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치 못한채 들이닥친 코로나19사태가 우리의 일상속 많은 것들을 바꿔 놓았다. 그중에는 본의 아니게 사람들의 ‘외모’도 포함된다. 특히 녀성들보다 리발을 자주 하는 남성들의 경우 ‘더벅머리’는 이번 전염병 통제기간 웃지도 울지도 못할 골치거리로 되였을 것이다. 얼마전부터 생산과 영업이 전면적으로 재개되면서 생활질서가 차츰 다시 활력을 찾아가고 있는 가운데 사람들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바로 지역을 불문한 리발소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요즘은 점심식사도 할 시간이 없습니다. 아침 8시에 문을 열어 저녁 5시가 넘도록 손님들이 끊이질 않게 들어서서요. 리발사로 40년동안 근무하면서 이렇게 오래된 휴업은 난생 처음이였습니다.”
고객들의 인적사항을 체크하고 있는 엄련순씨
룡정시구역에서 자그마한 리발소를 운영중인 엄련순(66세)씨는 1980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리발사로 근무해오고 있다. 그믐날까지만 해도 전염병사태가 이토록 심각해질줄을 예상 못한채 한해 영업을 무사히 마치고 문고리를 잠궜는데 활기찬 새해 영업을 시작하기까지 의도치 않게 한달이 넉넉히 걸렸다.
한달여만에 다시 문을 열었을 때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지금도 약간의 긴장감은 감돌지만 그는 첫째도, 둘째도 고객들과의 신뢰와 그들의 안전을 지키는 것을 급선무로 여기고 개인방호를 철저히 했다. 물론 평소에도 워낙 실내위생과 도구청결에 신경을 쓰는 그였지만 지금으로선 더욱 신중하게 할 수 밖에 없다며 아침 일찍 소독수를 풀어 구석구석을 소독하고 시간날 때마다 문을 열어 환기시켜 청신한 환경을 유지하며 위생방역을 꼼꼼히 했다. 또 고객의 몸에 직접 닿을 수 있는 리발 도구들을 번마다 소독하고 깨끗하게 빨아 말린 수건과 리발가운으로 그 어느때보다 산뜻한 환경으로 손님들을 맞았다.
“예전에는 먼저 온 고객이 채 깎지 못했으면 다음 고객은 쏘파에 앉아 대기하군 하였습니다. 요즘은 철저히 사전에 예약을 받고 시간대에 따라 고객 한명씩만 출입을 허용합니다. 이것도 나름 질서가 있고 조용한 환경으로 될수 있어 나쁘지 않더라구요. 리발하러 오는 고객들도 들어서기 바쁘게 자각적으로 체온을 재고 등록절차에 따라 이름과 신분증번호, 련락처를 작성한 후에 거울에 마주 앉습니다.”
비록 마스크를 착용한채로 리발하다보니 평소 단골손님들과 주고 받았던 담소는 줄였지만 그 어느때보다 서로에 대한 믿음과 배려를 몸소 느낀다는 엄련순씨의 리발솜씨는 전에 비해 더 재빨라졌다.
화려하진 않으나 소박하면서도 아늑한 십평방메터 남짓한 공간에 리발의자 하나로 수십년간 리발을 해온 엄련순씨는 늘 남들보다 저렴하면서도 친절한 봉사로 지금까지 견지해왔다.
“평소 운신이 불편한 로인분들은 직접 집을 방문하여 리발을 해드렸는데 요즘은 그렇게 할 수가 없어 그분들이 자꾸 마음이 쓰이네요. 하루 빨리 이 사태가 종결되여 그분들께도 깔끔한 리발을 해드리고 싶습니다.”
정직하고도 날렵한 리발솜씨로 늘 고객들에게 만족을 주었기에 20년, 30년을 훌쩍 넘긴 단골들이 대를 이어 지금도 그의 리발소를 고집하군 한다.
“저는 30년을 넘어 이 리발소만 찾는 단골입니다. 평소에도 깨끗하고 깐진 엄녀사의 성미는 진작 알아 봤지만 특히 요즘 전염병기간에 그의 청결보장과 봉사정신에 탄복이 갑니다. 전에 비해 위생청결에 더 신경 써주고 고객들과의 예약시간을 드팀없이 지켜주기에 비상시기에도 안심하고 찾아와 리발할 수 있습니다."
막 리발을 마치고 일어서는 30년 단골 김씨성 남성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빙그레 웃어 보였다.
“저도 일흔 고개를 쳐보다는 나이인지라 종일 서서 하는 리발일이 솔직히 힘에 부칠 때가 많습니다. 특히 리발이 미뤄진 고객들로 요즘에는 하루동안 30명도 넘게 리발하며 팽이처럼 돌아치지만 요즘따라 유난히 개운한 발걸음으로 가게문을 나서는 고객들을 보면 저도 모르게 또 힘이 납니다.”
40년동안 리발기와 가위로 생계를 유지해가며 박사 딸과 석사 아들을 키워낸 엄련순씨는 고되고 힘든 일일지라도 신체가 허락되는 한 최선을 다해 고객들을 위해 헌신하련다고 했다. 특히 이 비상시기동안 고객들이 마음을 놓고 리발할 수 있게끔 위생청결과 개인방호에 더욱 각별히 신경을 써서 시민들의 단정하고도 말끔한 ‘모습’으로 이 역경을 함께 헤쳐가는데 도움주고 싶다고 말했다.
글 사진/길림신문 김영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