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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는 배 째라 선언 못해 … 결국 유로존에 남는다”

[기타] | 발행시간: 2012.05.19일 00:04

EU 집행위 세프코비치 부위원장이 본 유로화 위기

마로스 세프코비치(46) 부위원장은 슬로바키아 외교관 출신이다. 슬로바키아 EU 상주대표(2004), EU 집행위 교육·문화위원(2009)을 역임했으며 2010년부터 EU 집행위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박종근 기자]

세계대전 이후 지금처럼 전 세계의 이목이 유럽에 쏠리던 때가 있었을까.

 2010년 불거진 유럽 재정위기는 그리스의 파산·유로존 탈퇴설을 거쳐 급기야 일부 국가의 '뱅크런(예금 대량인출)'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유로(EURO)화라는 단일통화 도입은 1992년 2월 7일 '유럽연합조약(마스트리흐트조약)'으로 결정됐지만 실제로 통용된 것은 10년 뒤인 2002년 1월 1일이었다. 당시 로마노 프로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지금 막 크고 건강한 아이가 탄생했다. 유럽 역사의 새 장이 열린다”며 감격했다. 그로부터 다시 10년. 그리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위기는 전 세계 자본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한국 주식시장이 받은 타격은 더욱 크다. 불과 한 달 전 2049.28까지 올랐던 코스피는 지난 18일 1782.46으로 무려 13% 이상 하락했다.

이 와중에 지난 16일 마로스 세프코비치 EU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이 한국을 찾았다. EU 집행위는 EU의 최고 집행기관으로 한 나라의 행정부에 해당한다. 한국의 전자정부 시스템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왔지만 역시 유럽의 경제위기에 대해 할 말이 많았다. 본지가 단독으로 그를 만나 EU의 '공식 입장'과 개인적인 의견을 함께 들어봤다.

  

그리스가 결국 유로존에 남을 이유

독일·그리스·프랑스의 2유로 동전(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그리스 문제는 난제다. 세프코비치 부위원장도 이 점을 부인하지 않았다. “국민 대다수가 긴축을 지독히 꺼리는 상황에서, 정부와 의회가 적법한 절차를 통해 합의된 의무를 이행해야 하니 얼마나 어렵겠느냐”는 것이다. 실제 제프리 삭스·폴 크루그먼 등 미국의 석학들은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하지만 세프코비치 부위원장은 결국 그리스는 유로존에 남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유는 두 가지. 첫째, 2500억 유로에 이르는 그리스 부채는 이미 그리스 개별 국가가 아니라 EU 차원의 처방, 일명 '유러피언 솔루션(European Solution)'에 따라 탕감조치가 진행되고 있다. 이 솔루션은 그리스는 물론 다른 회원국들이 합의해 마련한 것이다. 만약 그리스가 '배 째라'를 선언한다면 같은 절차를 밟아 구제금융을 받기로 한 다른 회원국들의 입장도 어려워진다는 것. 그리스가 구제금융을 받는 조건은 '강력한 긴축'이지만 사실 '긴축 없이는 결코 지원도 없다'는 불호령보다는 '지원을 하기로 했으니 긴축도 해라'는 뉘앙스라는 게 EU 집행위의 입장이다. 세프코비치 부위원장은 “그리스 구제금융에 EU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177%에 달하는 3800억 유로(약 563조원)를 쓰는 것 자체가 EU가 한 가족 차원에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증거”라며 “6월 17일 치러질 그리스 재선거에 이 점이 반영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둘째, 그리스 개혁 프로그램에는 긴축뿐만 아니라 성장정책도 포함돼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개혁 프로그램은 오랜 기간 분석하고 연구해 나온 것으로 그리스가 다시 성장세로 돌아설 수 있는 최선책”이라며 “이를 논의할 그리스 파트너(정부)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긴축 반대를 외치며 득세한 그리스의 급진좌파연합(시리자)조차도 유로존에 남기를 원한다. 치프라스 시리자 대표는 지난 10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는 재앙이 될 거다. 유로존에 남기 위해 협상할 의지가 있다”고 했다. 세프코비치 부위원장이 “분명한 건 (그리스를 포함해) 우리 모두(we all)가 그리스의 유로존 잔류를 원한다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긴축만이 아니다, 성장 방안도 다룰 것

 그러나 일방적으로 긴축만을 요구할 수는 없다. 성장에 대한 갈망은 이미 유럽 대륙에 퍼져 있다. 세프코비치 부위원장은 유독 '성장(growth)'이란 단어를 많이 썼다. 위기 이후 유럽 재정원칙의 불문율이 '긴축'이었단 점에서 다소 의외다. 긴축 일변도의 정책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그리스는 물론 네덜란드·이탈리아·아일랜드·체코 등에서 불거지고 있었지만 지난 6일 프랑스 대선에서 올랑드 후보가 승리한 뒤 확실히 분위기가 달라졌다. 올랑드는 공공연하게 긴축보다 성장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세프코비치 부위원장은 “앞으로 유럽 정책들에 성장 촉진을 위한 내용이 많이 추가될 것이며 중요한 '어젠다'로 논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보다 훨씬 성장정책을 논의하기 좋은 분위기가 만들어졌다”는 판단이다. 대표적으로 부가가치세를 개혁해 탈세를 막으면 실질적인 재정을 불리는 데 큰 효과를 낼 것으로 본다. 집행위는 조만간 유럽 투자은행들의 자본금을 늘리는 프로젝트 본드·유로본드 발행을 추진하고 개별 회원국들의 서비스 부분을 자율화해 7만5000개의 일자리 창출을 실현할 계획이다. 다행히 긴축정책을 주도했던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지난 15일 올랑드 대통령을 만나 “유럽 경제성장을 위한 다양한 방법을 논의하자”고 뜻을 모았다. 23일 EU 특별정상회의와 다음 달 28~29일 열리는 EU 정례정상회의에선 '유럽의 성장'이 본격적으로 다뤄질 전망이다.

