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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남조선》바다에 서린 할머니의 미소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2.11.19일 11:03
(연길)김신자

1997년 나는 처음으로 할머니의 고향이 있는 《남조선》(할머니는 생전에 한국을 남조선이라 불렀다)땅을 밟게 되였다. 출렁이는 바다에 마주서니 환히 웃으시는 할머니 모습이 눈뜨겁게 푸른 파도속에 서려왔다.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듣던 할머니의 고향이야기가 실화가 되여 가슴 뭉클하게 기억의 쪽문을 하나하나 열고 쏟아져 나왔다.

70년대 할머니는 저녁이면 어린 손군들의 허기진 배를 달래주려고 감자 묻은 화로불에 콩이나 옥수수, 미꾸라지를 구워주시면서 붉은 감 따다가 꽃감 만들고 조개랑 잡던 고향이야기를 많이도 해주었다. 집주위에 뱀들이 많았는데 밤마다 쑥불 지펴서 모기 며 뱀이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쫓았다고, 목이 메는 고구마처럼 달디달고 맛나는 밤들이 흔하기도 했다고 입버릇처럼 자랑하셨다. 부모님들이 한국에 돌아가시기전에 남긴 낡은 흑백사진을 꺼내놓고 하얀 두루마기에 하얀 치마저고리를 입은 분들을 가리키며 부모형제들이라고 한분한분 소개도 해주셨다…

할머니는 한식에 남다른 솜씨가 있었고 백의민족답게 진짜 깔끔하셨다. 할머닌 삶은 감자를 으깨여 떡메로 쳐 찰떡처럼 만들고 콩고물에 찍어서 먹게 했다. 때론 들나물과 산나물을 넣고 열콩이나 완두를 박아서 만든 떡을 도토리나무잎이나 참대잎, 깨잎에 싸서 찌기도 했다. 입쌀이 그리운 세월에 집집마다 옥수수가 주식이였지만 우리 할머닌 아무리 힘들어도 매일저녁 옥수수가루로 시루떡이나 오그랑, 밴새를 해서 손군들한테 먹였다. 엿을 만들어 가시옥수수튀기에 발라 오꼬시, 과주리를 만들어 군입질하게 했다. 가을철이면 꼭꼭 찰밥을 한가마 가득 해서 고추장을 만드시고 남들처럼 여러가지 김장도 많이 장만했으며 겨울철에는 우리집 밥상에서만 볼수 있는 별미의 김치찌개를 만들기도 하셨다.

특히 소학교에 다닐 나이에도 남새나 고기를 입에 못대고 간장물에 밥먹는 나때문에 더 고생하셨다. 바쁜 가을철에는 짬짬이 여린 고추를 골라서 썰어 말리우고 찹쌀가루에 버무려 밥솥에 푹 쪄내 다시 말리우는데 햇고추가 나질 때까지 두고두고 내입에 맞게 밑반찬을 만들어주셨다.

음식뿐만아니라 집안꾸미기, 식구들 옷차림에 이르기까지 구석구석 할머니 손과 잔소리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이불장이 없어 코바늘로 뜬 이불보를 치던 시대에 할머닌 하루에 두번씩이나 올리고 내리는 이불과 요도 옷궤우에 정해준 순서대로 크기나 색상에 따라 쌓았는데 매일같이 엄격하셨다. 항상 배곯는 세월에도 부업으로 산에서 뜯어오고 캐온 산나물이나 약재들을 팔아서는 남보다 더 예쁜 꽃이불등을 끊어다 해 얹으셨다. 그리고 이부자리가 어지러우면 냄새난다면서 세탁기도 없는 그 세월에 자주 뜯어 삶고 씻었는데 하얀 이불안은 풀을 먹여 방망이로 두드려 빳빳했고 자로 잰듯 네모반듯하였다. 세상뜨기 일주일전에도 눈덩이처럼 새하얀 요자리에 소변을 뭍이지 않으려고 우리 엄마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옆자리에 하신을 옮겨놓으셨다는 우리 할머니다. …

썰물이 빠지자 눈앞에서 오가던 배들도 급속히 줄어드는 바다물따라 먼곳으로 미끄러져 간다. 멀리까지 드러난 개펄로 사람들이 손에 그물이나 비닐봉지들을 들고 몰려가기 시작하였다. 무릎이 쑥쑥 빠지는 개펄에서 작은 게를 덥썩 잡는 순간 나는 《아~악》하고 바스라지게 소리 질렀다. 작은 게도 게라고 단단한 집게로 반항했던것이다. 옆걸음치며 달아나는 게를 보고 한번 터진 웃음을 걷잡을수가 없었다. 남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작은 게를 나는 붙잡고 또 붙잡았다. 할머니 옛말 듣던 옛날의 추억들을 붙잡듯이…

할머니 고향은 참말로 공기 좋고 물 좋았다. 산수 좋은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서 1916년 2월 1일에 맏딸로 태여난 우리 할머니는 13세때 부모님들이 중국 룡정에 들어와 려관을 차리면서 운명이 뒤바뀌게 되였다.

