치고 집단부락을 만들었는데 일제가 투항한 후에도 그 토성은 계속 남아있었다고 한다.



초기에 이주한 사람들이 대부분 연변 사람들이였고 함경도방언을 썼기에 지금도 이 마을에서는 함경도방언이 위주이다. 보흥촌은 목릉하를 끼고 있고 토질이 좋았기에 농사가 잘 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사방에서 사람들이 많이 모여왔다고 한다. 이 마을에 사람들이 가장 많을 때에는 가구수가 300 가구가 넘었고 인구는 최고로 960여명에 달했으며 4개 생산소대로 나뉘였다고 한다. 지금 이 마을에는 상주인구가 170여명 그중 조선족인구가 100명 좌우 된다.

이 마을 조선족학교가 처음 선 것은 1936년이였는데 그때 소학교밖에 없었지만 학생이 많을 때에는 300여명이 넘었다고 한다. 이 마을 학생중 대학에 입학한 학생이 50여명, 1986년 전후로 청화대학에 입학한 학생이 3명이 나왔고 북경사범대학에 입학한 학생이 2명으로 ‘개천에 룡이 난다’는 고장으로 널리 알려졌다.

마을의 경작지는 2000무인데 전부 수전이다. 수전의 관개수원은 이 일대에서 수원이 가장 풍부한 목릉하인데 발원지부터 이 마을까지 230킬로미터 정도이기에 수온이 벼생장에 유리하다. 보흥촌은 다른 마을과 달리 자기 마을에서 육종한 벼모를 심는다.



이 마을에서는 자체로 벼모를 육종해 자기 마을 뿐만 아니라 다른 마을에도 공급하는데 이 마을에는 일찍 흑룡강에서 벼육종전문가로 전국에 소문을 떨친 박삼덕씨가 살던 고장으로, 지금도 그의 아들 박영표씨가 벼모를 육종하고 있다. 수전의 토질구성은 흑토이나 목릉하와 가까운 일부 경지는 사질토로 구성되여 있다. 이 마을의 무상기는 130일 좌우인데 헥타르당 벼수확고는 1만7천근이다. 이 마을에서는 지금 보경1호 알곡브랜드를 쓰고 있다. 마을에서 경작지를 다루는 농호는 3호인데 제일 많이 다루는 농호는 30헥타르를 다룬다. 이주초부터 지금까지 관음상제풍속은 모두 연변식으로 치루고 있다. 마을에 그럴듯한 례식장이나 음식점이 없으나 목릉시와 가깝기에 지금은 모두 도시 례식장에서 치루기에 지금은 전통풍속이 점차 색바래지고 있다. 금방 이주했던 시기와 1960년때 까지만 해도 마을에서는 집을 지을 때 연변거주문화특점을 본따서 개자리를 내여 굴뚝을 세우고 초가집이나 기와집 지붕은 조선전통양식을 따라 각각 지붕을 올렸다. 초가이영은 쉽게 삭기에 해마다 새 벼짚으로 이영을 올려야 하는 번거로움이 많았다고 한다. 1970년대부터는 기와집을 지으면서 그런 고생에서 해탈되였다고 한다. 집의 외관은 연변과 같았지만 집안구조는 가마에서부터 달랐는데 가마는 일반적으로 삼각식으로 3개를 걸거나 정방형식으로 4개를 걸었다. 구들도 처음에는 통구들을 놓았지만 후에는 한족식 구들을 놓고 사람들이 집안에서 신을 신고 편리하게 다닐 수 있게 봉당을 만들었다. 부뚜막도 널마루를 덮은 부뚜막이 아니라 봉당에서 부뚜막까지 같은 높이로 훤히 트인 내장식으로 만들었다. 후에는 굴뚝이 얼어드는 점을 감안해 굴뚝도 집안으로 빼여 연기가 빠지는 곳이 따스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 일제의 갖은 굴욕을 당한 조선족 마을이기에 마을사람들은 반일감정이 짙었고 혁명열정이 높았는데 전쟁년대에 참군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이 마을에서는 선후로 50여명의 청장년들이 참군하여 해방전쟁이나 항미원조에 참전하였으며 전쟁이 끝난 다음 마을에는 10여호의 렬사가족이 있었고 지금은 렬사가족이 한 호만 남았다. 보흥촌에는 또 전국에 이름을 떨친 벼육종가 박삼덕씨가 살던 고장으로 마을사람들은 박삼덕을 자랑으로 생각하고 있다. 박삼덕은 중국인민해방군에서 제대한 후 1963년부터 마을에서 벼육종을 시작하였다. 당시 마을은 몹시 가난했고 무당 산량은 500여근 밖에 안되였다. 고심참담한 노력을 거쳐 박삼덕은 보흥촌 이름을 붙힌 78가지 보자호 벼종자를 배육해 넓은 경지에 보급시켰다. 국가해당부문의 통계에 의하면 2002년까지 보자호 벼육종면적은 2500만무에 달했으며 일반 품종보다 10%~15% 증산되였는데 수입증대가 16억원이나 되였다고 한다. 박삼덕의 연구성과는 국가의 높은 중시를 받았으며 1978년 제1차전국과학대회에 참가해 국가과학기술사업 중대공헌 선진사업자와 농민육종가라는 영예를 따냈다. 1985년에 박삼덕은 흑룡강 유일한 농민특약대표신분으로 전국로력모범표창대회에 참가하였고 1998년, 1999년, 2001년 선후하여 국가에서 수여한 각종 상을 받았다. 박삼덕은 지금도 흑룡강의 자랑, 마을의 자랑으로 길이길이 전해지고 있다.