“유로존은 EU의 제1 우선순위”

 유로존이 EU에서 갖는 의미를 물었을 때 그는 “절대적인 우선순위(Absolute priority)”라고 했다. 심지어 유로존의 와해나 유로화 위기에 대해 의심을 가져본 적도 없다고 했다. 그의 지위 때문일 수도 있지만 유로화는 EU라는 규범적 모델을 '실체화'했다는 점에서 EU의 상징물이자 자존심으로 인식된다. 유로존 출범 초기 회원국들은 유로화가 달러를 능가하는 기축통화가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실제로 2008년 7월 5일에는 1유로가 1.6달러를 기록하며 으스대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유로화는 그리스 재정위기로 곤두박질쳐 지금까지 1.2달러대에 머물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프코비치 부위원장은 “유로화는 달러에 이어 세계 2위 통화로 건재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오히려 이번 위기가 그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그는 “EU의 공공부채 비율은 GDP 대비 87.2%로 미국(98%)이나 일본(235%)보다 낮다. 내년까지 유로존 국가 부채율을 3% 이하로 맞추고 2020년까지 전체 회원국의 재정을 안정화해 유로화의 가치를 지키겠다”고 밝혔다. 방법론도 지금까지 주로 거시경제지표를 안정시키는 데 주력했다면 앞으론 제도 개혁, 연금 개혁,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 등에 초점을 맞출 방침이다. 그는 “이런 개혁은 국민의 반대와 저항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유로화를 투기세력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결국엔 정치적 결단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EU 회의론을 거둬라”

 역사와 인종·문화가 다른 27개 회원국이 하나의 지붕 아래 하나의 통화를 쓴다는 게 애초에 불가능한 목표는 아니었을까. 'EU 회의론'은 유럽 경제위기로 더욱 거세졌다. 실제 회원국 간의 합의 과정은 매우 길고도 복잡하다. 세프코비치 부위원장조차도 “나라마다 이해관계가 다르고 저마다 다른 해결책을 주장하는 바람에 위기에 신속하게 대처하기가 너무 어렵다”며 한숨을 쉴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회원국도 EU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가길 원치 않는다”고 일축했다. “역사상 유럽대륙에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전쟁 없이 평화가 유지된 적이 없었다”는 '합의'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개인적으로 이번 위기를 통해 EU는 정치적 통합체로 발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진통을 겪으면서도 회원국들이 재정 개혁안을 채택하고 있고, EU의 회원국 내부 예산 통제안이 협의되고 있는 게 그 증거다. 각국의 예산을 건드리는 일은 2~3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다. 특히 “정치 리더들은 단일 경제부처를 설립하기 위해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EU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회원국 간의 '자유(freedom)'와 '연대(solidarity)'를 강조했다. 아무리 규모가 작은 회원국이라도 자국의 의견을 주장하고 합의 과정에 동참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독일과 프랑스가 여전히 경제대국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하겠지만 경제위기 이후 '보다 민주적이고 평등한 관계'를 주장하는 EU 내 요구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사실상 국가부도 이른 그리스

현재 그리스는 빚은 많은데 스스로 갚을 능력이 없는 사실상 '국가부도' 상태다. 1970년대 선박 5000척을 보유한 세계적인 해운·선박 강국이자 GDP 성장률이 7%를 넘나들던 시절이 무색하다. 근본적 원인은 방만한 국가재정 운영과 정치·공직사회의 부정부패다. 그리스의 복지예산은 EU 내에서 최하위권이다. 그런데 공무원 규모는 최대 수준이다. 2008년 금융위기가 닥치기 전 공무원 수가 전체 노동자의 4분의 1에 달했을 정도다. 이들은 높은 연봉과 연금을 보장받으며 국가재정을 갉아먹었다. 여기에 사회 전반에 탈세와 통계조작 등 부정부패가 만연해 90년대엔 심각한 재정문제와 불황에 직면했다.

2000년대엔 아테네올림픽(2004년)과 세계적인 저금리 기조가 맞물리며 경제가 살아나는 듯했다. 이 시기에 그리스는 해외에서 많은 돈을 빌려 각종 건설사업에 나섰다. 그러나 상당 부분이 정치권 특혜와 맞물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나라를 먹여 살리던 관광업마저 쇠락하기 시작했다. 해외 관광객을 유치하려면 환율을 낮춰야 하는데 유로존에 포함된지라 독자적인 통화·외환정책을 펼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신용위기가 겹치며 자산가치는 떨어지고 해외 금융기관들에선 빚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더 높은 이자를 내걸고 국채를 발행해 이를 막으려 했지만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유럽 경제위기 이후 그리스가 재기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독자적인 통화·외환정책이 불가능하다는 점. 둘째, 제조업 위주의 수출형이 아니라 서비스 산업 중심의 내수형이라는 점. 마지막으로 실업률이 10%를 넘는 상황에서 EU의 혹독한 적자감축 정책과 구조조정이 국민의 지지와 합의를 얻기 어렵다는 점. '유럽문명의 근원지' 그리스의 씁쓸한 현주소다.

중앙일보 이소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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