임병형, 양복순의 2남 3녀중 맏딸로 태여난 할머니는 중국땅에서 우리 할아버지와 결혼하셨다. 해방직전 부모님들은 자식들을 거느리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금방 결혼한 둘째딸과 사위는 함께 떠나기로 결정했으나 이미 젖먹이 둘째아들까지 태여난 할머니는 형제친척 떠날수 없다는 남편의 황소고집에 혼자 중국땅에 남게 되였다. 그때로부터 할머니는 생리별의 아픔을 가슴에 묻고 줄줄이 태여난 여섯남매의 굶주림을 대약진, 문화대혁명의 모진 세월속에서 조금이라도 덜어주려고 악착스럽게 살아오셨다. 그런데 37세 되던 해에 하늘처럼 믿고살던 남편을 잃고 20살도 안된 둘째딸까지 잃었다.…

할머니는 답답하다며 산으로 자주 가셨다. 마을 뒤 언덕으로 가실때는 소학생이였던 나를 데리고 가기도 했다.

《내가 무슨 락을 보자구 이 고생 하누…》, 《무정하구나…》,《왜 데리고 안갔나…》얼마나 고향이 그리웠으면 말 한마디에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그 세월에 세상물정 모르는 막내손녀 앞에서 넉두리로 그리움을 하소연하셨을가! 인적없는 산속에서 혼자 가슴허비며 울기는 또 얼마나 많이 우셨을가!

남들보다 더 화려하고 풍성한 환갑상을 받고도 할머닌 환히 웃지 않으셨다. 환갑전날저녁 할아버지와 조상들에게 올리는 차례상때문에 분주히 돌아쳤을뿐이다. 간혹 조선의 친척들이 중국에 오면 모두가 식량난으로 배곯는 세월에도 조선에 보낼 물건들을 준비하느라 돌아치셨다. 마선, 이불거죽, 고리등천을 사주고 천쪼박을 얻어 아이들옷도 손수 지어주셨다.

웃음없이 몇십년을 살아오신 할머니가 웃기 시작한것은 개혁개방이후였다. 자식들이 KBS라디오방송 리산가족프로에 련계한 보람으로 1991년 12월 5일, 할머니는 떠난지 60년도 넘는 남조선 고향땅을 밟게 되였다. 로인이 비행기를 타고 외국에 가시는것이 무리라고 자식들곁으로 돌아오지 못할수도 있다는 친척들 만류에도 우리 아버지는 꿈에서라도 고향땅 한번 밟아보는것이 소원이라는 할머니 한을 풀어드리고저 소를 팔아 로비를 마련해드렸다. 《남조선》에 가서 할머니는 친척들로부터 이미 세상을 떠난 형제들 소식과 중국땅에 두고 온 맏딸네 소식을 몰라 명심해 적어간 두외손자의 이름까지 족보에 올리고 기다림으로 한평생을 사셨다는 부모님들 이야기와 돌아가실 때 중국 룡정방향으로 머리를 묻어달라 부탁하셨다는 부모님들의 유언을 전해 듣게 되였다.

《남조선》에서 친척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할머니(가운데 사람).

그후로 할머니는 가는 곳마다 중국은 정책이 좋아 생활도 많이 펴이고 세계대문도 활짝 열려 한국이나 일본, 미국, 로씨야에 마음대로 갈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가고 자랑을 많이 하셨다. 할머니는 고향땅을 다녀오신지 6년만인 1998년 3월 15일에 저세상으로 떠나셨다…

해볕에 모래찜질도 하고 고무배 띄우고 물장구치며 즐기던 우리는 오후가 되자 급속히 밀려오는 거센 파도에 쫓겨 뚝으로 올라갔다. 바다물이 개펄을 삼켜 버리고 뚝밑까지 치달아올랐고 푸른 파도만이 기세 드높이 출렁이며 장엄한 바다의 위력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가물가물 멀리 있던 배들이 우렁찬 고동을 울리며 우리 눈앞까지 활기차게 다가왔다. 출렁이는 푸른 파도에 환히 미소짓는 할머니의 모습이 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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