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박성환 기자 = "한 푼이라도 벌고 싶은 마음에 월 200만원을 보장해준다는 지하철 구인광고 믿고 취업했다 빚만 지게 됐어요."
주부 장모(55·여)씨는 얼마 전 지하철 구인광고를 통해 건강식품 업체에 취업했다 낭패를 봤다.
생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까 싶어 일을 찾던 장씨는 몇 달 동안 교육을 받고 자격증까지 여러 개 취득했지만 취업에 매번 실패했다. 몇 달 동안 취업문을 두드렸지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장씨를 받아주는 회사가 한 군데도 없었다.
취업의 높은 벽을 실감하고 포기하려던 장씨에게 지하철 광고판에 끼어 있는 구인광고가 눈에 띄었다.
"학력이고 나이고 전혀 상관없습니다. 월 200만원 보장하고, 직원들과 상품을 관리하는 관리직으로 가족처럼 함께 일할 수 있는 곳입니다."
매번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취업에 실패한 장씨에게 솔깃한 제안이었다. 장씨는 회사 관계자로부터 "입사를 위해 반드시 건강식품을 구입해야 한다. 일종의 보증금 명목으로 생각하면 된다"는 말만 듣고 100만원에 달하는 건강식품을 구입했다.
장씨는 적지 않은 금액이라 부담스러웠지만 매달 200만원을 보장해준다는 회사 관계자의 설명을 철석같이 믿었다고 한다.
한 달 뒤 장씨가 회사로부터 받은 월급은 3만2000원. 장씨는 입사 한 달 뒤에야 관리직이 되려면 건강식품을 일정 수준 이상 팔아야 되고, 판매량에 따라 월급이 차등 지급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장씨는 회사 측에 수차례 항의하고 환불을 요청했지만 현재까지 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장씨는 "영업직이 아니라고 광고 해놓고 결국에는 반 강제적으로 물건을 팔아넘긴 업체에 분통이 터진다"며 "구직자들의 절박한 심정을 악용해 물품을 강매하는 것은 일종의 취업사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불황의 그늘이 깊어지면서 취업난에 울상인 구직자들을 홀리는 지하철 구인광고. 지하철 광고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명함크기의 구인광고에는 '학력과 나이제한이 없다', '일정금액 이상의 월급을 보장한다' 등의 문구가 어김없이 담겨 있다. 얼핏 보면 시쳇말로 '신의 직장'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이를 믿고 해당 회사를 찾았다가 피해를 보는 이들이 속출하고 있다. 구직자들의 절박한 처지를 악용하는 업체의 교묘한 상술 때문이다.
실제 지하철에서 수거한 20여개의 구인광고지를 확인해보니 업체이름과 전화번호만 다를 뿐 월급을 일정 수준이상 보장하고, 내근 관리직을 채용한다며 사무실을 방문할 것으로 재촉하는 것은 동일했다. 또 전단지마다 회사 명의가 전부 달랐지만 사무실 주소가 동일한 곳도 일부 있었다.
이들 업체들은 직접 방문한 구직자들에게 관리직을 시켜주겠다며 온갖 감언이설로 꼬드긴다. 관리직을 빌미로 물건을 판매하는 영업직을 일정기간 해야 한다거나 반품도 안 되는 물건은 강매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특히 이들 업체에 교묘한 상술에 속아 피해를 본 구직자들이 경제적 피해를 만회하기 위해 또다른 피해자들을 유인하는 등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이를 차단할 뾰족한 대책이 없는 실정이다. 구직자 스스로 조심하지 않으면 자칫 피해를 당할 수 있어 사전에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서울매트로 관계자는 "불법 구인광고 전단지에 대한 신고가 들어오면 즉시 제거하고 있다"면서도 "불법 구인광고 전단지를 매일 회수하고 있지만 워낙 양도 많고, 시도 때도 없이 전단지를 뿌리다보니 근절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지나치게 높은 임금과 좋은 근로조건이나 사무실 방문을 유도하는 곳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대부분의 지하철 구인광고들은 구체적인 업무를 소개하지 않고 좋은 근로조건을 내세우지만 실제는 허위 구인광고일 가능성이 높다"며 "정직원이나 관리직을 빌미로 교육비와 물건 구매를 강요할 경우 반드시 신고해야 피해를 입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허위 구인 광고로 인한 피해를 사전에 막기 위해서는 노동부에서 소개하는 안전한 구인 사이트를 이용해야 한다"며 "허위 구인 광고행위를 신고해야 수사기관에 고발해 처벌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노동부는 ▲높은 임금과 좋은 근로조건 ▲대기업과 유사한 업체명 ▲정직원이 되기 위한 교육비와 물건 구매 강요 ▲업체 방문 유도 등을 하는 회사는 사전에 사업자 등록여부 등을 사전에 확인할 것을 당부했다.
한편 노동부는 2007년 8월부터 불법직업소개와 허위 구인광고에 대한 '신고포상금제'를 신설해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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