마을에 청장년이 많았던 1980년대까지만 하여도 마을에서는 2년에 한번씩 마을운동회를 조직하였는데 한번 운동회를 한다하면 3일씩 진행했다고 한다.



운동회는 축구, 배구 등 조선족들이 좋아하는 구류종목이 가장 인기를 끌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마을과는 달리 롱구경기까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전통조선족민속종목인 씨름, 그네, 널뛰기도 인기있는 종목이였고 달리기, 장애물 경주 등 륙상경기와 바줄당기기도 있었다. 그때 마을에서 뽈을 잘 차는 축구선수가 흑룡강성팀에 뽑혀가기도 하였다.

한편 마을에는 노래 잘하고 춤 잘추며 악기를 다루는 젊은이들이 많아 문예공연도 제법 활기를 띠였다고 한다. 당시 마을의 문예공연팀은 마을과 진구역은 물론 목릉시문예공연에서도 인기몰이를 하여 목릉시에서는 보흥촌을 ‘예술의 고향’이라고 불렀다.

그 열기를 타고 이 마을에서는 문예방면의 인재들이 많이 배출되였는데 그가운데 전국에 이름 떨친 최경호 가수가 지금도 이 마을의 큰 자랑거리로 되고 있다.

최명수 촌주임 겸 당지부 서기에 따르면 마을에서는 2009년부터 마을모습 개조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다년간의 건설을 거쳐 지금 마을에는 3킬로미터의 콘크리트 길과 2킬로미터의 콘크리트 배수구를 건설하였고 마을 길에 80개의 가로등과 15개의 감시카메라를 가설하였다. 한편 마을길의 량옆에는 2000그루의 록화수를 심고 90미터 깊이의 물탱크를 만들어 집집마다 수도물을 공급하고 있다.

현재 마을에 로인들이 거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촌에서는 로인들의 건강활동을 마음껏 지원하기 위하여 면적이 4000평방미터인 문화광장을 마을에 건설하였다. 현재 문화광장에서 촌민들은 풍부하고도 다채로운 레저문화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보흥촌에는 옥수수드라이기업과 입쌀가공공장이 입주해 있는데 이 기업들에서 해마다 촌에 16만원의 경제수익을 올려주고 있어 촌집체경제수익을 제고시키고 있다.



이 마을 로인협회에 따르면 현재 회원이 50여명, 협회의 경비중 8천원은 촌에서 지원해주고, 경작지에서 나오는 임대비 6000원, 인구당 회비 100원으로 운영해가고 있다. 주로 시사, 건강학습을 하고, 평상시 마작, 화투, 문구활동을 한다.

매달 1일이나 15일이면 시사 건강 학습이나 위생청결한 후 모여서 회식을 한다. 한편 이웃 촌들을 초청하여 문구시합을 벌이는 등 이웃과의 친선관계를 돈독히 하군 한다. 또한 명절이나 년말이면 콩기름을 나눠주거나 불우가정에 쌀 등 식품을 지원하고 있다.

마을에 있던 조선족들이 외지로 간다음 마을에 돌아오지 않아 마을이 공동화 되여가는 점을 감안해 촌에서는 외지에서 온 40여호 한족농호를 받아들여 마을의 일상건설을 하고 있다. 그들은 조선족농민들과 함께 어울려가면서 화목을 다지고 민족단결의 꽃을 피워가고 있다.

최명수 당지부 서기는 로인들만 남은 마을에 새로운 수혈이 기대된다며 외지에 간 마을 사람들이 돌아와 안착해 마을을 지켜주기 바란다는 애탄 소망과 함께 지금보다 더 화목하고 행복지수가 높으며 살기좋은 동네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는 지향을 내비치기도 하였다.

/김동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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