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공정원 유일한 조선족원사 강경산 인터뷰
(흑룡강신문=하얼빈) 중국공정원의 유일한 조선족원사 강경산(75세)은 중국달탐사프로젝트 부총설계사이고 중국과학원 달탐사공정응용총체부 총설계사이며 국가 863항천령역 전문가위원회 고문이다. 그가 창도한 '미크로파 달(微波月亮)'은 세계항천과학령역에서 커다란 진동을 일으켰고 조선족의 위상을 세계에로 떨쳤다.
2007년 10월 24일 중화민족 천년의 꿈을 싣고 38만킬로미터 창공으로 발사된 '상아1호'위성에는 달탐사프로젝트의 부총설계사 강원사가 창도한 미크로파원격탐측기가 탑재됐다.
중국의 첫 달탐사위성 '상아1호'의 성공적인 발사로부터 유인우주선, 달탐사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중국우주항공의 리정표에는 언제나 조선족과학자 강경산원사의 심혈이 슴배여있었다.
강경산은 미크로파원격탐측을 처음으로 신주4호에 탑재하였고 이는 중국위성미크로파원격탐측 령의 돌파를 가져오게 했다.
2008년 5월 강경산은 미크로파원격탐측기를 성공적으로 기상위성에도 탑재했다.
이같이 거대한 성과 앞에 강경산원사는 "이 모든 공로는 당의 은덕과 배려, 그리고 중국공산당의 우수한 민족정책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2011년 건당 90주년을 맞으면서 당령 55주년의 강경산원사는 또 영광스럽게 중국과학원 우수공산당원으로 선정됐다.
"우리 나라에는 방대한 조선족 과학자, 기술자 대오가 있다. 나를 비롯해 그들이 자기 일터에서 큼직큼직한 성과들을 이룩하고 민감한 첨단기술령역에서도 떳떳한 자리를 차지하고 조선족이 원사가 된것은 모두가 공산당의 고마운 민족정책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의 배려가 없었더라면 나는 학업조차 완성할수 없었고 오늘의 성과도 이룩할수 없었을것이다. 나는 당의 혜택을 입은 사람으로 당에 대해 항상 감격해한다."
1945년 연변이 해방되면서 로해방구에서 자란 강경산원사는 중국의 토지개혁을 겪었고 당의 정확한 지도하에 군중들의 생활이 날로 향상되고있음을 눈으로 보고 느꼈다.
"어릴적 가정조건이 째지게 가난했는데 소학교부터 고중까지 당과 정부의 장학금으로 순조롭게 학업을 완성했다."
1956년 쏘련류학을 앞두고 대동중학교당지부는 사상각오가 높고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당원으로 선정, 배양했다. 그중 일원으로 강경산원사가 선정됐고 그해 20살 나이로 그는 영광스럽게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강경산원사는 "그때 어린 나이에도 중국공산당이 위대하다고 생각했고 그 일원으로 될수 있다는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했다"면서 55년전의 입당 동기를 밝혔고 "55년동안 나는 중국공산당이 위대한 당이라는 신념과 믿음을 한번도 동요시킨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같은 동기와 신념, 믿음으로 그는 쏘련에서 학업을 마치고 돌아온 후 항천사업에 종사하면서 사업환경이 렬악하고 어려웠지만 연구사업에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조국의 항천사업을 위해 평생을 분투했다.
"나는 국가와 인류의 수요를 위해 일하고 어디까지나 사회수요를 자기의 연구목적으로 한다. 사회수요를 리탈한다면 아무 일도 성사할수 없다. 사회와 국가, 인류를 위해 봉사하는것이 곧 나에 대한 당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인정한다."
"중국공산당의 민족정책에 감사를 드린다."
강경산원사의 진정어린 말이였다.
/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