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삼민(대련)
얼마전에 고향을 다녀왔다. 대련에서 꼬박 18시간 기차를 타고 또 두번이나 뻐스를 갈아타서야 겨우 두메산골 고향마을에 들어섰다. 절주 빠른 세월은 마을의 젊은이들을 몽땅 외국과 연해지구로 실어갔고 앙상하게 뼈만 남은 몇그루의 백양나무가 우두커니 서서 마을을 지켜가고있었다.
다행히도 큰 형수가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기에 얼어들던 나의 마음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밥상에 마주앉아 토장내 구수한 부뚜막을 바라보는데 북쪽 귀퉁이에 보자기를 씌운 작은 시루가 나의 눈에 들어왔다. 길죽한 독을 쇠줄로 동이였고 그 아래에 걸이대가 놓인걸 봐서 분명 어머니가 생전에 쓰시던 콩나물시루였다. 아, 얼마나 반가운 친구인가. 나는 밥상에 앉다 말고 성큼 다가가 바가지를 들고 물을 붓기 시작했다. 《쪼르르, 쪼르르》시루를 타고 내려오는 물소리와 함께 동년시절 고향집 풍경이 기억의 쪽문을 열고 아련히 떠올랐다.
1958년 내가 소학교를 다닐때였다. 어머니는 일곱명이나 되는 대식구의 끼니를 위해 지극정성으로 콩나물을 길렀다. 집체에서 주는 3정량으론 태반 부족이여서 때마다 쌀 한줌을 넣고 콩나물죽을 한옹배기씩 끓였다. 작은 콩 한알에서 한뼘씩이나 자란 콩나물은 가난에 모대기던 우리집의 생명줄과도 같았다. 어머니는 밥상에 마주 앉을때마다 《콩나물죽 3년 먹으면 부자 된다》고 말씀하셨고 우리들은 말없이 후룩후룩 그릇을 비워갔다. 한밤중, 윙윙 불어대는 설한풍이 창문지를 두드릴때면 우리 삼형제는 번갈아가며 콩나물에 물을 주고 어머니는 화로에 파묻었던 감자를 파내여 우리들에게 나눠준다. 껍질을 벗기면 하얀 속살을 드러낸 감자가 몰몰 피여나는 향내를 풍기며 추위를 몰아낸다. 내가 엄마의 곁에 누워 심청전의 옛 이야기를 들을때면 흠뻑 물을 먹은 콩나물은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며 작은 발을 내리 뻗는다. 작은 뿌리에서 나온 영양소로 탈바꿈을 한다. 콩에서 콩나물로 환태탈골하는것이다. 콩이 가지고 있는 지방을 태워 섬유질을 만들고 여기에다 여러가지 무기물을 함께 합성하고 암모니아 같은 불순물을 밖으로 내놓는다. 일순간에 지나가는 작용으로 형상과 형질이 바뀌는것을 보면서 세상의 리치에 아둔한 내가 부끄럽다는것을 느낀다. 겉으로 드러나 보이지는 않지만 모든 물질은 외면적이든, 내면적이든 허물을 벗으면서 살아간다. 콩에서 콩나물로 변하고 유충에서 매미가 태여나는 탈바꿈을 한다는 인생의 도리를 콩나물을 키우면서 깨닫게 되었다.
콩나물과 함께 살고 싶다. 콩나물은 주는대로 받으며 자신이 능력껏 살아가는 멋이 있다. 물을 많이 주면 아래로 쭉쭉 다리를 뻗치고 물이 적으면 작은 발을 옆으로 비집고 나아간다. 비료와 거름 같은 영양제도 필요없이 물 한바가지면 족하다. 그러면서도 물 한모금으로 비타민 C, B, 고혈압과 변비에 효능이 뛰여난 칼륨 등 영양소를 생성해 낸다. 그 신비스런 작용은 욕심이 없는데서 비롯된것은 아닐가. 사람들에게 령혼을 반짝이게 하는 공(空)을 안겨주는것도 콩나물이다. 부끄러움은 많지만 슬픔이라는것도 모른다. 당신이 흥에 겨워 물을 주면 그 밑에서 《풍년가》가 나오고 당신이 슬픔에 잠겨 물을 주면 그 밑에서 《홍도야 울지 말아》가 나온다. 그러기에 언제 보아도 친근감이 나고 와락 안아보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워 보인다. 어찌 이뿐이겠는가. 1905년 1월 일본과 로씨야가 려순에서 판가리싸움을 벌렸을때 로씨야군이 야채를 공급받지 못해 숱한 병사들이 괴혈병으로 쓰러져 결국 일본군에 무릎을 꿇었다. 그때 만약 콩나물 재배법을 알았더라면 로씨야군대가 일본군에 투항하지 않았을것이고 세계력사도 바뀔수 있었을것이다. 가늘다고 콩나물을 어찌 얕볼수 있겠는가.
어머니 손때묻은 바가지로 연거퍼 콩나물시루에 물을 부어본다. 황금빛이 여울치는 콩나물을 바라보며 담장 넘어 누런 호박덩어리같은 어머니의 사랑을 머리속에 떠올린다. 40여년 직장생활을 하면서 안일한 생활에 미혹되여 몸이 고달프면 부모를 탓하고 곤경에 처하면 여건타발만 하던 지난날이 배속의 유리쪼각처럼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치열하게 살아갈때 가장 고통스러운 그 시각이 자신의 허물이 벗겨지고 새롭게 태여난다는 도리를 새삼스레 느끼게 된다.
《쪼르르, 쪼르르》콩나물 시루에서 세월의 그리움이 더 짙게 쌓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