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박원순 서울시장이 27일 오후 서울 성동구 도시철도공사에 마련된 고(故) 이재민씨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공황장애를 앓던 지하철 기관사 고(故) 이재민씨는 지난 12일 오전 서울지하철 5호선 왕십리역에서 선로에 뛰어내려 목숨을 잃었다. © News1
서울시 최적근무위 권고·종합대책 등 대안은 이미 나와
"시민안전 직결 기관사 근무환경 개선에 우선 투자해야"
(서울=뉴스1) 장우성 기자 = 서울 지하철 5~8호선을 운영하고 있는 서울도시철도공사 소속 기관사의 자살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8일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기관사 송모씨의 경우 근무 스트레스에 따른 우울증과 수면장애를 겪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2003년 이후 8번째 자살사고이며 2012년 이후 4번째에 이른다. 이같은 기관사의 자살사고는 이미 공식적 진단과 대책 마련은 이뤄졌지만 서울시와 도시철도 공사가 시급히 이행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일고있다.
실제 서울시는 도시철도 기관사들의 자살 방지를 위한 방안을 여러차례 내놓았다.
2012년 일어난 5번째 자살사고 후 박원순 시장 지시로 발족한 서울시 산하 최적근무위원회는 정신건강과 안전보건, 근무제도, 작업환경, 조직문화 등 5개 분야에 걸쳐 7개의 권고안을 채택했다.
권고안에서 중점적인 분야는 근무제도 개선으로 △7호선 2인승무 시범실시 △야간노동 최소화, 교대시간 주기 등 교대제 원칙 준수 △생체주기 교란 최소화 △통상근무자 수준의 휴일 확보 등 승무원 교번제 개선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또 조직문화 분야에서도 근무·승진평가, 직급구조 개선을 비롯해 상급자 조직문화 교육 실시 등이 제시됐다.
2013년에는 서울시 감사관실이 도시철도공사 승무분야에 대해 특별감사를 진행해 기관경고 등 행정조치를 내렸으며, 서울시와 서울메트로, 도시철도공사 노사, 전문가가 참여하는 기관사 근무환경개선단을 운영해 올해 4월 종합대책안을 서울시장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적근무위원회의 권고는 서울시가 매킨지에 용역을 맡겨 나온 '시정 주요분야 컨설팅'과 충돌한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뤄져왔다는 게 노조 측의 주장이다.
'시정 주요분야 컨설팅'을 보면 서울도시철도공사의 경우 2020년 약 3100억원의 영업적자가 예상된다며 그 대책으로 기술활용과 인력효율화를 통한 비용절감을 강조하고 있다. 기존인력을 절감해 부가가치가 높은 신사업 쪽에 배치하고, 외주화 확대를 통한 효율화를 꾀해야 한다는 것 등이 주요 내용이다.
또 구체적으로 무인운전제(UTO) 도입과 시간대별 탄력적 인력 배치를 제시하고 있어 서울시 최적근무위의 결론과는 다른 방향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서울시는 매킨지의 용역보고서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며, 권고 내용이 하루빨리 실현되지 못하는 근본이유는 예산부족이라는 입장이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최적근무위 권고는 기관사들의 근무환경 개선을 중심으로 접근한 것이고, 매킨지 보고서는 경영효율화에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에 상충되는 부분이 있을 수 밖에 없어 양자를 조정해나가는 과정"이라며 "기관사 정신건강을 위한 힐링센터 운영 등 권고의 일부는 이미 실행되고 있고, 결국 권고 실현의 관건은 예산 확보이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운영적자와 예산 부족을 이유로 기관사 근무환경 등 시민안전과 직결되는 문제를 지체해선 안된다는 주장도 강하다.
최적근무위의 권고에 포함된 2인 승무제가 한 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서울도시철도공사의 경우 2인 승무제를 도입하려면 923명의 기관사가 필요하고 203억원의 추가인건비가 든다. 이는 지출총액 대비 1.97%, 영업비용 대비 3.96% 수준이다. 지하철의 고질적인 운영적자를 감안하더라도 충분히 투자할만한 여력이 있다는 반론이 나오는 이유다.
김성희 교수는 "기관사의 근무환경 개선은 결국 지하철 안전문제와 직결된다"며 "지하철은 공공성의 대가로 적자를 감수할 수 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적자 탓으로 돌리기 보다는 지하철 안전을 위한 제도에 투자 우선 원칙을 적용해 2인 승무제 등을 가능한 대로 실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